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옥상에서 새로운 해를 맞는다. 올해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소망을 빌어본다. 인근의 사람들이 화순항 방파제에서 새로운 해를 맞는다. 방파제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방파제처럼 길게 늘어서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날마다 떠오르는 해이지만 오늘을 올해 첫 해인만큼 특별한 의미로 빛난다. 구름이 많아서 선명하지 않지만 그만큼 더욱 소중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올해도 나는 이렇게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원래는 쉬는 날인데 임금피크로 한 명이 빠져나가서 내가 대신 근무를 들어왔다. 나도 이제 임금피크가 1년 반 남았다.
사람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서로 인사를 한다. 복은 누가 주는 것일까? 복을 주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데 그냥 복을 받으라고 말을 한다. 주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받으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인사를 달리 한다. "복 많이 만드세요" "복 많이 나누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나도 올해는 스스로 복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올해는 스스로 복을 많이 부지런히 만들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나누어주고 싶다. 그러면 나와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조금씩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러면 나와 나의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부터 조금씩 조금씩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는 지금껏 내가 비겁했음을 깨닫는다. 나는 너무 현실이 버거워서 꿈속으로 달아나서 살았다. 꿈속의 이상향 이어도에서 살았다. 우리들의 이상향 마고성에서 살았다. 꽃들의 세상 서천꽃밭에서 살았다. 언제까지 그곳에서만 살 수는 없다. 나는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당당하게 살고 싶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현실과 직접 부딪히며 살아야만 한다. 우리들은 모두가 온 우주를 함께 경영하고, 온 지구를 함께 경영하고, 온 나라를 함께 경영하고, 온 동네를 함께 경영하고, 온 가족을 함께 경영하고, 온 이웃을 함께 경영하고, 온 너를 함께 경영하고, 온 나를 함께 경영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들 세대의 온 지구촌 가족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고 떠나야만 할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공동체 정신과 공동체의 사명감으로 살아간다. 우리들은 모두가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 행복하게 살아서는 안 되고 우리들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만 진정으로 좋은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해 첫날부터 현장을 한 바퀴 돌고 사무실에 돌아와 양란을 본다. 양란은 참 화려하다. 꽃도 사람도 외모가 출중한 것이 있고 향기가 좋은 것이 있다. 나는 꽃도 사람도 향기 좋은 것이 더 좋다. 특히 사람은 더욱 향기가 좋은 사람이 더욱 좋다. 나는 오늘 향기로운 사람의 시집을 읽는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데 참으로 향기로운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의 기능적인 측면만 본다면 식물들의 성기라고 할 수 있다. 종족 보존을 위하여 자신의 처지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후손을 남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이렇게 다양한 꽃의 형태와 빛깔 그리고 향기를 갖게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꽃을 보고 식물들의 생식기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시인이 아니다. 향기로운 시인이 있고 악취가 나는 시인도 때로는 있다. 나는 과연 향기로운 시인일까 악취가 나는 장사꾼 같은 시인일까.
며칠 전에 우연히 성백술 형을 만났다. 나의 큰형과 동갑이니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진으로 본 첫 인상이 또한 영락없는 큰 형님 이셨다. 오른쪽 가슴에 산불조심, 영동군이라고 새겨진 산불감시원 복장이 인상 깊게 새겨졌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푸근하고 정답게 다가와 큰 형님과 겹쳐져서 더욱 좋았다. 페이스북에서 나는 아주 우연히 성백술 형님의 짧은 글을 보았다.
성백술 2022년 12월 23일 오후 11:05
오늘 재판을 받았다. 누군가 그랬다. 출판에는 1심, 2심, 3심이 있다고~~ 첫 시집 <복숭아나무를 심다> 이후 7년 만에 낸 시집 <따뜻한 겨울>이 2쇄를 찍은 것이다. 흰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자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돌개바람에 눈보라가 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로젠택배 탑차가 집 앞에 서더니 택배 박스를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따끈따끈한 <따뜻한 겨울> 2쇄 출판본이었다. 사실 나는 날씨가 너무 추워 오늘 인력 사무실에도 못 나갔는데, 방안에 처박혀 창밖에 눈보라가 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시백 형님과 보일러에 대한 페북을 주고받다가, 그래도 심심하여 혼술이라도 한 잔 할까, 술이 당기던 참이었다. 올겨울은 따뜻한 겨울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느낌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이번 시집의 따뜻한 겨울은 난로나 피워 놓고 밤 혹은 고구마 따위나 구워 먹는 낭만적인 시집이 아니다.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심히 정치적이다. 촛불 집회에 관한 시는 없지만 따뜻한 겨울은 촛불과 대통령 탄핵에 관한 시이다. 정치가 따뜻하지 못한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따뜻한 겨울'이 될 수 있을까? 따뜻한 겨울의 시점은 과거이지만 분명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 이후 7년뿐 아니라 첫 시집에서 제외되었던 좀 더 현실적인 시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좀 더 리얼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리얼리스트임을 자부하는 나의 문학관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다만 책을 사볼 돈이 없어서 못 읽겠다고 생각하는 독자께서는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 주시라. 책을 보내 드리고 싶다. 날씨가 아무리 춥든 혹독하든 따뜻한 겨울이 되어야 하니까~~
나는 시만 잘 쓰는 시인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사는 시인들을 좋아한다. 마음이 따뜻한 시인,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병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시인들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렇게 따뜻하고 정이 많은 시인들이 많은데 가끔은 그렇지 못한 시인들도 있다. 시는 따뜻하고 좋은데 가까이서 그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한 시인들도 있다. 나는 시는 80%가 그 시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활자로 발표하는 시가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그 시인의 삶이 그 시를 받쳐주지 않으면 그 시는 결코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활자로 발표하는 시는 엉성해 보여도 그 시인의 삶이 아름다우면 그 시 또한 아름다운 보석이 될 확률이 확 높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사무실에서 시집을 읽다가 나와 산책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먼나무 열매가 토끼 눈보다 훨씬 더 붉다. 올해는 토끼의 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토끼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 도두봉이나 한라 수목원이나 북촌리와 함덕해수욕장 사이 서우봉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기르는 토끼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달 속에 살았던 계수나무 아래 토끼들은 어디론가 이사를 간 지 이미 오래되었고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도 토끼들은 이제 방아를 찧지 않는다. 토끼눈은 어쩌면 먼나무 열매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카나리아야자수 열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늘 아침에 두꺼운 구름을 뚫고 나온 해의 눈동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나의 목표는 뚜렷해졌다. 도박과 우울증과 싸우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도박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게임 중독에 걸린 사람들과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또한 대부분 우울증까지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올해 나의 목표는 도박중독과 우울증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온 힘을 다하여 싸워나갈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한 판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