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의 love yourself
일과가 바쁠 때, 잠시 멈춰서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지면 분주하던 마음에서 잠시 내려와 차분하게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영어 강의 준비와 마인드 유지에 여러 가지로 바쁘고, 블로그 쓸 것도 많다.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집을 협찬으로 다닐 때이다. 여행이 좋고, 출강을 하러 가는 차 안에서의 시간도 행복하다. 중고등학생들 시험 준비로 하나라도 더 봐줘야 하니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또 그 아이들이 나의 삶에 와 있어 감사하기도 하다. 우리 딸, 아들 밥 챙겨 주는 일도 즐겁고, 그 아이들이 공부를 스스로 잘해나가는 것을 보면 감사하다.
이 모든 나의 역할들 뒤에, 나는 진정한 내가 무엇인지 늘 묻는다. 그래서 나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불교 법문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놀란 순간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을 때였다. 불교 법문뿐 아니라 영성에 관한 책들을 보면, 결국 나라는 존재는 몸을 벗어난다. 나는 이 몸도, 마음도 아니라는 것. 나라는 존재는 몸과 오가는 마음을 넘어선 그 위에 있다는 것.
진정한 나는 오가는 모든 것을 품는 마음의 자리, 하나의 허공성, 텅 빈 스크린, 배경. 그 무엇이라 불릴 수도 있고, 그 무엇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
늘 내 몸뚱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살다가, 이 존재에 대한 설명에서 나는 세상에 통째로 달라 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치열하게 오늘을 잘 살아 보자 파이팅 넘치게 스스로를 격려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고 무너지고, 엉망이 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 모든 몸부림들은 내 에고가 하는 일들이지 진정한 나라는 존재는 그것을 바라보는 그것이라는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몸을 데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지금 이 삶은, 내 삶은 어디쯤 가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늘 '모르겠다'였다. 내가 왜 이 삶 속으로 던져져서 이런 온갖 마음고생과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점점 마음공부를 하다가 보니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왔다.."아.. 그런 거구나.. 결국 그걸 하러 온 것이구나.." 바로 내가 지구별에 여행을 온 이유를 이해하는 순간 삶은 다른 것들을 보여 주었다.
"사랑하는 일."
결국 그것이 전부다.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더 사랑하고, 그들을 더 사랑하는 일이다. 그걸 위해 영어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아이들 엄마가 되기도 했고, 그들 친구이기도 한 것이다. 너무 가볍고 경쾌하고 삶이 그저 지구별 소풍 같다. 언제나 삶은 애쓰고 힘든 그 무엇이었는데 요즘 참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그저 오늘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한다."
내 존재가 좋고 사랑스럽고, 내게 온 그들이 참 좋고 사랑스럽다. 그들에게 슬픔과 화가 보이면 안쓰럽다. 나도 그런 감정을 너무 깊고 진하게 느껴 보았기에 그저 그 감정들이 내가 껴안아 줘야 할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고, 사랑과 이해와 용서가 더 커져간다.
나도 물론 인연에 따라 화도 내고, 짜증도 나고, 울고 웃지만, 그걸 바라보는 눈이 더 커졌고 빨라졌다. 이제는 그 오가는 감정들이 내가 아닌 것을 알기에 오면 왔냐고 잘 알아봐 준다. 그것만으로도 삶이 정말 가볍다. 내 앞에 그 사람에게 그저 미간에 레이저가 있는 것 마냥 '사랑해, 사랑해'를 발사하며 관계를 맺으니 사람들이 다 내 사랑을 받고 따뜻하게 변해가는 것 같다.
나는 의식이 닿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고, 내가 되고 그가 된다. 신비로운 오늘의 여정,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답을 하며 오늘의 행복한 글쓰기를 마무리한다.
'더 큰 사랑이 되어 영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나는 지금 충분히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흐르고 넘치는 사랑이 더 큰 사랑이 되어가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