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자글자글
말 달리자로 유명한 크라잉넛은 똘끼 충만한 조선펑크의 상징이지만 실제로는 준법정신 충만한 모범 밴드다. 법망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유흥에 최선을 다하고 사회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큰 규모의 중요한 집회에는 언제나 크라잉넛의 노래가 울렸다. 수익을 N 등분하는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팀의 화목을 지켜내고 후배 밴드 발굴에도 힘쓴다.
그들이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던 감수성 예민한 10대 때는 크라잉넛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말 달리자는 속 시원하다기보다는 시끄럽고 과격하게 느껴졌다. 좋아하게 된 건 20대가 되고 나서였다. 친구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 멍하니 노래방 기계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가사가 너무 좋은 거다. 누구 노래냐고 물어보자 크라잉넛 노래라고 했다. 크라잉넛 노래 가사는 산문시 같다.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렵지 않고 소설처럼 구구절절하지도 않다. 문맥을 자연스레 잇기보다는 단어들끼리 부딪히며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 크라잉넛 노래가 풍자적이라는 건 유명하지만 의외로 낭만적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내 첫 이별곡은 크라잉넛의 ‘새’다. 이별 후 그들의 공연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었다. ‘새’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이렇게 끝이 났지만 후회는 안 할 거예요
나의 그대는 새처럼 날아갔으니
새파랗고 높은 하늘
하늘 위엔 아마 오존층이 파괴됐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
잘 가요 저기 멀리
예전에 크라잉넛이 김창완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DJ인 김창완은 이 노래를 듣고 도대체 무슨 뜻이냐며 해설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별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떠나가는 님의 안위를 위해 환경문제까지 걱정하는 이 놀라운 생각의 징검다리. 왠지 뭉클해진다. 크라잉넛은 뜨거운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만큼 이면에 언제나 체념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또 다른 이별곡 ‘뜨거운 안녕’의 가사는 이렇다.
잘 가요 안녕이라 하고 말해주세요 나에게
헤어짐이 아쉽단 거짓말 하지 말고
저 별 넘어가신다 해도
별일이야 있겠어요
모든 일은 지나갔고 별일은 없다. 노래는 너무 신나는데 왠지 또 울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