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자만

여자만(汝自灣) 02

by 강산





여자만(汝自灣) 02




1. 여자만마을



여자만마을에 가서 3개월을 살아보기로 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될 듯 싶다

임금피크 아웃플레이스먼트 전문교육으로 가야하는데

8월 교육신청기간이 끝나서 본사 담당자와 협의중이다

다음주 월요일에 확정이 될 것 같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2

윤동주 시인과 함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원고를 정리하다가 연락을 받고

더 이상 원고 정리가 되지 않는다

원고 정리를 잠시 멈추고 와온해변으로 달려간다


나는 요즘 정년퇴직 1년을 남기고 흔들린다


연어의 종착역에 가고싶은 마음에 떠돌다

7월 15일 신청 마지막 날 우연히 신청하게 되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당첨자 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어서 추가로 되었다


아마, 2인 가족 2가구와 독신 2

이렇게 4가구 6명이 함께 생활하게 될 듯 하다

가게 되면

내 고향집 연어의 종착역에도 가고

윤동주 시인의 원고를 보관했던 정병욱의 집에도 가고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던 벌교에도 둘어볼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자만마을과 여자만을 깊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바다와 여자만의 가장 큰 차이는 갯벌일 것이다

나는 예전에 와온해변과 소라면 갯벌을 깊이 보았다

섬달천과 대곡리 마을도 보았는데 여자도를 더 깊이 볼 것만 같다


2. 여자도


여자도(汝自島)는 공중에서 보면 너여(汝)자 형이라고 한다

정말로 여자도 사진을 보니 삼수변수()와 여자녀()자로 보인다

여자도(汝自島)는 본래의 이름이 '넘자 섬'이라고 한다

'넘'은 넘는다는 뜻이며 '자'는 산을 말하는 고어라고 한다

'넘자'란 말은 섬의 높이가 낮아 파도가 산을 넘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이는 낮은 산으로 이루어진 여자도의 지형과도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옛날부터 여자들은 물가에서 많이 살았다

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샘가에서 물을 길었다

요즘에도 여자만 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만의 갯벌은 여자를 많이 닮았다

갯벌을 빠져나가는 물길의 곡선도 여자처럼 부드럽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그런 곡선의 부드러움에서 온다

여자의 젖가슴은 부드러운 곡선이어서 가장 아름답다


3. 여자만과 순천만


같은 여자도를 품고 있어도

여수에서는 여자만이라고 하고

순천에서는 순천만이라고 한다

같은 여자를 품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애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머니라고 말한다


4. 매봉산과 여자만과 반월산


매봉산에 살고 싶어서 매봉산으로 가고 싶었으나

여자만에서 살아보라고 하여 여자만에서 살기로 했다

이게 다 인연이다

매봉산과 야방산은 가족들이 살고

여자만과 여자만2에는 홀로 사는 방이라고 한다

죽어서는 반원산에서 살 수 있으니

살아서는 여자만에 홀로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5. 섬과 오름


오름 왕국에서 섬의 왕국으로 간다

오름 왕국 제주도에서

섬의 왕국 여수로 간다

오름은 뿌리까지 드러난 섬

섬은 뿌리가 물에 잠긴 오름

오름 왕국에서 섬의 왕국으로 간다

뿌리가 보이지 않아도 뿌리는 있다



6. 책과 상과 책상



나의 책상은 나의 여관이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나의 책상은 나의 식탁이다

나는 라면을 먹고 계란을 먹는다

심지어 모서리에 생계란도 깨서

하늘의 노란 달을 쭉 빨아 먹는다

그리고 가끔은 아픈 발을 올려서

살을 파고 들어간 발톱을 깎는다

나의 책상은 나의 잠이다

나의 책상은 나의 밥이다

나의 책상은 나의 꿈이다

나의 책상은 나의 병이다

나의 책상은 나의 병원이다

나의 책상은 나의 일터이며

나의 책상은 나의 무덤이다

나의 책상은 나의 책상인데

책은 상은 우리들의 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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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도는 본래의 이름이 '넘자 섬'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넘자'의 뜻을 풀어 한자로 표기하면서 '넘'과 '자'로 나누어서 먼저 '넘'은 남이란 뜻의 너 '汝'로 표기하고, 자는 스스로 '自'로 표기하여 여자(汝自)도라고 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즉 여자도(汝自島)는 공중에서 보면 '너 여(汝)'자 형이고, 육지와 거리가 너무나 멀어 모든 생활수단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의 '스스로 자(自)'자를 써 '여자도'라 부른다는 것이니 알다가도 모를 이름이다.


다른 풀이도 있다. '넘'은 넘는다는 뜻이며 '자'는 산을 말하는 고어로 '넘자'란 말은 섬의 높이가 낮아 파도가 산을 넘어서 생겨난 말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는 낮은 산으로 이루어진 여자도의는 지형과도 맞아떨어진다.


여자도에 처음 사람이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로 남원 방씨가 승주군 낙안면 선조(현 보성군 벌교읍 장양리)에서 들어와 마파지마을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며, 그 뒤 대동마을에는 초계 최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여자만과 순천만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여자만(지도상 지명 순천만)이 있으며 평균 바다 수심이 3~5m 정도로 비교적 낮고, 순천과 벌교 방향에서 육수가 유입되어 좋은 갯벌과 염도로 인해 패류들이 살기에 좋은 지형이다.


여자만은 전국의 꼬막 생산량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패류의 고장이다. 여자도 주민들은 물이 좀 부족했지만 자연이 선물한 이 갯벌이란 농토에서 피조개, 새꼬막, 키조개, 맛조개 등을 수확해 도시로 내보내고 있다. 원래는 피조개의 주산지였으나 지금은 새꼬막 양식을 주로 하고 낙지와 감성돔이 많이 나는 곳이다.


『한국의 섬』 중에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737&docId=1847346&categoryId=4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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