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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Sep 22. 2023

조직검사를 했어요

리사의 love yourself

며칠 전, 건강검진을 했다.


삼십 대 말부터는 거의 일 년에 한 번씩 종합검진을 받고 있다. 절친한 친구가 삼십 대 말에 대장암 판정을 받고 고생을 하는 것을 본 것도 있고 친정 쪽으로 아빠, 엄마가 암을 앓으셨기에, 유전력도 있다. 그래서 늘 건강검진을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긴장도 되고 걱정이 있다.


이번에 위와 대장 내시경을 같이 진행하며 당일 바로 내시경에 대한 상담을 듣고 간다. 전 날 밤부터 속을 비우기 위해 2리터 가까운 양의 장청소 약을 먹고 너무 힘들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속이 비는 경험은 3년 만이다. 대장 내시경은 지난 2020년에 했었다.


지난번에는 내시경 중간에 선잠 들듯 잠깐씩 정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담당자 분과 상담 중에 해서 그런지 정말 약을 주입하고 꿀잠을 잔 것 같다. 아무 기억이 없이 회복실에서 깨어나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하며 정신을 차려 본다. 목도 아프지 않고 아무렇지 않다. 그런데 힘이 없이 풀썩 대기실 의자에 드러눕게 되는 걸 보니 힘들긴 했나 보다.


모든 종합검진을 다 마치고, 내시경 상담을 가니 대장에는 작은 용종이 있어 바로 절제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 내시경을 보여주며 여기저기 염증이 있다 하신다. 작년 위 내시경에서는 가벼운 역류성 식도염 정도가 있었고 위장은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염증이 많이 늘었다. 다발성 염증의 흔적과 조직을 떼서 검사를 한쪽도 보여준다.


'조직 검사를 했습니다."


나는 순간 의아했다. 왜 조직 검사를 했지? 암인가? 어디가 안 좋은 건가? 헬리코박터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상태가 안 좋아서 조직을 떼었나?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다.



나는 마흔둘이다. 순간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40대, 내 나이 즈음에 위암 수술을 하셨다. 두세 해 후에는 재발해서 또 위를 거의 다 잘라 냈다. 그리고 예순셋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도 사십 대 중, 후반에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 그러니 나는 암에 관해 안전하지 못한, 항상 경계하고 살아야 하는 위험군인 셈이다.


몇 해 동안 위 내시경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조직검사를 했다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 사실 걱정이 아얘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순리대로 가야지. 안 좋은 것이라면 치료를 하면 되고, 다행히 아무것도 아니라면 건강 관리를 하면서 또 가슴을 쓸어내리면 될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했다. 내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건강한 것을 먹고, 더 많이 쉬고 마음을 편히 하는 것이다. 마음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결국 병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쁜 음식도 역시 암세포에 일조한다. 나는 암이든 그 무엇이든 내게 다가오는 대로 다 해낼 것이라 믿는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가짐이니, 지금 내가 먹는 마음이 훗날 또 나를 만들어 가겠지.



오늘 선택한 나의 믿음은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감사하기다. 다시 한번 나에게 사랑과 인정의 말을 해 준다.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괜찮아. 지금까지도 참 잘해왔고, 너는 잘 살아왔어. 혹시라도 건강이 상했다면, 그건 또 너를 더 잘 돌보라는 신호로 알고 더 노력하면 돼. 결국 너의 인생은 해피엔딩일 테니 과정을 늘 즐기는 네가 되길 바라. 사랑해."


언제나 그렇게 모든 나의 희로애락의 시간에 함께 할 내가 있어 감사하다. 조직검사, 그 까이꺼, 뭐 되는 대로 되라고 해. 삶은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그 모든 길을 열어 줄 테니, 그저 맡기고 따라가면 될 것이다.

'

햇살이 참 좋고, 가을바람이 시원해서 오늘도 기분이 좋았다. 가끔 슬프기도 했고, 사람을 만나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오가는 슬픈 마음은 아마도 가을에 민감한 내 경험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 또한 괜찮다. 가을에 슬픈 마음이 뭉클하고 올라오는 건 내가 잘 살았다는 증거다.


가을 원래 그렇게 사랑꾼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존재니까. (그리스인 조르바 책 속의 조르바라는 인물의 삶의 태도를 무척 사랑한다)


자유롭게 흔들리는 우리는 그렇게 히잉, 히잉, 아이 같은 울음을 머금고 가을과 나 뒹구는 힘없으면서도 사랑스러운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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