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자글자글
요즘 나이 드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문득 돌아보니 어린 시절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나머지 시간들은 듬성듬성 징검다리처럼 남아있었다. 나이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10대 때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했다. 학교는 답답하고 공부도 그만하고 싶고 머릿속은 깨질 것처럼 복잡한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어른이 되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성인이 된 20대는 대체로 자유로웠다. 시간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생각했다. 유일하게 부족한 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텐데 그게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많은 시간과 젊음, 건강이 있었지만 잃어버리기 전에는 가지고 있는 줄 조차 몰랐다.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 건 스물여섯부터였다. 시간은 여성에게 더 야박하다. 여성은 임신이 가능한 시기가 있고 개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타이머 맞춰진 기계처럼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20대 후반부터 거의 100프로 확률로 '어머 어리지는 않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을 때 그게 출산 데드라인과 관련된 거라는 걸 당시엔 전혀 몰랐다.
나에게는 어떤 꿈이 있었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건 28,9쯤이었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길을 잃었기에 더 이상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었다. 주위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다. 그때 내가 해야 했던 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였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지독한 일이었다.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끊임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는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한 달, 한 달은 일 년이 되다 보니 앞자리가 바뀌는지도 몰랐다. 30대가 익숙해지자 어느새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못하는 일이 많고 20대 못지않게 돈이 없으며 특별히 아는 게 많아진 거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예전에는 나이 드는 게 무섭지 않았다. 왜냐면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땐 하지 못했던, 못할 거 같았던 일들을 극복해 온 시간이 있다. 나는 그게 나름 대견했고 성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일상과 환경이 똑같더라도 삶은 나아지고 있다 생각했던 거 같다. 그런데 30대 중반에 도달한 지금은 어딘가에 꽉 낀 거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1년 전과 오늘이 같지는 않다. 인생은 턱없이 길고 매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이지만 기억에도 없이 지나가게 될 거 같다. 새삼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엔 삶이 너무 긴 거 같다. 한 해가 끝나고 또 나이가 들었다. 올해의 소원은 우회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