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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an 02. 2023

따뜻한 고백

도박과 우울증 2




따뜻한 고백

도박과 우울증 2    



      

나는 나의 허물부터 고백하기로 한다. 나는 나의 잘못부터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로 한다. 나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므로 나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벌을 달게 받기로 한다. 나의 모든 자존심과 자존감과 프라이드를 내려놓고 도박과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독한 사람들은 정신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마음이 약하고 착한 사람들이 주로 정신병에 걸린다. 우울증에 시달린다. 마음이 약하고 한없이 착한 성백술 형님께서는 아마도 알콜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만 같다. 따뜻한 겨울 시집 안에도 ‘알콜 중독’이란 시가 있다. 또한 ‘도청’이란 시가 있는데 분열정동장애라는 병명으로 우울증, 자살위험, 피해망상, 조현병 등등 복합적인 상태여서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 등을 복용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아버지의 알콜 중독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술을 먹지 않기로 작정한 것도 아버지의 심한 주사와 폭력을 동반한 알콜 중독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의 우울증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라 도박 중독에 의한 우울증 때문에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도박 중독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고통을 받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도박 중독은 또한 심각한 경제적 파탄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병이다. 

    

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오후 3시 29분

현성이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카톡 문자를 보냈다.

“아빠 제가 할 말이 있는데 말로 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카톡 남겨요. 몇 년 전에 아빠가 도박 빚 갚아주셨잖아요. 그러고 나서 또 도박을 했었어요. 그래서 빚이 많아져서 대출을 알아보다가 그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 된 거예요. 그렇게 멍청하게 범죄자까지 되고, 그래서 몇 년 동안은 계좌도 못 만들고 아무 신용거래도 하지 못하게 됐어요. 오히려 저한테는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또 몇 년 동안 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데, 몇 년 동안 모으니 이자만 봐도 어마어마한 돈이 되었어요. 그때 아빠 몰래 그랬다는 게 제 마음에 항상 짐이었어요. 매일매일 악몽 꾸고 사람도 잘 못 만나구요. 이젠, 제가 몇 백번을 죄송하다고 했지만 진심이에요. 우울증도 심하구요. 사실 이제 저한테 즐거운 것도 없어요. 제가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건 병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몇 년이 지나도, 한 4년 힘든 것 같은데, 끝을 알 수가 없어요. 아빠 입장에서는 제가 한심해 보이겠어요. 정신상태도 나사가 빠져 보이실 것이고, 말에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주세요” 

    

띄어쓰기를 비롯한 불안정한 문장에서 현성이의 불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현성이가 외출을 잘 하지 않고, 밤새도록 컴퓨터만 하고, 낮에는 잠을 자고, 체중 관리가 안 되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1차도 합격하지 못 하고…. 기타 등등 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남몰래 방황하고 혼자서 자신만의 깊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새롭게 파악한 것은 대강 이렇다.

한성저축은행에서 21년 1월쯤에 1,000만원 20% 이자율로 빌렸고, OSB저축은행에서 같은 시기 21년 1월쯤에 500만원 20% 이자율로 빌려서, 지금까지 이자는 꼬박꼬박 엄마가 갚아주었다는 것이었다. 높은 이자율도 문제지만 돈을 빌린 원인이 충격적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에도 도박을 해서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도박 중독이 치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그러니까 16일 금요일에 현동이와 현성이가 함께 중앙병원에 가서, 현성이 상태를 알아본 결과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도박 중독 상담 센터까지 가서 상담을 받고 왔다고 하였다.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결과 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관대 선생님인 것 같았다. 064-786-7586 (전문진료분야 : 정신치료, 노인정신의학, 중독정신의학) 현성이에게 간접적으로 전해서 들은 이야기와 진료 분야 및 경력사항을 보니 믿음이 가고 꼭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렇게라도 더 늦기 전에 내가 알게 되어서 천만 다행이다. 그리고 현성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치료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경정신질환은 자기 자신이 정신질환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고 전문가의 도움을 스스로 요청할 정도라면 충분히 완치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숨기고 있었던 이유를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숨기는 행위는 치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고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임을 현성이와 가족들이 알아주면 더욱 고맙겠다. 물론 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서 나를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숨겨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며 현성이와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도 결코 바른 길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날 병원에 다녀와서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유리 컵을 바닥으로 힘껏 던져서 깨뜨리고 현성이는 스스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다른 어떤 식구들보다도 현성이 본인 자신이 가장 놀라고 가장 무서웠을 것이다. 지난날의 악몽을 재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에 휩싸였을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악몽 속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 공포감을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지는 일들 때문에 더욱 스스로가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치료가 어려울 것이다. 현성이 자신과 다른 가족들이 함께 힘을 합친다면 이런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와 천사가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이 둘 중에 누구에게 먹이를 많이 주느냐에 따라 악마가 이길 수도 있고 천사가 이길 수도 있다. 그런데 현성이는 지금 병에 걸려서 천사보다 악마가 힘이 세져 있는 것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천사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곧 천사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현성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마음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물리치기는 어려운 상태에 있다. 악마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몸의 주인을 속이면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성이가 스스로 악마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전문가와 가족들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나는 희망을 보았다. 현성이는 지금 어느 누구보다도 숨어있는 악마와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성이의 첫 메시지 중에서 “이건 병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고백하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자체로 이미 현성이의 병은 치료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의 힘으로 분노 조절이 어려운 상태이므로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하다보면, 나도 아직은 잘 모르는 것들이 많고 서툴러서 충돌이 심해질 것이고, 병을 오히려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서로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알고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중앙병원 고관대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치료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성이의 채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장 좋은 방법을 도출해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함께 해결하면 될 것이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종교를 갖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으니 현성이가 좋아하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으므로 우선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 집에서 할 수 있는 명상과 108배가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현성이에게 <귓전명상>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현성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잘만 따라서 하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일단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리고 현성이는 지금 바로 채무를 한꺼번에 변제하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현성이가 그나마 2년 가까이 도박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어도 도박을 할 수 없었던 환경 탓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도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쉽게 돈을 빌릴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환경 탓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독하게 마음먹고 딱 끊을 수 있다면 희망은 확실히 있다. 하지만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어떤 이유로든 다시 한 번 도박을 하게 된다면 우리들에게 희망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들은 영영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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