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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11. 2020

23. 박수기정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박수기정 / 강산


 신발 한 켤레 나란히 정박해 있다
 밤새 달빛과 별빛이 흘러 넘친다  


 신발 주인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바다로 간 것일까 은하수로 간 것일까


 둘러 보고 귀기울여봐도 바가지는
 보이지 않고 샘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잠시 붉은 아침 노을이 쏟아지다가
 하루종일 햇빛 폭포광이 쏟아져내린다


 나는 어찌하여 박수기정에서
 주상절리와 정방폭포를 읽고 있을까


 나는 어찌하여 폭포소리에 꿈을 꾸는가
 어찌하여 나이아가라 폭포에 젖고 있는가


 나는 어찌하여 용암소리에 꿈을 꾸는가
 어찌하여 나이아가라 용암에 타고 있는가


용왕의 아들은 벼랑의 샘물속으로 사라지고

푸른 파도소리가 백비에 비문을 새기고 있다


 잠시 붉은 저녁 노을을 입어 보더니
 별빛과 달빛을 가득 싣고 함께 떠난다


월라봉은 화순쪽에서 보면 손잡이가 긴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월라봉 속으로 들어가 걸어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월라봉을 만날 수 있다. 월라봉 위에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밭이 있다. 월라봉은 감산리에 속한 오름이다. 서쪽에는 화순리가 있고 동쪽에는 대평리가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와 만나는 부분에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 벼랑을 박수기정이라고 한다.  '박수'와 '기정'의 합성어다. 박수는 바가지로 마실 샘물을 뜻하고 기정은 절벽이라는 뜻이다. 절벽 중간쯤에서 바가지로 마실 샘물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수기정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밤새 꿈을 꾸었다. 박수기정 절벽 위에 비어있는 신발이 한 켤레 있었다. 신발 주인을 찾으려고 벼랑 위와 절벽 아래까지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꿈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흐르는 꿈을 꾸었다. 용암이 바다를 만나 주상절리가 되었다. 파도가 주상절리를 힘차게 때리니 육각 기둥들이 쓰러지며 박수기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정방폭포가 되었다. 쉬지 않고 계속 비가 내리니 나이아가라폭포가 되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오르니 빛의 장관이 되었다. 나중에는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라 무지개가 빛나고 폭포광이 떨어지는 빛의 폭포가 되었다. 얼마 전에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서 그런지 그 벼랑길을 말과 함께 걷고 있었다.  


박수기정은 화순리 쪽에서 보는 것보다 대평리 쪽에서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대평리는 교통이 좋지 않고 한라산이 잘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아서 땅값도 싸고 사람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제주도에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 박수기정 모습에 반하면서 펜션단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박수기정이 대평리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평리의 원래 이름은 '난드르'라고 한다. 난드르는 '평평하고 긴 들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그래서 한자로 대평(大坪)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시 요즘에는 '용왕난드르'라고 부른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하기 위해서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입김으로 활성화되는 듯 하다. 용왕난드르는 용왕의 아들이 살았다는 전설 때문이다. 용왕의 아들이 이 마을 학식이 높은 스승에게 학문을 배우게 되었는데 서당 근처에 창고내(창고천?)라는 냇물이 밤낮없이 흘러 물소리가 시끄러워 늘 공부에 방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3년간의 글공부를 마친 용왕의 아들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소원 하나를 말하라고 했더니 냇물의 물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 소리를 없애달라고 했다. 이를 흔쾌히 수락한 용왕의 아들이 이곳에 박수기정을 만들어 방음벽을 설치했고, 동쪽으로는 군산을 만들어 주고 떠났는데 그 이후 이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듯한 전설이다.


나는 아침 6시에 출발하여 대평포구를 향했다. 너무 어두워 손전등을 켜고 길을 걸었다. 유반석이 큰 부엉이처럼 보였다. 유반석 아래에서 살았을 푸른 비둘기는 지금쯤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까? 봉수대를 지나고 볼래낭길을 걸었다. 1950년대까지 20여호가 촌락을 이루어 살았다는 '이두어시' 안내판을 지났다. 이 길은 사유지가 많아서 길이 여러번 바뀌었다. 옛날에는 박수기정 푯말도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바다 풍경도 선명하지 않다. 벼랑길을 걸으면서 나무들이 나의 시야를 가려주어서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벼랑 끝에 나무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무서워서 이 길을 걸을수도 없었을 것이다. 낭떠러지를 직접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평포구로 내려가는 길은 몰질(말길)과 조슨다리, 이렇게 두 길이 있다. 그런데 조슨다리는 너무 험해서 요즘에는 거의 다니는 사람이 없는 듯 하다. 조슨다리는 정으로 바위를 쪼아서 만든 길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길이 없어서 절벽 아래로 다녔다고 한다. 그 절벽 아래는 바위들이 많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잘 다닐 수 없는 길 아닌 길이다. 어떤 참기름장수 할머니가 그 절벽 아랫길로 다니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대평 마을에서 정으로 바위를 쪼아 화순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감산에서 말을 길렀는데 몽고시대에 대평포구에서 말을 싣고 몽고에 상납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감산에서 대평포구까지 말들이 다녔던 길이라고 해서 몰질(말길)이라고 한다. 조슨다리에 비하여 좀 돌아가기는하지만 더 쉬운 길이어서 요즘에는 몰질(말길)로만 다니는 경우가 많다. 올레9코스의 초반부가 바로 이 몰질(말길)이다.


대평포구에 도착하니 해가 뜨고 환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 아는 펜션 사장님이 큰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손님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런 듯 하다.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 때문에 더욱 그러는 듯 했다. 서울에서 제주도 오는 비행기 값이 3,500원이란다. 참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창고천 물소리 때문에 방음벽으로 만들어졌다는 박수기정, 그 박수기정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금요일마다 축제를 열어 화순까지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던 펜션촌, 이제는 다시 그 많은 펜션들이 텅텅 비어가서 한숨소리가 들리는 대평리. 나는 다시 오늘 일정이 있어서 화순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걸어본 올레길이 나로하여금 땀을 흘리게 하고 봄을 앞당기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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