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의 love yourself
"엄마 왜 갑자기?" 장독대 정리는 굳이 왜 해요?
"응..엄마 죽고 나면 너네 정리할 때 힘들까봐 미리 미리 정리하는 거야."
통영 한 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계신 일흔이 넘은 엄마는 다리도 좋지 않고 허리도 아픈 할머니가 되셨다. 2층집 가게 옥상에는 장독대 큰 것이 두어개 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자식들이 그 장독들 정리할 일이 걱정이셨는지 이번 추석 명절 사위들을 동원해서 옥상의 장독을 1층으로 내렸다.
나는 문득 아빠가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하던 그날이 떠올랐다. 좁은 주택집에 어찌나 그렇게 다양한 물건들이 많던지 다들 놀랐었더랬다. 아빠는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셨고 외부에서 주워 온 물건들까지 합하니 한 트럭도 모자라 세 네 트럭이 와서 실어가야 할 정도였던 것같다.
그러면서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나 죽을 때는 가볍게 돌아가도록 미리 미리 정리를 하고 싶으셔서? 생각해보니 공감이 가는 마음이다. 엄마 뿐 아니라, 사십대인 나도 사실 언제 지구별 여행을 종료하게 될지 모를 신세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데카르트 식으로 말하면, 세상에 불쑥 던져진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엔딩마저 예측불허다. 그저 "지구별에서 이제 그만 나오세요~ 시간 다 되었네요." 하면 두말없이 가야하는 존재들 말이다.
엄마는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신 걸 느끼는지 죽음을 준비한다. 일흔 셋이면 요즘 나이로 한 육십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엄마는 체험적으로 한 십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듯 하나씩 준비를 하실 모양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게 무슨 말씀이냐, 그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하지도 말아라 했을텐데 수긍이 간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 말이다.
아빠는 예순 셋이 지구별 여행을 끝내고 온 곳으로 가셨다. 아주 이른 나이, 예순 셋. 그 이후로 내 삶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좀 즐겁고 가볍게 살기로 나는 우주보다 무겁던 마음을 가볍게 내려 놨다. 아빠도 본인이 떠나고 나서 하늘에서 나를 지켜 봤을때,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딸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빠를 보내고 덜컥 찾아온 거대한 상실감과 삶의 방황에 나는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라는 애도의 책을 썼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작가가 되었다. 이것은 아빠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 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꾸준히 삶을 글로 쓰며 내 마음과 친하게 지내는 요즘이다.
그런데 문득 엄마의 장독대 정리 사건이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엄마도 언젠가 아빠처럼 지구별을 떠날텐데 나는 그 슬픔을 또 다 어찌 해결한단말인가. 생각만해도 슬픈 마음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내 마음에서 한 목소리를 만났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한테 엄마와 함께 한 감사와 헤어짐의 슬픔을 담은 애도의 책을 미리 선물해보면 어떨까? 아빠는 돌아가셔서 니가 쓴 책을 직접 안아 볼수 없었잖아, (물론 하늘나라에선 보셨겠지만)엄마는 아직 감사하게도 우리 곁에 계시니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선물을 드릴수 있을거야. 진하고 깊은 감사의 이야기들을 전해도 좋을 것 같아. 너도 알잖아. 부모님이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지 우리는 아무도 몰라"
이렇게 나의 인생 두 번째 책 영감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살아계신 엄마를 향한 죽음의 애도책을 선물하겠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엄마에게 다가가고 또 나 자신에게 다가간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던 날들을 몹시도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에게 조차 말하기 힘든 나만의 고통의 삶의 구간을 지났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엄마대 엄마로 또는 지구별 여행자 친구와의 대화로 여기며, 참 애쓰고 살았다며 위로의 포옹을 글로 주고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쓴다.
엄마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엄마의 지구별 여행, 그렇게 엄마와 내가, 엄마대 엄마로, 지구별 여행을 떠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