―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무덤 위에도 파란 잔디가 피어나고 있다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꽃이 피어난다
망덕 포구에도 실뱀장어가 돌아오고
은어와 연어들이 돌아오고 있다
백영(白影) 정병욱(鄭炳昱) 선생의 어머님께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숨기셨던
전남 광양 양조장집 마룻바닥을 보러 가야겠다
나에게도 정병욱 같은 친구가 있을까
나에게도 강처중 같은 친구가 있을까
나에게도 송몽규 같은 친구가 있을까
나에게도 윤일주 같은 동생이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니
나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구나
동굴 속에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었구나
삼을라와 벽랑국의 세 공주가 신방을 차렸다는
혼인지의 동굴에서 신방을 차리고픈 사람이 있었구나
구좌읍 김녕리 궤네기굴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궤네깃당 팽나무 아래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궤네깃한집 이야기를 하면서 돗제를 지내면서
소천국과 백주또 이야기를 하면서
용왕국과 강남천자국 이야기를 하면서
장대한 스케일의 영웅설화 본풀이를 읽으면서
김녕리 삿갓오름(입산봉) 아래서 함께 살고 싶다
나는 늘 그렇게 그대와 나란히 눕는 꿈을 꾼다 그리고 나의 손을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고민을 한다 서로 꼭 손을 잡고 있으면 좋을지 팔베개를 하면 좋을지, 그대의 옹달샘에 돛단배로 떠 있으면 좋을지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바람결 따라 모두 다 한다
나는 그대 옹달샘에 파문의 휘파람을 부는 돛단배가 되어 봄바람의 지문을 그린다 그러면 남서풍의 숨결은 가슴의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가슴 가득 봄꽃이 환하게 피어나고 별빛이 반짝이고 파랑새가 날아올라 온 산이 사랑을 노래하며 메아리를 낳는다
그렇게 태어난 메아리는 처마 끝의 풍경을 흔들고 운판을 흔들고 목어를 두드리다 마침내 범종을 울려 환하게 아침을 불러온다
그렇게 환하게 찾아오는 아침 태양이 나에게도 있다
나는 새가 되고 싶다
나는 별이 되고 싶다
나는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다
나는 끝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다
* 정병욱(鄭炳昱, 1922년 3월 25일~1982년 10월 12일)은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민속학자 겸 수필가이다. 본관은 진양(晋陽), 호는 백영(白影)이다.
경상남도 설천 문항리에서 출생하여 유년기를 보냈고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성장하며 소년기를 보내고 초등학교(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상남도 하동과 전라남도 광양에 거처를 두고 동래고보와 연희전문 문과,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왔다. 1948년부터 부산대학교, 1953년부터 연세대학교, 1957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였고, 서울대 박물관장, 학술원 정회원을 역임하였다.
1922년 출생한 그는 3.1 운동 후 교사를 하게 된 부친을 따라 1927년부터 경남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성장하고 1934년, 부친이 전남 광양에 양조장을 겸비한 주택(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소재, 근대문화유산 등록)에서 사업을 열자 그곳에서 하동 집을 오가며 가족과 함께 거주했다. 학업을 위해 부산 동래, 서울 등으로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는 방학 동안 동생들과 함께 본가인 하동 덕천과 섬진강 하류를 사이한 광양 망덕에서 지냈다.
그는 시인 윤동주의 벗이자 후배로 연희전문 기숙사와 하숙에서 생활을 함께하고, 자필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증정받아 일제의 눈을 피해 망덕의 집에서 지켜냈다. 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강제 징병으로 전장에 끌려가게 되자, 어머니께 소중한 원고니 꼭 지켜달라는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겨, 어머니는 마룻바닥을 뜯고 보관했던 것이다. 윤동주가 옥사하고, 해방이 된 후 정병욱은 그 원고를 찾아 윤동주의 전문학교 동기 강처중, 동생 윤일주 등과 함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게 된다. 한글과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말의 탄압 속에서 윤동주의 시를 보존하고 윤동주라는 시인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인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은 그가 수필 <잊지 못할 윤동주>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https://youtu.be/dqTLoWMuqRA?si=jcHDwaf1xo4I_T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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