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20221224 / 토요일 / 눈 및 추위, 크리스마스이브
12월 22일은 동지, 그날은 보통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옛날 사람들은 밤이 가장 길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시계도 없었던 시절 밤의 길이와 낮의 길이를 어떻게 측정했을까.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참 신기한 것들이 많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 추운 겨울밤을 어떻게 버틸까. 한라산 높이만 되어도 엄청나게 추운데 저 끝없이 높은 하늘은 얼마나 더 추울까. 별빛은 어쩌면 불빛이 아니라 얼음 빛이 아닐까 생각하는 겨울 새벽이다.
동지를 지났으니 이제 최대로 길어졌던 밤은 짧아지고 가장 짧아졌던 낮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나와 현성이와 가족들의 밤도 이제는 이미 짧아지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밝은 낮이 길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현성이의 건강진단을 계기로 나 또한 나 스스로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나를 들여다보니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었음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청소를 잘 하지 못하고 살았다. 방뿐만 아니라 밭이며 차 안이며 내 마음 속을 청소하지 못하고 어질러놓고 살았음을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들 마음의 병은 청소를 게을리 하면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현성이와 현동이가 내 방을 청소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여다보았다. 내 마음 속에 너무 많은 욕심이 있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온통 쓰레기만 쌓아가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현성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현성이가 오히려 나를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성이와 나는 서로의 거울이었다.
현성이와 나는 이제 마음속에 낀 때를 벗겨내기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으로 거듭나야만 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아름다운 시를 쓰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시인으로 거듭나야만 하리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힘들게 살았던 사람은 어쩌면 무명천 할머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의 어머니였던 이달막 여사님도 힘들게 사셨지만 무명천 할머니가 더 외롭고 쓸쓸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나는 돌아가신 이후에라도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명천 할머니에 대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메모를 한다. 나의 시들은 이렇게 메모로부터 시작을 한다. 문득 떠오른 메모 하나가 씨앗이 되어 싹이 나오고 부리가 나오고 잎이 나고 가지가 나와서 시로 자란다.
무명천 할머니 (2차 수정)
철커덕, 목에 걸리는 정방폭포
폭포에서 들려오는 베틀소리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명천이 흩날리고 있다
아, 무명천 할머니 베를 짜고 계시나보다
자신이 쓸 무명천이 아니라
폭포에서 떨어진 이들에게 입힐 수의를 짜고 계시나보다
하얀 두건과 턱받이 같은 목화 꽃을 토하며
폭포는 바다로 가는구나
한림읍 월령리 선인장 마을
벽에 걸린 무명천에 이름이 지워진
무명천 할머니 길이 바느질 되어 있다
빈 집 이마에 둥지를 튼 새 한 마리
할머니처럼 아래쪽 턱이 없어
말도, 울음도, 노래도, 하지 못한다
바닷가 선인장 마을 검은 돌, 울담 아래
조용히 울음을 말리던 할머니 보이지 않고
방 안 가득 걸려 있는 무명천에
소화불량과 관절염과 심장병의 진통제처럼
못 다한 음절들이 한 땀 한 땀 기어가고 있다
온몸 바느질 자국이 선명한 손바닥 선인장들
파도소리는 그날의 기억을 잠시라도 잊게 했을까
톳을 뜯으며 우물거리던 해변의 말들을
바다로 날아간 새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자물쇠로 걸어 감가도 자꾸만 쏟아지는
그 깊고 고독한 동굴 속 어둠을 어떻게 지났을까
비로소 득음한 무명천 할머니
지칠 줄 모르고 노래하며 베를 짜는구나
큰 소리로 노래하며 베를 짜고 있구나
무명천 턱받이도 풀려서 새처럼 날아가는구나
수의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떠난 님들이
뒤늦게 수의를 입고 하늘로 날아오르는구나
바다는 윤슬이 빛나는 목화밭으로 풍년이고
바다로 떠내려간 몸들이 수의를 입고 올라가
윤슬처럼 밤하늘 가득 반짝거리고 있구나
무명천 할머니 (1차 수정)
한림읍 월령리 선인장 마을에
벽에 걸린 무명천에 이름이 지워진
무명천 할머니의 길이 바느질 되어 있다
빈 집의 이마에 둥지를 튼 새 한 마리
할머니처럼 아래쪽 턱이 없어서
말도, 울음도, 노래도, 하지 못 한다
바닷가 선인장 마을 검은 돌, 울담 아래서
조용히 울음을 말리던 할머니 보이지 않고
방 안 가득 걸려 있는 무명천에
소화불량과 관절염과 심장병의 진통제처럼
못 다한 음절들이 한 땀 한 땀 기어가고 있다
온몸 바느질 자국이 선명한 선인장들
파도소리는 그날의 기억을 잠시라도 잊게 했을까
톳을 뜯으며 우물거리던 해변의 말들을
바다로 날아간 새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자물쇠로 걸어 감가도 자꾸만 쏟아지는
그 깊고 고독한 동굴 속 어둠을 어떻게 지났을까
철커덕, 목에 걸리는 정방폭포
폭포는 오늘도 베틀소리 멈추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명천이 흩날리고 있다
아, 무명천 할머니 베를 짜고 계시나보다
자신이 쓸 무명천이 아니라
폭포에서 떨어진 이들에게 입힐 수의를 짜고 계시나보다
폭포는 하얀 두건과 턱받이 같은 목화꽃을 토하며
바다로 가는구나
비로소 득음한 무명천 할머니
지칠 줄 모르고 노래하며 베를 짜는구나
큰 소리로 노래하며 베를 짜고 있구나
무명천 턱받이도 풀려서 새처럼 날아가는구나
수의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떠난 님들이
뒤늦게 수의를 입고 하늘로 날아오르는구나
바다는 윤슬이 빛나는 목화밭으로 풍년이고
바다로 떠내려간 몸들이 수의를 입고 올라가
윤슬처럼 밤하늘 가득 반짝거리고 있다
무명천 할머니 (메모)
한림읍 월령리 선인장 마을에
무명천 할머니 삶터가 있다
할머니는 이제 보이지 않고
벽에 걸린 무명천에 이름이 지워진
무명천 할머니의 길이 바느질 되어 있다
빈 집의 이마에 둥지를 튼 새 한 마리
할머니처럼 말을 토해내지 못 한다
바닷가 선인장 마을 검은 돌, 울담 아래서
평생 토해내지 못하고 조용히 울음을 말리던
진아영, 무명천 할머니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좁고 누추한 방에 가득 걸려 있는 무명천에
소화불량과 관절염과 심장병의 진통제처럼
살아서 못 다한 음절들이 한 땀 한 땀 기어가고 있다
작은 빈 집 시멘트벽에 그려져 있는 새도
할머니처럼 아래쪽 턱이 없어서
말도, 울음도, 노래도, 하지 못 한다
진아영으로만 살았던 고향마을 판포리로 간다
온몸에 가시의 바느질 자국이 선명한 선인장들,
하얀 두건과 하얀 턱받이 같은 목화꽃을 토한다
살기 위해 톳을 뜯으며 우물거리던 해변의 말들을
바다로 날아간 새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파도소리는 그날의 기억을 잠시라도 잊게 했을까
턱이 날아 간 아픔을 한시라도 잊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 앞에서는 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었던
그 깊고 고독한 동굴 속 어둠을 어떻게 지났을까
아무리 자물쇠로 걸어 감가도 자꾸만 쏟아지는
음식들과 희망들, 턱과 함께 날아가 버린 꽃잎들
월령리에서 판포리로, 판포리에서 성이시돌 공동묘지로
공동묘지에서 동광리 헛묘로, 헛묘에서 정방폭포로 간다
무명천 할머니는 헛묘까지 그림자처럼 따라오신다
무명천 할머니 같은 어머니가 함께 따라서 오신다
무명천 할머니 같은 나의 그림자도 따라서 온다
무명천 할머니답게 지금은 서천꽃밭에서
하얀 목화 꽃을 수확하고 있는 것일까
선인장 꽃들도 온통 목화 꽃으로 보이고
하늘의 구름들도 눈부시게 하얀 목화밭이 되었다
동광 육거리 임문숙 일가 헛묘를 들러
헛묘의 육신을 찾아서 정방폭포로 가는 길에도
바다는 윤슬이 빛나는 목화밭으로 풍년이다
무명천 할머니는 아무래도
뼈 오를 꽃과 살 오를 꽃을 먹고
서천꽃밭 목화밭을 일구는 꽃 감관이 되신 모양이다
아, 어디서 들려오는 절창일까
한 맺힌 소리를 찾아서 내려가니
무명천 할머니 득음하여 완창을 하시는구나
하늘에서 들려오는 베틀소리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명천과 삼베로구나
폭포수 두 줄기 바람을 따라서 몸을 섞고
하늘로 올라가는 이무기 쌍용이 되었구나
말로 토해낼 수 없었던 무명천 할머니
울혈을 토해내고 목청껏 노래를 하는구나
평생 무명천에 바느질 하던 솜씨로
수의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떠난 님들에게
수의를 입히려고 죽어서도 저렇게 베를 짜는구나
베 짜는 소리는 밤에까지 바다로 가는구나
죽어서 비로소 득음한 무명천 할머니
지칠 줄 모르고 노래하며 베를 짜는구나
큰 소리로 노래하며 베를 짜고 있구나
무명천 턱받이도 풀려서 새처럼 날아가는구나
철커덕 철커덕 자꾸 목에 걸리는 울음소리
철커덕 철커덕 쏟아 내지 못하는 독공소리
왈칵, 울혈 쏟아내고 목이 터진 명창이로구나
긴 독공을 마치고 명창이 되어 완창을 하는구나
수의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떠난 님들도
뒤늦게 수의를 입고 하늘로 날아오르는구나
아, 배달국 마고성, 탐라국 서천꽃밭
이어도서천꽃밭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아라
정방폭포에서는 오늘도 베틀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명천이 흩날리고 있다
무명천 할머니께서는 이제 베를 짜고 계신다
그런데 아,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무명천이 아니라 삼베를 짜고 계신다
자신이 쓸 무명천을 짜는 것이 아니라
정방폭포에서 떨어진 사람들에게 입힐 수의를 짜고 계신다
정방폭포에는 밤에도 베틀소리 멈추지 않는다
바다로 떠내려간 몸들이 수의를 입고 올라가 별이 된다
*
자비심,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며칠 전 정방폭포에서 자비심을 보았습니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베를 짜고 계셨습니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서천꽃밭에서
뼈 오를 꽃과 살 오를 꽃을 드시고
턱이 완전히 치료가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긴 독공을 마치고 절창으로 완창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무명천 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무명천들이 새처럼 날아오르고, 무명천 할머니께서 만든 수의들도 함께 파도처럼, 윤슬처럼 날아올랐습니다.
무명천 할머니께서는 정방폭포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의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에게 수의를 만들어 입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무명천 할머니의 사랑이 진정한 자비가 아닐까 저는 요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명천 할머니를 멋진 진아영 할머니로 부활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 시인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하며 긴 메모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메모한 것들이 모여서 좋은 시로 익어가기를 가다리고 있습니다.
이어도문학회 가족님들께 문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무화과 21
사람들은 꽃이 없는 줄 알지만 꽃이 너무 많아 숨겨 두었지 꽃이 너무 붉어 숨겨두었지 너에게만 남모르게 보여주려고 깊이깊이 더 깊숙이 숨겨 두었지 너에게만 살짝 길을 알려줄게 너에게만 온전히 꽃을 보여줄게
너에게만 보여주려고 숨겨둔 꽃 너에게만 열어주려고 닫아둔 문 너에게만 달려가고픈 사랑의 발 너에게만 안기고 싶은 나의 가슴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오직 너에게만 나의 사랑을 줄게 아무리 기다려도 너는 보이지 않고 새들이 쪼아대고 뱀이 똬리 틀고 붉은 혓바닥 내밀어도 오직 너에게만 나의 사랑을 보여줄게
20221225 / 일요일 / 눈 그치고 조금 따뜻함
부도지(符都志)는 천부경(天符經)을 기본 이념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도지(符都志)의 부(符)는 천부(天符)의 약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부도지(符都志)는 천부도지(天符都志)라고 할 수 있다.
부도지에 의하면 우리민족의 시원은 좁은 한반도에 갇히지 않고, 광활한 파미르고원과 중원의 땅까지 확장된다. 마고성의 위치는 지금의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민족에게 마고성의 이름은 지금도 마고할미와 지리산 노고단으로 남아있다. 에덴동산은 유대인들의 창세기이고 마고성은 우리 한민족의 창세기이다. 자, 우리 함께 우리들의 고향 마고성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마고성은 마고할머니가 만드셨고 탐라국은 설문대할망이 만드셨다는 여성 모티브가 비슷하다.
천부경은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경으로 9자 1구로 하여 9중 81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환웅 1세 거발환(서기전 3898~3805)이 천산(天山)에서 지상의 태백산 신시(神市)에 내려와 도읍하고, 신지(神誌 : 神志)이던 혁덕을 시켜 이를 기록 보존하게 하시어 신지가 전자(篆字)로 빗돌에 새겨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한문으로 번역하여 서첩(書帖)으로 꾸며 세상에 전한 것인데, 4250(서기 1917)년에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에서 수도 중이던 스님 계연수(桂延壽)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오래된 경전(經典)이다.
경전을 요약하면, 하나에서 아홉까지의 숫자를 가지고 천지창조와 그 운행의 묘리를 만물의 생장 성쇠의 원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 전문의 일부를 풀이하여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로 시작하되 시작이 아니고, 하나를 쪼개니 삼극이 되네. 천하의 근본은 다함이 없고, 하늘은 언제나 하나로 양이 되네, 땅은 하나에서 둘로 나눠 음이 되고, 사람은 하나에서 셋이 되어 양이라네. (중략) 사람이 하늘과 땅에 맞춰 하나 되니, 하나로 끝내되 끝이 아니네.” 전문 81자 중 1자가 11회 나올 만큼 “하나(一)”를 중시한 한(一ㆍ多ㆍ大ㆍ白ㆍ全ㆍ韓)사상과 삼신사상을 동시에 밝히고 있다.
천지장(天之章)은 대우주 생성의 원리를 다루었고, 지지장(地之章)은 만물의 생성을 다루었고, 인지장(人之章)은 인간 궁극의 문제를 다루었다. 1에서 9까지의 숫자가 지닌 원리를 통해 천(天) · 지(地) · 인(人)의 삼극(三極)이 태어나[生] 자라고[長] 늙으며[老] 병들고[病] 죽는[死] 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경위를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천 · 지 · 인이 한배하느님을 뜻하는 일(一)로 귀일(歸一) 또는 통일된다고 하는 것이다. 즉 하나는 우주의 근본이요 만유의 비롯되는 수이니 하나보다 먼저 비롯됨은 없으며, 그것을 분석하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삼극이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의 통일이나 인류의 세계일가(世界一家) 건설도, 천지 만유가 하나에서 비롯하여 하나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필연을 설명한 이 경전의 우주 원리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후로 이름만이 전하던 것으로서 위작(僞作)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우리 한국의 역사는 마고(麻姑)로부터 시작된다. 즉 우리의 상고대사는 마고시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육십갑자(六十甲子)로 칠 때 계해년(癸亥年)에 해당하는 서기전 70,378년에 지금의 파미르고원에 자리 잡고 있던 성곽의 도시에 삼베옷(麻衣)을 입은 신선(神仙) 같은 여성이 출현하여, 일단의 무리들을 다스리기 시작하니, 그 여성의 이름은 역사상 마고(麻姑)라 불린다.
마고는 파미르고원의 성곽도시에서 태어나고 살았으나, 그 선조들은 저 멀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었다. 즉 인간게놈 연구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서기전 8만 년경 이전에 지금의 동부아프리카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북쪽으로 동쪽으로 차츰 이동하여 마침내 살기에 적합한 파미르고원을 찾아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 사방으로 흩어져 살았으나, 파미르고원의 성곽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일정한 규율을 만들어 모두가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자재(自由自在)의 법을 이어 시행한 사람이 바로 마고(麻姑)였던 것이다.
자유자재의 법은 천부(天符)이다. 천부란 하늘의 뜻에 맞는다는 말이다. 천부(天符)에 포함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은 원래 홍익제물(弘益濟物)의 뜻도 함께 가지는 홍익인세(弘益人世)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이므로 일정한 계율이나 율법(律法)이 있었던 것이다. 공동선(共同善)을 위하여 천부(天符)에 따른 자재율(自在律)과 수찰법(守察法)이 있었던 것이 된다.
자재율은 자유자재의 법이며, 수찰법은 이러한 자재율을 지키도록 하는 법이다. 물론 마고 이전에도 천부(天符)는 존재하였다. 즉, 마고시대 이전에도 천부가 행해지던 시대가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마고시대를 현시대인 중천(中天) 시대라 한다면 그 이전은 선천(先天)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마고가 파미르고원의 성곽도시를 다스리기 이전에, 이미 성곽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 된다, 즉 마고가 임금이 되기 이전의 약 1만 년 사이에 사람들이 스스로 살고 활동할 보호구역을 만든다고 자연지형을 살리면서 성벽을 쌓아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스스로 보호하였던 것이다. 마고가 출현한 이후 성곽도시 내의 사람들은 마고의 보호와 가르침에 따라 피리(音)를 만들어 불며 자연의 소리를 노래하면서 풍류를 즐겼으며, 자연의 변화에 따라 어김이 없이 살았던 것이 된다.
마고는 '삼신(三神) 할미'라 불리고 또 '신선(神仙) 할미'라고도 불린다. 신선이란 도(道)를 닦아 터득하여 신(神)과 같이 된 존재를 의미한다. 마고는 선악(善惡)의 구분이 없는 원래의 선(善)을 닦아 인간의 참 본성(本性)을 터득한 상철(上哲)로서, 함께 하늘의 참 기운을 호흡하며 참 목숨을 알아 그 수명에 한이 없었던 것이다.
마고는 자연의 소리(音)에 따라 악기를 만들어 소리로써 다스렸다. 이에 따라 성 안의 사람들은 음악의 소리에 따라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다스려졌다. 즉 율려(律呂)에 따라 다스려지던 '율려시대'였던 것이다. 자연의 소리는 곧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마고는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라는 두 딸을 낳아 각각 오음칠조(五音七調)의 음절을 맡아 보게 하였다.
마고는 천체의 움직임도 살펴서 천문(天文)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낮과 하루를 알리는 해의 움직임을 살피고, 밤과 삭망(朔望)을 알리는 달의 움직임을 살피며, 별들의 움직임과 별자리를 관찰하여 정리하였던 것이다.
마고성 안에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풍부하여 굳이 다른 생명체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성 안에서 부드러운 풀들이 풍부하게 자라고 있었고, 양(羊)들을 잘 돌보며 잘 키워서 이 양들이 내어주는 젖을 받아먹으며 평화롭게 살았던 것이 된다. 과연 저절로 젖이 샘솟는 젖샘(乳泉)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미르고원에 있던 성곽을 마고가 살면서 다스렸다 하여 마고성(麻姑城)이라 한다. 마고성 안의 기후는 온화하여 사람이 살기에 아무 곤란함이 없었다. 그냥 지상천국, 지상낙원이었던 것이 된다.
이렇게 마고가 파미르고원의 성곽도시를 다스리기 43,200년 남짓 되었다. 물론 혼자 다스렸던 것이 아니라 마고라고 불리는 여성의 임금이 대를 이어가며 다스렸던 것이다. 마고를 보좌(補佐)하는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도 처음부터 줄곧 죽지 않고 그리하였던 것이 아니라 궁희와 소희라 불리는 여성의 보좌가 대를 이어가며 보조하였던 것이다. 즉 마고라는 명칭이 어느 한 사람의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궁희와 소희라는 명칭도 특정의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후에는 이름이 직책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된다.
궁희와 소희도 각각 2남 2녀의 자식을 두어 모두 4명의 남성과 4명의 여성이 있어, 4명의 남성은 율(律)을, 4명의 여성은 려(呂)를 맡게 하여 율려(律呂)가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서기전 70,378년 계해년부터 43,200년이 흐른 서기전 27,178년에 마고가 직접 다스리던 시대에서 마고의 두 딸인 궁희와 소희가 낳은 아들들의 족속이 불어나 그 씨족의 장(長)들이 회의를 열어 서로 의견을 모아 다스리는 화백(和白)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즉 서기전 27,178년부터 마고의 장손족(長孫族)이 화백회의(和白會議)의 최고 어른이 되어 다스리는, 마고성 시대 중의 소위 황궁씨(黃穹氏)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마고가 다스리던 시대를 중천(中天)시대, 황궁씨가 화백으로 다스리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후천(後天)시대, 마고 이전의 시대를 선천(先天)시대라고, 부도지(符都誌)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부도지(符都志)
정의
삼국시대 신라학자 박제상이 저술한 것으로 전하는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한 역사서. 비사.
개설
신라 때 영해 박씨의 선조인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저술로 알려진 『징심록(澄心錄)』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한 문헌이다.
편찬/발간 경위
박제상 사후에 박씨 종가에서 필사되어 전해왔다. 조선시대 세조 이후에는 영해 박씨들이 숨어살게 되면서 숨겨졌다가, 김시습이 저술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 의해 원본 『징심록』과 그 속에 있던 『부도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있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朴錦, 1895~?, 본명 박재익)의 복원본을 말한다. 박금에 의하면, 해방 후 월남할 때에 여러 대에 걸쳐 전수받은 원본을 함경남도 문천에 놓고 왔고, 분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원본에 가깝게 남한에서 복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금은 해방 전에 동아일보 재직 시에 이를 번역연재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1986년 김은수의 번역본이 출간되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서지적 사항
필사본. 오늘날 전하는 박금의 『부도지』는 1953년에 그가 필사하여 복원한 것으로 모두 33장으로 되어있다. 김은수는 1986년 이를 번역하여 출판할 때, 1장부터 26장까지를 『부도지』, 27장부터 33장까지를 『소부도지』라 하고, 여기에 김시습의 『징심록추기』와 박금의 『요정징심록연의후기』등을 보태어 4편으로 편집하였다.
내용
『부도지』에 따르면, 마고성(麻姑城)은 마고가 사는 성으로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며, 천부(天符)를 받들어 선천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성의 가운데는 천부단(天符壇)이, 사방에는 각각 보단(堡壇)이 있다. 천부는 천리를 숫자로 표현하여 우주법칙을 설명한 것이며, 천부삼인(天符三印)이란 천지 본음(本音)을 본 뜬 것이다.
이 마고성에서 출발한 한민족은 마고·궁희·황궁·유인·환인·환웅·단군에 이르는 동안 천산·태백산과 청구를 거쳐 만주로 들어 왔으며, 이렇게 시작한 한국의 상고역사는 하늘과 함께해 온 천도적(天道的) 의미를 지닌다.
부도(符都)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1장부터 26장까지의 『부도지』는 황궁에서 단군을 거쳐 읍루(또는 단군가륵)까지의 7세(世) 동안 천부(天符)가 전해온 역사를 7천년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7천년의 역년이란 단군 가륵으로부터 소급하면 서기전 9,100여 년으로, 이는 황궁씨가 출발한 때이다. 그리고 27장부터 33장까지의 『소부도지』는 후삼한과 삼국의 이야기로부터 부도의 재건과 복본(復本)의 회복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의의와 평가
『환단고기』에 비유되는 것처럼 아직도 전수과정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라져 버린 인류 시원문화의 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한민족의 국통(國統)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부도지』(윤치원 편저, 대원출판사, 2002)
『부도지』(김은수 번역·주해, 한문화, 2002)
『부도지』(김은수 역해, 기린원, 1986)
『부도지』(김은수, 가나출판사, 1986)
「김시습의 『징심록 추기』 고찰」(김재수, 『어문논총』9호,1986)
부도지(符都誌)
부도지는 징심록 상교 제1지라고 하며, 우리의 상고사를 기술한 사서 중에 가장 오래전의 역사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한 문헌으로 서기 1953년(단기 4,286년) 박금선생의 프린트 본으로 세상에 알려진 책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서의 저자는 영해 박씨의 시조인, 신라 눌지왕 때, 치술령 망부석의 주인공인 관설당 박제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도지의 내용을 율과 려, 음과 성, 음상과 향상, 5음 7조의 율려등으로 이치를 설명한 것으로 보아, 부도지는 박제상의 아들이며 방아타령의 대악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 지어서,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아버지 박제상의 이름으로 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해 박씨의 시조인 관설당 박제상은 또한, 천부경을 아들인 백결선생 박문량에게 전하였고, 백결선생 박문량은 신선사 마애불상들이 있는 단석산 깊은 곳에서 이를 해독하여, 다시 아들 박마령간에 전하였으며, 아들 박마령간은 이 천부의 이치를 김유신에게 가르쳐서 김춘추와 삼국을 통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전했다고 합니다. 또한, 귀주대첩의 박서장군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며, 근세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자초 무학대사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며, 세종대왕을 도와서 아악을 정리한 박연도 영해 박씨의 후손으로, 근세조선 초기에 영해 박씨를 중하게 등용한 이면에는 풀리지 않는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천부경의 내용이 적힌 징심록은 세조 반정때 숨어 버리며, 후에 금오신화의 저자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를 풀이한 금척지를 영해 박씨 문중에 전하였다고 합니다. 이 부도지가 박금선생에 의하여 전해진 것을 보면 그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부도지는 김은수님의 해설을 겸한 역서인데 제가 처음 읽을 때 좀 혼란스러운 면이 있어서 해설 부분을 제외하고 본문 부분만을 발췌한 것입니다. 김태형님의 부도지 해설서 <마고 복본을 꿈꾸며>가 비교적 정리가 잘되어 있어 함께 싣습니다.
제1장 : 마고(麻故)의 시대 - 김은수역-
第一章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에서 태어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第二章
선천(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麻姑大城)은, 실달성(實達城)의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여(呂)의 음(音)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도, 또한 이 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다.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성중(城中)에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呂)를,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第三章
후천(後天)의 운(運)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 음상(音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로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육해(陸海)가 병렬(?列)하고, 산천(山川)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서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을 살찌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 졌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萬物)의 본음(本音)을 나눠서 관장(管掌)하니, 토(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 되고,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 되어, 각각 궁(穹)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 하였으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 되고, 화(火)를 맡은 자는 흑(黑)이 되어,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것으로 인하여 성(姓氏)이 되었다. 이로부터 기(氣)와 화(火)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수(水)와 토(土)가 감응(感應)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 주는 까닭이었다.
第四章
이때에, 본음(本音)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어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出産)을 하게 하니, 이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가 지계(地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人祖)이었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몇 대(代)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니, 비로서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임무를 마치자, 금(金)은 변하여 먼지가 되었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여, 혼식(魂識)이 일어남을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을 하고, 백체(魄體)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壽命)이 한이 없었다.
제2장 : 부도(不渡)의 시대
第五章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곧 소(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었다.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여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第七章
이에 사람(人世)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고별(告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변이(變異)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소. 그러나, 스스로 수증(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복본(復本)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어, 시절(時節)을 만드는 광선(光線)이,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수(水)와 화(火)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 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第八章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헤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 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거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때에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第九章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第十章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 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제3장 : 배달국 시대
第十一章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수계제불 (修계除불) 하였다. 천웅(天熊)의 도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세(人世)가 의식(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조(條)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하게 하라. 2조는, 사람의 취적(聚積)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하게 하라. 3조는,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하게 하라.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집(罪集)으로 하여금, 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하게 하라 였다.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차(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시승(始承)하여 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2문(八音二文)을 수학하고, 역법(曆法)을 정하고 의약술(醫藥術)을 수업하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니, 홍익인세(弘益人世)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용(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인성(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제4장 : 임검(壬儉)씨 시대(조선시대)
第十二章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부도(符都)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에 회강(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第十三章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津)과 포(浦)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맥(生脈)이었다.
第十四章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수계정심(修?淨心)하여, 천상(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 하였다. 또 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奠)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듯이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가 태화(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게 전을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第十五章
또 예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에 공진하니,
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르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이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육(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개가 저린 어물과 조와 가죽류이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 하고, 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멎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세제(歲祭) 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 하므로 사 진과 사 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끗하게 하여, 지리(地理)를 거울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물성(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 본떠서 뭇을 파고, 곡수(曲水)의 사이에서 보새(報塞)를 지내고, 회연(會燕)하여 제물(濟物)하는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오행(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가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유족하였다.
第十六章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이 그 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영효(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제5장 : 오행(五行)의 화(禍)
第十七章
이때에 도요(陶堯)가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 번째의 큰 변이었다.
第十八章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 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여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 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第十九章
이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세(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처(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정명(正命)으로 입공(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第二十章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 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벙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邑)을 이루웠다. 유호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제족(諸族)이 자행(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대성의 일(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 일(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第二十一章
또 그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변행(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 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율(律)과 여(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의 윤멱(輪冪)은 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이요, 5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 중에서 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풍(風)(초(草)(석(石)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무혹(誣惑)하여, 곧 천화(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第二十二章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물사(物事)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인세(人世)와 불합(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이(理)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정증(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禍)가,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천세(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第二十三章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회(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4(7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분절이다. 이는 2(5(8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구가 1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6(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第二十四章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하군(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중(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제6장 : 잃어버린 부도의 법
第二十五章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생민(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고, 한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이,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理)를 설(說)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第二十六章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族)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願)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여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婁)의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제7장 : 삼한에서 삼국으로
第二十七章 (小符都誌)
은(殷)의 망명자 기자(箕子)가, 패군과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의 법을 행하고, 오행 삼정(五行三正)을 써서, 홍범 무함(洪範巫咸)을 시행하였다. 천웅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은의 군민(軍民)이 무력으로 부도의 유중(遺衆)을 억압하므로, 유중이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壇)을 봉해버리고, 동해의 물가로 피하여 살았다. 즉 옛날의 사례벌(斯禮筏)의 공지(空地)였다. 사해벌은 긴 기(長旗)니, 광야(曠野)에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 먼곳에서 살면서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곧 육촌(六村)을 설치하고, 입접의 제족과 분담하여, 함께 지키되, 각각 한(韓)이라 하고, 보위(保衛)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의 마한(馬韓)과, 남의 변한(卞韓)과, 동의 진한(辰韓)의 삼한이 부족의 자치를 행하고, 선세(先世)의 도를 굳게 지켜,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보위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이 때 하토(夏土)의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 혼란이 삼한에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보수(保守)하기가 장차 위태로우니, 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마침내 경계를 정하고, 요새(要塞)를 세워, 혁거세를 추대하여, 통어(統御)하는 일을 위임하였다. 남은 백제(百濟)요, 북은 고구려(高句麗)였다. 고구려가 곧 북보(北堡)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西侵)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보위하였다.
제8장 : 어둠속으로
第二十八章
이보다 먼저, 육부(六部)의 촌장(村長)들이 약(藥)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仙桃山壇廟)의 성모(聖母)가 알을 낳다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으로써 성을 삼고,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혁(赫)은 빛이니, 즉 광명으로써 암흑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수명(秀明)하고, 대인(大人)의 도가 있었다. 13살에 여러 사람이 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니, 거(居)는 거(据)요,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저들 서침하여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第二十九章
혁거세씨는, 천성(天性)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도 같았다. 또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들을 가르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선세(先世)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남태백산(南太白山)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 대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 의식(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여, 옥관(玉管)의 음을 내서, 율여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으니, 이는 황궁(黃穹)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배풀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순행(巡行)하여,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노적(露積)이 쌓이고, 집에는 베(布)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착한 일을 크게 일으켜, 여러 사람과 함께 그 고락(苦樂)을 같이 하고, 밖으로 방패와 창을 쓰지 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복고(復古)하고, 중건(重建)하는 일에 전념하니, 경내가 도가 있어, 옛날과 흡하사였다. 이 때에 변진(弁辰)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 경계를 두고 방비하나, 나라를 칭하지 아니하고, 또 왕을 칭하지 아니하였다. 경내를 다스리는 일은 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이, 역시 혈계(血系)를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를 삼았다.
第三十章
남아 나이 20살이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馬郞)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다. 혹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의 여러 지역에 가니, 이 원행은 부도 수신(修身)의 유제(遺制) 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 지 천여년사이에 제시의 회(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 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族)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였다. 천부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혹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변형(變形)하여, 음이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이 심히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 원행에서도 절조를 지켜, 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을 극복하여 사명을 완수하니, 그 거룩한 인격이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 귀환하면, 반드시 직사(職事)에 임명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을 공부하게 하니, 이는 즉 선세에 사해를 통화하여, 인세(人世)를 하나의 법에 맞추는 유업이었다.
第三十一章
서례벌(西禮筏)을 창도(創都) 한 후로, 어느덧 삼세(三世)를 지나니, 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왕(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 하게 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의 유법이 밝고 밝게 천부를 비추니, 지금 비록 시대가 어려우나, 보수하고 튼튼히 방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소자(小子)가 되어, 패리지중(悖理之中)에서, 모독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진도(眞道)를 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방비를 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 시끄러움이 그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보수한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 부강하게 된 후에, 유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 사해 제족이 사도에 미쳐 날뛰어, 봉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가 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 만약 능히 방비하여, 보수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립되면, 새 백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되어, 오히려 이도(異道)가 되고 세상에 존립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 택할 바는,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여,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 전역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부도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第三十二章
이에, 마침내 중론(衆論)이 결정되었으므로 인망(人望)이 왕국 수립을 주장하는 석(昔)씨에로 돌아 왔다. 석씨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해빈(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 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자리를 이어 탈해왕(脫解王)이라 칭하니, 즉 보수(保守)의 질고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경내(境內)를 평정하였다. 용병(用兵)을 과도하게 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 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에게로 돌아 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이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 중론이 김씨의 중화(中和)로 돌아왔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비족으로, 온양덕후(溫讓德厚)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 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患)이 계속해서 일어나되,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세 사이에 정사(征事)가 허다하여, 민물(民物)을 탕진하므로,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第三十三章
오직 우리, 근본을 지키는 족들이 동해에 피하여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으니, 가히 역외(域外) 풍운이 어떠함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의 진리가 사단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 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가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과격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를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천부의 실재를 알게 하며, 또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때를 만나 그것을 행하게 하여, 능히 부도를 다시 건설하고, 사해를 통화하며, 인세가 복본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하면, 당시 석씨의 논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題詩
[아지랑이 초초(??)하게
흐르는 걸 바라보니,
나그네의 마음도
가을처럼 지는구나.
세간(世間)의 견백(堅白)도
유유(悠悠)한 일도
징강(澄江)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잊는다.]
觀雪堂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계속 출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