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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Oct 29. 2021

문득

- 이어도 공화국 21






문득





"심근염 알아요?"

늦은 밤중에 잘 아는 사람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무 답답해서 나에게 카톡을 했을 것이다. 동생 남편이 감기인줄 알고 4일 동안 앓다가 제대병원에 갔는데 심근염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콕사키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온 몸에 퍼져버렸다고 한다. 이미 심장은 정지 되어 에크모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언제라도 몸에서 열이 난다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은 몸 안에서 무언가와 치열하게 전투를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는 문득 2014년 봄으로 돌아간다. 나는 남들의 땅을 빌려서 숲농법으로 농사를 짓다가 드디어 땅을 사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밤낮 없이 땅을 파고 돌담을 쌓았다. 어느날 비를 맞고 일을 하다가 감기에 걸렸다. 열이 나고 기운이 없었다. 가까운 동네 의원에 가서 감기약을 처방 받아서 먹었으나 좋아지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서 세 번째로 가니 작은 시골동네 가정의학과 의원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제주시에 있는 한라병원으로 가니 긴급하게 입원을 하라고 하였다.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심내막염이라고 하였다.


주로 치아를 통해서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바이러스가 몸 속으로 침투해도 보통 사람들은 심내막염에 잘 걸리지 않지만 나처럼 심장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은 심내막염에 걸릴 확률이 많다고 하였다. 바이러스가 심장 판막에 달라붙어서 판막을 뜯어먹기 때문에 그 주위에  염증이 발행한다고 하였다. 정밀검사를 하여보니 나의 대동맥판막에 염증이 생겨서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라고 하였다. 심장 뿐만 아니라 핏줄을 타고 온 몸으로 돌아다니면서 다른 장기들도 공격을 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 무서운 패혈증 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감기약에 항생제가 들어 있어서 그나마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 해 봄 종합병원에서 살았다. 한라병원 7층 입원실에서 침대에 누워서 살았다. 세월호가 제주도로 오는 바닷길에서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집중적인 염증치료를 받았다. 젊은 감염내과 여선생님과 심장내과 선생님의 협진으로 나도 모르게 꺼져가던 생명을 겨우 살려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잘 하는 것 같다. 나는 페이스북을 소통 보다는 자료 보관이나 세상을 읽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래서 나만 보기로 설정 된 자료들이 많다. 심심하면 한 번씩 들어가서 보는데 요즘에는 박진성 시인의 글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진성 시인을 전혀 모른다. 그런데 요즘 박진성 시인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살기가 어려운 모양인데 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인연은 모두가 소중하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이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인연이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번 이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관계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소중한 인연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아니라 사랑으로 남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우리들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하여도 요즘의 의술로는 200년을 살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죽은 이후에라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드디어 임업후계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오늘, 무당거미가 하늘에 낙엽을 붙들어 두고 가을 굿을 하고 있는 오늘, 마라도에 들어 갔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불쑥 돌아오고 있는 오늘, 오늘 같은 날은 한림에 사신다는 백영민 선생님의 글이 잔잔하게 나를 적신다. 



<아홉번째 돌무덤> / 백영민


잔뜩 흐리고 이따금 빗방울이 날리는 제주의 오늘. 
제대로 스산한 가을날씨입니다. 
이런 날씨에는 땅을 파야하나봅니다. 


삼색이네 꼬맹이가 오늘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유난히 작고 움직임이 둔하던 까망이. 
며칠 전부터 콧물 흘리고 눈물 흘리더니, 오늘 기어이 고요의 바다로 빠졌습니다. 


비가 그친 틈을 타 뒷곁에 곡괭이로 열심히 구덩이를 팠습니다. 나무 판자를 바닥에 깔고, 깨끗한 수건으로 까망이를 싸고, 다시 판자를 덮어주고 흙과 돌을 모아 단단히 여며줬습니다. 
고생했다, 애썼다, 편히 쉬어라. 옆에 먼저 간 냥이들이 함께 잠들었으니 도란도란 같이 놀면서 지내거라. 


아홉번째의 돌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결혼기념일에는 이 정도 해야 맞는거겠지요? ^^
보일러를 돌립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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