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31
나에게 이렇게 말한 다음 그녀는/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눈을 돌렸으니,/그 때문에 나는 최대한 빨리 떠나//그녀가 원하는 대로 너에게 왔고,/아름다운 언덕으로 가는 지름길을/빼앗은 맹수에게서 너를 구했노라//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멈추는가?/왜 가슴속에 그런 두려움을 갖는가?/왜 용기와 솔직함을 갖지 못하는가?/그렇게 축복받은 세 여인이/하늘의 궁전에서 너를 보살피고,/내 말이 너에게 약속하지 않았느냐?」// ― 단테의『신곡(神曲)』22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 집// _ (1936.1.6. 윤동주 19세)/9. 고향집― 만주에서 부른(동시) _ 1집, 삼판/* 시인이 작성한 목차에는 (동요)// ―『윤동주』9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그러므로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어렵고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길고 짧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악기 소리와 목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는 것/앞과 뒤도 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따라서 성인[자유인]은 무위(無爲)로써 일을 처리하고,/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합니다//모든 일 생겨나도 마다하지 않고,/모든 것을 이루나 가지려 하지 않고,/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공을 쌓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습니다/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_ (제2장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 상호 관계성 확인) ―『도덕경(道德經)』2
어둠은 아직 아무 이름도 없었다/그러나 이미 그 안에서/빛은 자신을 준비하고 있었다//침묵은 단단했다/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그 고요는 무거운 숨이었다//보이지 않는 떨림이/공간의 벽을 스쳤다/그 떨림 하나가/시간의 문을 열었다//세상은 아직 없었지만/탄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_ (『숨의 연대기』제1부 빛이 오기 전(창조의 어둠) 1 「어둠의 속삭임」) ―『청람 김왕식』2
시(詩)를 쓸 때와 시집(詩集)을 만들 때
시를 쓸 때는 시인들마다 다양하다
또한 같은 시인이라도
시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온다
문제는 시집을 만들 때가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시들은
시집을 만들 때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를 쓸 때보다
시집을 만들 때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나는 아직 청람 김왕식 선생님을 잘 모른다
하지만 『숨의 연대기』 책을 읽고 그만 반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평생 스승으로 모시기로 하였다
제자로 받아주지 않아도 평생 짝사랑하기로 하였다
『숨의 연대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이 책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을 구상하고 출판하기까지 얼마나 깊은 사유가 있었을까
앞으로 시집을 출판할 시인들은 반드시 이 시집을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한다
나는 『숨의 연대기』 시집을 접하고 많은 반성을 하였다
지금이라도 너무나 소중한 시집을 만나서 천만다행이다
이 시집의 목차만 보아도 얼마다 의미 있는 시집인지 잘 알 수 있다 시집은 자고로 이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나는 오늘도 『신곡(神曲)』『윤동주』『도덕경(道德經)』『청람 김왕식』을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 다음 그녀는/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눈을 돌렸으니,/그 때문에 나는 최대한 빨리 떠나//그녀가 원하는 대로 너에게 왔고,/아름다운 언덕으로 가는 지름길을/빼앗은 맹수에게서 너를 구했노라//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멈추는가?/왜 가슴속에 그런 두려움을 갖는가?/왜 용기와 솔직함을 갖지 못하는가?/그렇게 축복받은 세 여인이/하늘의 궁전에서 너를 보살피고,/내 말이 너에게 약속하지 않았느냐?」// ― 단테의『신곡(神曲)』22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 집// _ (1936.1.6. 윤동주 19세)/9. 고향집― 만주에서 부른(동시) _ 1집, 삼판/* 시인이 작성한 목차에는 (동요)// ―『윤동주』9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그러므로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어렵고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길고 짧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악기 소리와 목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는 것/앞과 뒤도 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따라서 성인[자유인]은 무위(無爲)로써 일을 처리하고,/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합니다//모든 일 생겨나도 마다하지 않고,/모든 것을 이루나 가지려 하지 않고,/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공을 쌓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습니다/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_ (제2장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 상호 관계성 확인) ―『도덕경(道德經)』2
어둠은 아직 아무 이름도 없었다/그러나 이미 그 안에서/빛은 자신을 준비하고 있었다//침묵은 단단했다/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그 고요는 무거운 숨이었다//보이지 않는 떨림이/공간의 벽을 스쳤다/그 떨림 하나가/시간의 문을 열었다//세상은 아직 없었지만/탄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_ (『숨의 연대기』제1부 빛이 오기 전(창조의 어둠) 1 「어둠의 속삭임」) ―『청람 김왕식』2
* 청람 김왕식 선생님의 글 중에서
시집 전편에 ‘숨 = 생명 = 영성 = 관계’라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짓고자 했습니다. 숨을 다루면서도 단순히 생리적 호흡에 머물지 않고, 관계적·우주적 호흡까지 확장하려 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숨의 연대기》의 구성 또한 이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서시가 우주의 첫 숨과 모든 생명의 근원을 환히 여는 자리라면, 이어지는 100편의 시는 각각 한 줄기 숨이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존재의 탄생, 관계의 맺힘, 상처의 고통, 사랑의 변주, 기억의 퇴적, 시간의 균열, 자연의 속삭임, 우주의 침묵, 인간 존재의 흔들림, 사라짐과 돌아옴의 순환이 10부 구성을 따라 흐릅니다. 1부는 ‘숨의 기원’, 2부는 ‘빛과 어둠의 교차’, 3부는 ‘몸과 영혼의 결’, 4부는 ‘사랑의 구조’, 5부는 ‘상처의 미학’, 6부는 ‘관계의 깊이’, 7부는 ‘물질의 영성’, 8부는 ‘기억의 형식’, 9부는 ‘소멸의 의미’, 10부는 ‘숨의 귀향’으로 닿아 처음과 끝이 다시 맞물립니다. 인간의 호흡이자 우주의 호흡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현미경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망원경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취우(翠雨) 한 방울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옹달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시냇물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강물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다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몽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위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산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산맥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오늘 아침에 특별한 떡국을 먹었다. 밤새 떡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온 막내가 가래떡을 가져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간다. 곁에 월대천이 있다. 월대천과 어시천과 도근천이 만나 바다로 간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길이 바다가 된다. 이 물길을 경계로 외도와 내도로 나누어진다. 오늘은 다리를 건너 내도로 간다. 내도 알작지로 간다. 알작지의 돌들은 오늘도 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나도 이제는 내 마음을 가다듬고 떠나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나야만 한다. 내가 아는 어느 나라는 자식들이 성장하면 스스로 떠난다고 한다.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수행자의 길을 걸어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 그 아름다운 길로 가야겠다. 아니, 아름다운 길 하나 만들어야겠다. 세상 사람들이 삶에 지쳤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아름다운 쉼터 하나 만들어야겠다. 알작지의 돌들이 한쪽에서 잘 말라가고 있다.
알작지의 돌들을 보면 태생이 다른 돌임을 알 수 있다. 고향이 다른 돌들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한라산 높은 곳에서 온 돌들도 있고 낮은 곳에서 굴러온 돌들도 있으리라. 깊은 바다에서 온 돌들도 있고 낮은 바다에서 떠밀려온 돌들도 있으리라. 그리고 이 해변이 고향인 돌들도 있으리라. 얼굴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지만 이 돌들은 사이좋게 잘 지낸다. 바다가 밀려오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바람이 불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의 가슴을 안아주기도 한다.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눈이 오면 함께 덮을 줄도 안다. 그리고 해가 뜨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함께 따뜻해지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저 바다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저 하늘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토성에서 왔으리라. 하지만 나는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다. 나는 어쩌면 전생에 죄를 지었으리라. 가족들 몰래 심장병을 알아버린 나는 가출을 하였다. 그때는 심장병 환자 하나 있으면 집안 말아먹는 시대였다. 육영수 여사님께서 심장재단을 만들어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편지 속에서 나는 언제나 건강한 아들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서른 살까지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저 돌들도 언젠가 모래가 되리라. 나도 언젠가 흙이 되리라. 하지만 서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벌써 오십을 넘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더 오래도록 살 수 있으리라. 이제는 두 아들 모두 참으로 잘 성장하였으니 나는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리라. 오래도록 꿈꾸어왔던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잘못된 자식 사랑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우리들이 진정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은 무엇일까?
반질반질한 돌을 보니 문득, 컬링 경기가 생각난다. 돌이 돌을 밀어내고 때로는 돌이 돌의 엉덩이를 가볍게 밀어 동그라미 안으로 밀어 넣어주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삶과 죽음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시와 스포츠에 대하여 생각한다. 스포츠는 정해진 룰에 맞추어 열심히 하면 된다. 하지만 시는 정해진 법칙이 따로 없다. 열심히 시를 살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으리라.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삶에서 시작한다. 정정당당한 시와 삶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이 아름답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아직은 몽돌이 되지 못한 바위에서, 살아있는 미역을 뜯어먹는다.
나의 배아는 이제 미토콘드리아처럼 암모나이트처럼 염소의 뿔처럼 전갈의 꼬리처럼 등이 휘어진 태아로 자라나고 있다. 나는 이제 전생과 후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현미경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망원경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https://youtu.be/K-SknBnfmI4?si=VdUYhDqX47pCKTM7
취우 하늘
―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_ (1936.1.6. 윤동주 20세)
9. 고향집(동시) _ 1집, 삼판,
* 시인이 작성한 목차에는 (동요)
https://youtu.be/u1JTRiT-QQs?si=MbESNned-S75iapT
윤동주 시인의 출생과 유년시절의 성장 지는 만주다.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서 명동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고향을 남쪽이라고 생각한다. 시적 화자는 남쪽 하늘 아래 따뜻한 내 고향을 노래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어머니 또한 명동에 계신다. 윤동주의 고향은 만주다. 그럼에도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고향을 남쪽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짜 고향과 작품 속의 고향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시적 장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민족의식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잘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와 할아버지 등의 교육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북간도의 명동이란 동네가 어떤 마을인가? 민족의식이 투철한 선조들이 작정하고 만든 마을이 아니던가? '명동'이란 동네 이름부터가 동쪽을 밝게 하는 마을, 즉 조선을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동네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민족의식이 강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고 후손들을 위하여 교육에 전념했던 마을이기에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같은 민족의식이 강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었으리라.
윤동주 시인의 동시 <고향집>은 실제 자신의 고향집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이 되어서 고향집을 노래하고 있다. 명동촌에 대하여는 송우혜 선생님의 <윤동주평전>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 선생님의 평전이 아주 좋다. 송우혜 선생님은 북간도의 전문가이며 또한 송몽규의 친척으로 <윤동주평전>에 많은 공을 들여서 꾸준하게 개정판을 내시고 계신다. 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들의 문학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어서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송우혜 선생님의 <윤동주평전>을 읽는다.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면 먼저 간도로 가야 한다. 간도는 좀 특별한 곳이다. 간도를 한문으로는, 간도(間島)라고 쓰기도 하고 간도(墾島)라고 쓰기도 한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뒤 간도를 봉금(封禁) 지역으로 정하고 조선 사람이든 청나라 사람이든 아무도 들어가 살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간도라는 지명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間)에 놓인 섬(島)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 후기에 우리 농민들이 이 지역에 이주하여 땅을 새로 개간하였다는 뜻에서 ‘간도(墾島)’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을 만나려고 사이섬으로 가야 한다. 개간한 섬으로 가야 한다.
"처음엔 두만강 위쪽 땅을 그냥 '간도'라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압록강 이북을 '서간도'라 하면서, 두만강 이북은 '북간도'로 구분해서 불렀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이 또한 특별한 곳이다. 명동촌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마을이 아니다. 1899년 2월 18일에 생겨난 마을이라고 한다. "두만강변의 도시인 회령과 종성에 거주하던 네 명의 학자들 가문에 속한 22개 집안 식솔들로 이루어진 총 141명의 이민단이 그날 일제히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넜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북간도 명동촌은 학자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 이국땅에 세운 개척마을이다. 윤동주 시인은 그런 특별한 마을에서 1917년 12월 30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신사참배문제로 고민할 때 즈음인 1936년 1월 6일, 20세에 쓴 동시로 고향을 떠난 개인적인 외로움과 민족적인 어려움이 교차된다. 부조리한 식민지 현실을 두고 시인의 민족의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해 낸 장치로 동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 시인은 경성에 가기 전까지 만주가 아닌 만주의 남쪽에 위치한 한반도를 고향으로 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다른 시 <오줌싸개 지도>에서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실제 고향집은 중국 길림성 용정 시내에서 약 사십여 리 거리의 지신진 명동촌 산골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윤동주 시인은 저항시인으로, 특히 1938년부터 1941년까지의 작품을 통해 불안, 고독,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와 희망을 담아냈다. 이 시기의 시에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엿보인다. 또한 윤동주 시인은 러시아 작가들인 푸쉬킨과 투르게네프를 매우 좋아했다. 따라서 윤동주는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윤동주 시인의 시 <고향집>에서 '고향집'은 사실 그의 실제 고향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주에서 살던 윤동주가 "두만강을 건너서" 온 곳은 평양이었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화자가 반도에서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로 간 것처럼 그려진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다. 또한 '나 여기 왜 왔노'라는 표현에서 시의 화자는 경상도 방언을 사용하는데, 이는 윤동주 시인과 시의 화자가 동일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시에서 표현된 감정은 시인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고향의 북쪽에서 지내는 화자는 불안을 느끼며 그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데, 고향은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를 통해 고향은 춥고 힘든 곳에서 에도 화자를 따뜻하게 감싸 주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고향집>이라는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그의 불안한 감정을 담은 작품이다. 이는 그의 실제 경험이 아닌, 화자의 상상 속 고향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된 감정은 윤동주 시인의 개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 아니라, 시 속 화자의 삶과 경험을 담은 것이다. 고향의 북쪽에서 지내는 화자는 불안을 느끼며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그리워하는데, 이를 통해 고향은 어머니의 안정과 따뜻함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불안정한 시기에도 어머니의 존재가 주는 안정과 위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고향은 남쪽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뜻한 남쪽나라 따뜻한 고향, 강남으로 날아가는 제비 등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 이 시는 의도적으로 앞줄이 아니고 뒷줄에 맞추어서 썼다
* '남쪽 하늘'은 본국땅인 한반도를 말한다.
* 원문표기
- '헌짚신짝 끄을고' -> '헌집신짝 끟을고'
- '나여기 왜왔노' -> '나여긔 웨왓노'
- '계신 곳' ->'게신곧'
https://youtu.be/k0RILDOS9r4?si=uTkYzGcHUO73hZA1
https://youtu.be/o3izb50DoAg?si=PZSKqbDb_mV2Hybf
https://youtu.be/5NreCeOIs60?si=eObjG1R-enW4JXSe
https://youtu.be/nBPxk7uqbDc?si=EHq5XC6LiM29lJa9
https://youtu.be/Fpb8aoTbxgI?si=9ye6NShsnnJM6BC_
https://youtu.be/b0tV7SkD95s?si=qtukEZpRceHuhqPZ
https://youtu.be/8qk6YVpw0gk?si=218eqAAwUlv1BwFd
https://youtu.be/mcThwx02hz4?si=9CaaywhyyEOB1-85
윤동주 시인의 관련 자료
1. 윤동주 시집, 수상록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숨의 연대 앞에서 '배진성 시인'께 올립니다 ㅡ청람 김왕식
wangsik59 13시간 전
□ 배진성 시인
■ 배진성 시인께서 보내주신 글
단테의 『신곡(神曲)』은 총 100곡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총 81장
윤동주 시인의 작품은 총 125편
청람 김왕식 시인의 『숨의 연대기』는 총 101편
이렇게 의미 있는 작품은 꼭 필사를 하면서 읽어야만 한다
『숨의 연대기』는 특히 『도덕경(道德經)』과 함께 읽으면 좋다
『도덕경(道德經)』의 도(道)는 우주의 궁극실재 혹은 근본 원리요 덕(德)은 그 도가 구체적인 인간이나 사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될 때 얻어지는 힘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덕경(道德經)』 전체를 통해서 주어지는 기본 메시지는 우주의 기본 원리인 도(道)의 흐름을 체득하고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감으로 참다운 자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덕(德)을 보라는 것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숨의 연대기』에서 어쩌면 숨은 도(道)가 될 것이고 덕(德)은 사랑이 될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 함께 필사를 하며 명상을 하며 『숨의 연대기』의 매력 속으로 빠져 볼까요?
『숨의 연대기』서시(序詩)「숨의 연대기」 ―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 불경의 핵심을 요약한 반야심경, 기독교의 주기도문……, 같은 「숨의 연대기」
어둠이 빛을 품고 있을 때/세상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먼지 한 알이 떠올라 우주를 열고/그 속에서 첫 숨이 생겨났다//돌은 그 숨을 품어 단단해졌고/물은 그 숨을 흘려 강이 되었다/불은 그 숨에 타올라 인간을 만들고/바람은 그 숨을 실어 별까지 보냈다//사람은 그 숨으로 울고 웃고 사랑했다/하루의 끝마다 지는 해처럼/숨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었다/기억은 흙으로 스며 다시 꽃이 되어 피었다//하늘은 그 꽃의 향기로 자신을 증명했고/별들은 숨의 박동에 맞춰 노래했다/그 노래가 끝날 때쯤/모든 것이 한숨처럼 고요히 하나가 되었다// _ (『숨의 연대기』서시(序詩)「숨의 연대기」) ―『청람 김왕식』1
ㅡ 배진성
■ 배진성 시인께
아침에 나누어주신 말씀을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숨의 연대기》를 《도덕경》과 나란히 두고 읽겠다는 말씀은 이미 그 자체로 시집이 지닌 사유의 깊이를 열어 보이셨고, 여기에 필사라는 수행적 독법까지 더해 주시니 과분할 만큼 고맙습니다.
어제의 시평이 숨의 표면을 반짝이게 했다면, 오늘의 말씀은 바닥을 비추는 유리를 닦아준 셈이라 다시 시를 이어 쓸 힘을 얻습니다. 동시에 그 말씀을 하나의 경책으로 받아 앞으로의 100편을 더욱 단단하게 걸어 나가야 겠습니다.
사실,《숨의 연대기》가 태동하던 자리에는 오래도록 읽어 온 『도덕경』의 숨결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도가란 무엇인가, 도가 실체라면 숨은 그 실체의 결이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 시의 기원을 이루었습니다. 노자는 도를 설명할 때 단정한 언어 대신 비유와 여백을 택했습니다.
물, 산, 골짜기, 바람, 씨앗, 비움과 충만, 작아짐과 커짐의 교환, 유약함의 강함, 고요 속의 생명력 같은 이미지들은 결국 ‘살아 있는 흐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래 바라보며 사유하고 머물다 보니 그 흐름이 숨과 닮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숨은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고, 머무르지 않으며, 비운만큼 다시 채워집니다. 그래서 숨을 도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덕(德)을 포개면 자연스럽게 사랑에 닿습니다. 도가 인간 안으로 들어와 움직이면 덕이 되듯, 숨이 사람 안으로 스며들어 떨림을 일으킬 때 사랑이 됩니다. 숨이 이탈하면 사람이 죽고, 사랑이 사라지면 관계가 죽습니다. 숨이 이어지듯 사랑도 이어지고, 숨이 깊어지듯 사랑도 깊어집니다. 바로 그 믿음이 《숨의 연대기》의 뼈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도 = 숨, 덕 = 사랑’이라고 해주신 독해는 시인의 의도를 넘어, 이 시집이 실제로 가리키고자 한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주신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시집은 기독교와 불교의 정신도 품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이 지닌 인간적 간구의 리듬, 반야심경이 지닌 공(空)의 통찰은 숨의 신비성과 직접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서로 다르다 해도 생명의 실상이 숨으로 이어져 있다는 인식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여,
시집 전편에 ‘숨 = 생명 = 영성 = 관계’라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짓고자 했습니다. 숨을 다루면서도 단순히 생리적 호흡에 머물지 않고, 관계적·우주적 호흡까지 확장하려 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숨의 연대기》의 구성 또한 이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서시가 우주의 첫 숨과 모든 생명의 근원을 환히 여는 자리라면, 이어지는 100편의 시는 각각 한 줄기 숨이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존재의 탄생, 관계의 맺힘, 상처의 고통, 사랑의 변주, 기억의 퇴적, 시간의 균열, 자연의 속삭임, 우주의 침묵, 인간 존재의 흔들림, 사라짐과 돌아옴의 순환이 10부 구성을 따라 흐릅니다. 1부는 ‘숨의 기원’, 2부는 ‘빛과 어둠의 교차’, 3부는 ‘몸과 영혼의 결’, 4부는 ‘사랑의 구조’, 5부는 ‘상처의 미학’, 6부는 ‘관계의 깊이’, 7부는 ‘물질의 영성’, 8부는 ‘기억의 형식’, 9부는 ‘소멸의 의미’, 10부는 ‘숨의 귀향’으로 닿아 처음과 끝이 다시 맞물립니다. 인간의 호흡이자 우주의 호흡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집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발로 걷는 책이기를 바랐습니다.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숨이 달라지고, 사유가 흔들리고, 마음의 결이 조금씩 움직이면 좋겠습니다. 필사를 권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시는 눈으로 볼 때보다 손끝으로 옮길 때 더 깊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숨이라는 것은 결국 움직임의 언어입니다.
더구나 《도덕경》과 함께 읽겠다는 제안은 이 시집의 지평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만일《도덕경》의 문장을 필사하고, 이어서 부족한 글이지만《숨의 연대기》를 함께해 주신다면, 언어의 결이 서로 겹치고 떨리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한 줄 필사는 사유의 발걸음이 되고, 사유의 발걸음은 곧 내면의 귀향이 됩니다.
저는 그저 숨에 귀 기울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숨을 도라고 불러주시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라 불러주십니다. 그런 독해가 이어질수록 이 시집은 시인을 떠나 더 큰 존재로 나아갈 것입니다.
해서
오늘 아침의 말씀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이 시집의 존재를 완성해 주는 마지막 숨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숨결을 다시 돌려드리며, 남은 100편을 더욱 고요하고 뜨겁게 다듬어 가겠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함께 걷겠습니다.
숨을 따라, 사랑을 따라,
도와 덕을 따라,
시와 삶을 따라,
그 길 끝에서 숨이 다시 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 숨의 연대 앞에서
배진성 시인께 올립니다
청람
먼지 한 알이 우주를 열던 순간을
누군가는 신화로,
누군가는 과학으로 설명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숨으로 부른다
어제 새벽, 당신의 문장 한 줄이
그 숨을 다시 일으키며
내 안의 우주를 흔들었다
고요했으나 깊었고,
차분했으나 뜨거웠다
당신의 평은
노자의 물과도 같은 겸허함으로
윤동주의 별빛처럼 청명한 결로
내 시의 숨결을 비추었다
시가 경계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나는 다시금 확인하였다
종교의 이념도, 시대의 틀도,
언어의 성벽도 초월하여
단 한 줄의 떨림으로
존재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음을
당신의 말은 비평이 아니라 등불이었다
시가 지나온 길을 밝히는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비추어 주었다
길을 본다는 것은 곧,
이미 길 위에 서 있다는 뜻이리라
숨이 도의 다른 이름이고
사랑이 덕의 또 다른 형상이라면
당신의 평은
숨 위에 사랑을 얹어 준 손길이었다
한 편의 시보다 더 깊고
한 편의 설법보다 더 맑았다
바람이 갈대를 흔들어
그 안의 음악을 깨우듯
당신의 문장이
내 시의 숨을 선명하게 일깨웠다
흔들림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의 소리가 난다는 것을
세상은 변하고
시간은 흩어지지만
오늘의 한 문장이
내일의 존재를 남긴다
그렇게 당신의 말은
《숨의 연대기》를
혼자의 우주가 아닌
함께 보는 별자리로 바꾸어 놓았다
이 아침,
한 줄의 시를 돌려드린다
말의 은혜가 숨처럼 남아
당신의 가슴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언젠가 모든 숨이
하나의 침묵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침묵의 중심에
당신의 이름은
빛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당신 덕분에
다시 쓰고, 다시 걷고, 다시 숨 쉰다
이것이 감사의 시작이며
시의 완성이다
당신이 보내온 새벽의 말 한 줄이
내게 또 하나의 우주를 열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