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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Feb 17. 2021

반항과 체념

#10. 자글자글

말 달리자로 유명한 크라잉넛은 똘끼 충만한 조선펑크의 상징이지만 실제로는 준법정신 충만한 모범 밴드다. 법망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유흥에 최선을 다하고 사회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큰 규모의 중요한 집회에는 언제나 크라잉넛의 노래가 울렸다. 수익을 N 등분하는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팀의 화목을 지켜내고 후배 밴드 발굴에도 힘쓴다.


그들이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던 감수성 예민한 10대 때는 크라잉넛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달리자는 속 시원하다기보다는 시끄럽고 과격하게 느껴졌다. 좋아하게 된 건 20대가 되고 나서였다. 친구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 멍하니 노래방 기계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가사가 너무 좋은 거다. 누구 노래냐고 물어보자 크라잉넛 노래라고 했다. 크라잉넛 노래 가사는 산문시 같다.  알아들을 정도로 어렵지 않고 소설처럼 구구절절하지도 않다. 문맥을 자연스레 잇기보다는 단어들끼리 부딪히며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 크라잉넛 노래가 풍자적이라는 건 유명하지만 의외로 낭만적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내 첫 이별곡은 크라잉넛의 ‘새’다. 이별 후 그들의 공연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었다. ‘새’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이렇게 끝이 났지만 후회는 안 할 거예요
나의 그대는 새처럼 날아갔으니
새파랗고 높은 하늘
하늘 위엔 아마 오존층이 파괴됐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
잘 가요 저기 멀리



예전에 크라잉넛이 김창완 라디오에 출연했을  DJ인 김창완은 이 노래를 듣고 도대체 무슨 뜻이냐며 해설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별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떠나가는 님의 안위를 위해 환경문제까지 걱정하는 이 놀라운 생각의 징검다리. 왠지 뭉클해진다. 크라잉넛은 뜨거운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만큼 이면에 언제나 체념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또 다른 이별곡 ‘뜨거운 안녕’의 가사는 이렇다.



잘 가요 안녕이라 하고 말해주세요 나에게
헤어짐이 아쉽단 거짓말 하지 말고
저 별 넘어가신다 해도
별일이야 있겠어요



모든 일은 지나갔고 별일은 없다. 노래는 너무 신나는데 왠지 또 울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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