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글감 달력 2507
오늘의 글감은 <당신의 절친 소개하기>입니다.
"이 고로케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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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의 인연은 고로케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도 나는 고로케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고로케가 참 싫다.)
고3 야간 자율학습 대신 친구와 학원을 다니던 나.
여중, 여고 시절. 나는 그때 남녀가 함께 하는 종류의 학원은 처음이었고, 남고 학생들 반,
여고생들 반. 이런 조합으로 다들 한 반이 가득가득 차던 시절이었다.
학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삐쩍 마른 범생이처럼 생긴 한 아이와 그보다 더 키 큰 마른 녀석 둘이 늘 콤보 세트처럼 같이 붙어 다녔다. 알고 보니 그 학원에서 공부 꽤나 잘하는 남고 애들이었다.
날라리 범생이 같은 그 녀석이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것이다.
" 야, 이 고로케 먹을래?"
나와 친구는 배도 고프고, 뭐 딱히 그때는 그 호의가 싫지 않아 그 고로케를 먹는다 했다.
내 기억으론 같이 다닌 친구도 예쁘게 생겼고,
우리에게 관심이 있나? 하고 착각도 했다.
(같이 다니던 친구는 이미 훤칠한 남친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학원에 다니며 차량에서도 오가며 살짝 탐색전이 있었으며, 휴대폰이 막 보급되던 시절, 그는 내 번호를 물어봤고, 결국 그날이 왔다.
우리 집 근처 희망독서실이 있었는데 그쪽으로 찾아온 그 녀석,
그 녀석이 날 불러내어 말했다.
"우리 사귈래?"
그렇게 나에게 사귀자는 말을 했고,
나는 바로 답하지 않고 한참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귄다는 말은 좀 그래.. (너무 날라리티 나는 느낌이었다 내 기준에 그 당시에는..)
그냥, 영혼의 단짝 친구 같은 거 할 거면 그러던지.."
......
'으아아아아아악~~~~~~~~~~~~~~~~~~~~~~~~~~~'
'그게 뭐니....'
지금의 내가 그때의 순수 덩어리 그 자체였던 내게
한방 날려주고 싶다.
영혼의 단짝, 그딴 소리 제발 집어넣으라고..
으.... 윽.. 수치심이 올라온다. 그때 생각하면...
왜 그런 소리를 날려서, 결혼하고 중1, 중3인 아이 둘의
엄마, 아빠가 된 우리.
아직도 남편은 그렇게 말했던 나를 놀린다.
"여보, 영혼의 단짝이잖아 우리, 소울메이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사귀고 한참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자기는 고로케 싫어해서 그냥 앞자리에 보였던
나에게 그걸 준 것이라고.
그런데 점점 보다 보니 나도 그쪽에 호감 있어 보이고
그도 좀 그랬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본 것이란다.
(그놈의 고로케, 괜히 왜 줘서..)
고3 8월에 만나서 아직까지 "내 영혼의 단짝이"다...
우리 나이 마흔넷,
이제 키워주신 부모님과 보다 둘이 알고 지낸 세월이 더 길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친하고, 때론 서로 괴물 같은 존재가 되는 그와 나.
동갑이라 더 치열하게 지지고 볶고 싸웠더랬다.
마흔 즈음에는 뒤늦게 찾아온 내 사춘기( 마흔 춘기)가 폭발을 해서 정말 그 친구와 이혼할 뻔했다. 그동안 긴 시간 쌓아둔 말도 안 되는 억울함 등을 폭발적으로 터뜨렸던 시기였나 보다.
이혼의 밑바닥까지 겪고 나니 서로를 더 진지하게 보게 된다. 이혼은 결코 최선이 아니었고, 결국 서로를 이해해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
나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가장 편하고 친한 친구를 물으라면 나는 지체 없이 남편을 택할 것 같다.
너무 힘들게 찾은 그와 나의 오늘의 평온.
이 평온한 관계가 그저 감사하고, 좋다.
오늘 이 글을 쓰며 문득, 다시 그 '희망 독서실 앞' 그와의 그 시간이 떠올라 웃었다.
"나랑 사귈래?"
"ㅍㅎㅎㅎㅎㅎㅎㅎㅎ"
그 시절 나를 좋아하던 대학생 오빠가 있었는데 나 수능 시험만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오빠가 먼저 고백할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선수를 쳤기에.. (오빠가 너무 기다렸나? 졸업하려면 6개월이나 더 남았었는데..)
오늘날 우리 중학생 두 녀석이 귀엽게 우리 곁에 있다.
너희를 만난 건 다 그놈의 고로케 때문, 아니 덕분이야..
그런데.. 얘들아..
엄만 아직도 고로케가 싫구나..ㅎㅎㅎ
사랑해.. 우리 가족..
그리고 나의 절친 '영혼의 단짝', aka '소울 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