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1.10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깜빡, 졸음처럼 인생이 무료해지면
책상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오랜만에 배를 타고 간다
자동차를 무려 200대 정도 싣고
사람들은 정원이 750명 정도라는
아리온제주를 타고 녹동항으로 간다
1등실 2등실 3등실을 둘러보고
푸른 갑판 위로 서둘러 올라간다
오후 4시 30분에 제주항을 출발한다
사랑봉과 별도봉에서 멀어져 간다
바다를 가르며 전진한다
바퀴도 없는 것이 잘도 달려간다
아니, 이것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진다
수평선을 미끄러지는 것이 분명하다
힘도 들이지 않고 이 거대함이 미끄러진다
배가 배를 깔고 미끄러지니 파도가 인다
곁에서 고기를 잡는 작은 배가 흔들린다
이제는 한라산도 멀어지고 날개 펼친다
오직 바다와 하늘만 보이니 잠시 무섭다
시퍼런 파도가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세월호를 타고 오다 수장된 사람들 생각
오규원 교수님과 함께 수학여행 온 생각
배를 처음 타고 소록도에 들어가던 생각
추자도 우도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 생각
이제 더 이상 다른 배들은 보이지 않는다
난간에서 오래 파도를 바라보니 무섭다
내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난간에서,
아래층이 베란다처럼 보이는 뒤쪽으로,
그러다가 그늘을 찾아서 의자에 앉는다
잠시 눈을 감으니 꿈길처럼 아득해진다
제주에서 녹동항 뱃길도 이렇게 젖는데
먼 태평양을 항해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날씨가 좋아도 바람까지 축축하고 짜다
그러는 동안 여서도와 청산도가 나온다
섬은 어쩌면 꺼지지 않는 촛불일 것이다
촛불 생각 하니 바다가 책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