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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an 01. 2021

나이가 든다는 것

#08. 자글자글

요즘 나이 드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문득 돌아보니 어린 시절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나머지 시간들은 듬성듬성 징검다리처럼 남아있었다. 나이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10대 때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했다. 학교는 답답하고 공부도 그만하고 싶고 머릿속은 깨질 것처럼 복잡한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어른이 되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성인이 된 20대는 대체로 자유로웠다. 시간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생각했다. 유일하게 부족한 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텐데 그게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많은 시간과 젊음, 건강이 있었지만 잃어버리기 전에는 가지고 있는 줄 조차 몰랐다.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 건 스물여섯부터였다. 시간은 여성에게 더 야박하다. 여성은 임신이 가능한 시기가 있고 개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타이머 맞춰진 기계처럼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20대 후반부터 거의 100프로 확률로  '어머 어리지는 않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을 때 그게 출산 데드라인과 관련된 거라는 걸 당시엔 전혀 몰랐다.  



나에게는 어떤 꿈이 있었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깨달은  28,9쯤이었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길을 잃었기에  이상은 원하는 것만   없었다. 주위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다. 그때 내가 해야 했던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증명하는 거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지독한 일이었다.  줌의 먼지가 되어 끊임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는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  달은  년이 되다 보니 앞자리가 바뀌는지도 몰랐다. 30대가 익숙해지자 어느새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못하는 일이 많고 20 못지않게 돈이 없으며 특별히 아는  많아진 거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예전에는 나이 드는 게 무섭지 않았다. 왜냐면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땐 하지 못했던, 못할 거 같았던 일들을 극복해 온 시간이 있다. 나는 그게 나름 대견했고 성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일상과 환경이 똑같더라도 삶은 나아지고 있다 생각했던 거 같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도달한 지금은 어딘가에 꽉 낀 거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1년 전과 오늘이 같지는 않다. 인생은 턱없이 길고 매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이지만 기억에도 없이 지나가게 될 거 같다. 새삼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엔 삶이 너무 긴 거 같다. 한 해가 끝나고 또 나이가 들었다. 올해의 소원은 우회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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