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Feb 06. 2020

17. 고양이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이어도공화국 고양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산다

내가 밥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 산다

나와 고양이들은 자유롭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온다. 낮에 보았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내 꿈속까지 드나들기 시작한다. 검은 고양이와 호피무늬 고양이가 있다. 꼬리가 잘린 호피무늬 고양이가 두 마리 새끼들을 잘 기르고 있다. 작년에도 일곱 마리 새끼를 잘 낳아 잘 길렀던 고양이다. 올해도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는데 나에게 아지트를 들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세 마리의 새끼를 잃었다. 세 마리 새끼를 어디에서 잃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새끼들이 아주 어릴 때 나는 청소를 하다가 그들의 아지트를 무심결에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는 바람에 어미가 어린 새끼들을 물고 어디론가 이사를 떠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새끼들이 좀 자란 다음에 내 곁으로 다시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새끼들이 두 마리 뿐이었다. 밖에서 그 고양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과 달리 올해는 호피무늬 어미 고양이가 유난히 더 예민해져 있다. 평소에 잘 지내던 검은 고양이와도 자주 으르렁거린다. 새끼들과 함께 있다가 나를 보면 어미는 다른 쪽으로 뛴다. 나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 틈에 새끼들은 안전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어미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자꾸만 내 앞에서 얼쩡거리며 나를 따라오라고 한다. 그 호피무늬 고양이를 따라가니 아름다운 집이 나온다. 그 집 거실 창문 앞에는 길 고양이들 먹으라고 고양이 사료와 물그릇이 놓여 있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빛나는 털을 다듬고 있다. 호피무늬 고양이와 그 흰 고양이는 서로 잘 아는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둘은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피무늬 고양이는 집 안에 사는 흰 고양이의 안락함을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집 안의 흰 고양이는 호피무늬 고양이의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꿈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컨테이너 지붕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검은 고양이와 호피무늬 고양이가 또 다투고 있는 듯, 밤하늘을 물어뜯고 있다.     


고양이들의 다급한 발자국소리에 깨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꿈의 무대가 서울 남대문시장이다. 남대문시장 길거리에 침대가 나란히 있다. 병실처럼 침대 사이에 커튼이 쳐져 있다. 장도 보지 않고 함민복 시인이 누워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장을 본 이진명 시인이 침대에 누워 시를 읽는다. 시장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다.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라며 백호를 노래한다. 배호야 배호야 노래 한 번 불러보렴. 나는 백호를 배호로 듣는다. 그런데 안개가 갑자기 백호가 되어 달린다. 백호를 부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백호야 백호야 힘차게 달려오렴. 백호야 백호야 힘차게 나에게로 달려오렴. 안개 자욱한 남대문 시장의 아침이 백호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나는 느닷없이 김기택 시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나는 시인의 안부를 물어보지 못하고, 나의 휴대폰에 충전을 시켜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다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백호 발자국소리 속에서 나희덕 시인과 정끝별 시인이 함께 나온다. 시장바구니를 든 나희덕 시인이 별을 든 정끝별 시인을 나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나의 침대 곁 의자에 앉아 나의 손을 잡는다. 그러자 갑자기 나의 몸에서 산목련 꽃이 피어난다.     


꿈에서 깨어나 나는 얼른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을 그린다. 고양이 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시인들 꿈은 왜 꾸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엉뚱한 꿈이다. 더구나 나는 이진명 시인과 정끝별 시인을 직접 만나본 기억이 없다. 나희덕 시인과 김기택 시인은 아주 오래 전에 인사동 평화만들기에서 몇 번 만난 기억이 있지만 왜 갑자기 꿈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다. 그 시인들은 왜 내 꿈속으로 들어왔을까? 그 원인을 나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나의 꿈 이야기를 그 시인들 허락도 없이 쓰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인들이 내 꿈속에 나타난 원인을 찾아보기 위해서 일단 사실대로 기록해두기로 한다. 대강 기록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새들이 먼저 맛을 보았는지 감귤을 부리로 쪼아 먹은 흔적이 남아있다. 나도 황금향 하나를 따서 먹어본다. 황금향은 참으로 달고 맛있다.          


함민복 시인과 함께 오규원 선생님 나무를 찾아가는 꿈을 꾸기도 하고 여수에서 찾아온 갈무리문학회 시인들과 함께 한라산을 오르는 꿈을 꾸기도 하고 제주도 산방독서회 사람들과 함께 김도수 시인의 고향 진뫼마을과 (많은 사람들은 김용택 시인의 고향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김도수 시인의 고향으로 기억한다. 김도수 시인은 내가 아는 김인호 시인과 함께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김도수 시인의 고향 사랑은 꾸밈이 없고 깊어서 그의 곁에만 있어도 향기가 전해진다. 그에 비하여 김용택 시인을 생각하면 국화와 배상금 생각이 떠오른다. 어느 여름날 그가 심었다는 정자나무 아래서 수몰지 이야기를 하면서, 배상금을 많이 받으려면 국화를 심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김용택 시인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때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김용택 시인의 참 모습을 잘 보지 못한다) 순천 낙안읍성 문학기행을 하는 꿈들을 꾸더니 드디어 이런 꿈까지 꾸게 되었다. 이런 꿈들은 어쩌면 나에게 다시 시를 쓰라는 계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1990년 1차 심장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만난 붉은 여우 때문에 시를 쓰지 못한 이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시를 쓰라는 강력한 계시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산목련으로 변한 것은 어쩌면 그의 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나무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주로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와 정성껏 다시 살려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더니 그는 나에게 한 가지 좋은 사업을 제안 했었다. “나무 고아원 원장이 되어보면 어떻겠느냐?” 라는 말을 하면서 각종 개발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나무들이 많다는 이야기와 구체적인 방법까지 말해주던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1차 수술 후의 상황과 지금 2차 수술 후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나날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강해서 그때처럼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을 생각하고 그때처럼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1차 수술에 비하여 2차 수술은 더욱 심각하고 위험한 수술이었다. 1차 수술은 판막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대동맥 판막 아래 있는 혹 하나만 떼어내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2차 수술은 타격이 크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바로 그 때 나는 병원에서 생중계를 보았다. 심장내막염 때문이었다.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나는 1차 수술 후에 병원에도 가지 않고 관리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무리하여 심내막염에 걸리고 말았다. 패혈증의 일종인데 참으로 위험한 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보통 사람들은 잘 걸리지 않는 병인데 심장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잘 걸리는 병이라고 하였다. 심장에 칼을 한 번 댄 사람은 그 상처에 병균들이 잘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대동맥판막 부분에 병균들이 달라붙어서 염증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동맥판막이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대동맥판막뿐만 아니라 승모판막까지도 상처를 입었으나 다행히 승모판막은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지 않고 성형수술만으로 가능해서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기계판막으로 바꾸면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나의 경우는 수술 받을 때 곁에 있던 환자가 대동맥이 찢어져서 인공대동맥으로 바꾼 환자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나도 혹시 대동맥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참 많다. 만약에, 내 몸속에 들어있는 기계판막이 불량품이거나 다른 이유로 두 개의 날개 중에 하나라도 이탈된다면, 그 이탈된 날개는 칼이 되어 나의 대동맥을 찢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내 곁 침대에서 고생 많았던 그 대동맥환자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퇴원한 후에도 그 분은 중환자실을 드나들며 많은 고생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작가의 이전글 16. 이불이 향기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