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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면 뚱딴지가 나온다 / 배진성

―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20

by 강산





땅을 파면 어디라도 뚱딴지가 나온다 / 배진성





그놈은 천성이 사악하고 음험해서/탐욕스러운 욕심은 끝이 없고,/먹은 후에도 더욱더 배고픔을 느낀다//많은 동물들이 그놈과 짝을 지었고,/사냥개가 와서 그놈을 고통스럽게/죽일 때까지 더 많은 동물이 그러리라//이 사냥개는 흙이나 쇠를 먹지 않고,/지혜와 사랑과 덕성을 먹고 살 것이며,/그의 고향은 비천한 곳이 되리라 『신곡(神曲)』11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만드니 이제 한결 여유가 생겼다 오직 순례에만 전념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자고 쉬면서 순례를 한다 전망이 좋은 이곳에서 땅을 파면 어디라도 뚱딴지가 나온다 땅 속에서 꿀꿀꿀 소리가 들린다 땅을 파보니 뚱딴지가 있다 돼지감자들이 있다 따로 심고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란다 자세히 보면 참으로 귀엽게 생겼다 미소가 아름다운 표정도 있고 웃음소리가 곧 터질 것 같은 표정도 있다 대부분의 뚱딴지는 작은 젖꼭지가 있는데 다산을 상징하는 돼지들의 젖꼭지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하는 어린 소녀의 젖꼭지 같기도 하다


나는 오늘부터 조금씩 돼지감자를 캐서 먹을 것이다 한꺼번에 캐지 않고 겨울 내내 조금씩 캐서 먹을 것이다 캐서 그냥 먹어도 맛이 좋고 장아찌를 만들어서 반찬으로 먹어도 참으로 맛이 좋다 사과맛 같기도 하고 배맛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맛이 좋은 뚱딴지가 상품성이 없는 이유는 감자나 고구마처럼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여러 개의 혹이 붙어있는 것처럼 울퉁불퉁하여 손질하기가 귀찮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이다 하지만 먹어보면 알 것이다 귀찮고 까다롭게 손질을 해서라도 꼭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조금은 귀찮고 조금은 까다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 하루를 느리게 천천히 시나브로 보내고 있다
























26화 뚱딴지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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