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우울증 4
어제는 낮에 근무를 하고 오늘은 밤에 근무를 해야 한다. 밭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밭을 둘러보니 어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은 풀들이 많다. 모시 잎과 줄기가 시들해지고 무화과나무 잎도 시들어지고 있다. 세상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추위를 견디며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과연 떠나는 쪽일까 끝까지 남는 쪽일까. 너는 또한 어느 쪽일까.
어제 차가운 눈을 맞았을 감을 따면서 생각하니, 어쩌면 지금 현성이 몸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와 악마는 자신들이 성현이의 몸과 마음을 차지하려고 각자의 방식으로 현성이 자신도 모르게 은밀하게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는 어쩌면 현성이를 이렇게 설득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현성아 지금까지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서 자꾸만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잖아. 이번에는 정말 전문가와 가족들을 믿고 가족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서 꼭 악마를 물리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다른 편에서 악마는 현성이 자신까지 속이면서 이번에도 은밀하게 현성이를 나쁜 쪽으로 조정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현성아 너는 이번에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쉽잖아. 언제나 너는 네가 목표한 것을 쟁취하고 말았잖아. 쉽고 즐거운 길이 있는데 왜 자꾸 어려운 길을 생각하고 그러냐. 너는 나만 믿고 내가 시키는 대로, 아니 내가 조정하는 대로만 연기하면 돼. 이번에도 분명히 너희 아빠가 한꺼번에 너의 빚을 갚아주고 너는 다시 새로운 빚을 내어서 네가 좋아하는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니까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밀어붙여보자. 알았지.”
이렇게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천사와 악마는 싸우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현성이 몸속에서 힘겹게 악마와 싸우고 있는 천사를 도와주기 위해서 현성이와 현동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화순 밭에 와서 일을 하면 일당 10만 원씩 주기로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이제 늙고 병이 들어서 몸에 무리가 가는 노동을 할 수가 없다. 며칠 전에도 대나무 뿌리를 캐고 바위를 캐내다가 어깨를 다쳐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현성이와 현동이가 나를 도와준다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현성이와 현동이에게 경제 공부를 좀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현성이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 같구나. 1,500만 원을 한꺼번에 갚으려면 큰돈이지만 원금을 조금씩 나누어서 10년 동안 갚으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서 매월 20만 원도 안 된다. 그야말로 휴대폰 요금 정도로 확 줄어든다. 그리고 갈수록 원금이 줄어들고 이자가 줄어드니, 세월이 갈수록 부담은 점점 더 줄어든다. 반면에 세월이 갈수록 물가는 올라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그래서 지금의 20만 원과 10년 후의 20만 원은 완전히 다르다. 10년 후의 20만 원은 지금의 2만 원과 거의 같아질 것이다. 이것은 경제의 기본 상식이다. 그리하여 가능한 장기로 원금을 갚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무조건 확실히 이득이다. 그런 기본 인플레이션이 있기 때문에 이자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자만 갚는 것과 원금을 나누어서 함께 갚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현성이는 이제부터 경제 공부를 좀 해야겠다. 이번 기회에 현성이와 현동이는 함께 경제 공부를 좀 하면 좋겠다.”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은 우선 경제관념이 없어진다. 하루하루 일당을 벌어서 돈을 모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룻밤에 10만 원으로 1,700만 원을 벌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땀을 흘려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10만 원 받는 것을 우습게 생각한다. 도박이 무서운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들의 의식구조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바뀌어버린 생각을 바꾸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 방법이 될 것이다. 현동이는 지금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서 다른 곳에서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일을 시키며 건강을 되찾게 할 뿐만 아니라 땀을 흘리며 몸으로 익히면서 도박에 중독된 마음을 조금씩 인내를 가지고 바꾸어가기로 작정을 하였다. 하루하루 함께 땀을 흘리면서 몸속에 자리 잡은 중독의 몰아내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반드시 회복시켜야만 할 임무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