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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Oct 24. 2022

부모님을 3인칭으로 바라보면서..

에필로그


지긋지긋하게 술을 마시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빠, 아빠에게 무력하게 사는 것 같은 엄마, 부모님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날이 있었다. 아빠 엄마가 왜 그런 선택과 결정들을 하고 살아오셨는지, 가족으로서는 답답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일들이 많았다. 그저 가족이기에 묵묵히 받아들였던 시간을 지나며, 이제 나도 부모님만큼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었다. 내가 내 부모님을 아빠, 엄마가 아닌 한 남자와 여자, 한 소년과 소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 아빠이기 이전에 '정윤'으로 어린 시절 이름 불리며 살았고, 엄마는 '옥례'로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나으면서 우리들의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어 그렇게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사셨다. 아빠의 원래 이름은 '정윤'이 아닌 '윤수'이지만 어릴 적 집에서 불리던 이름으로 아빠를 3자로 바라본 것은 그 시절에 아빠의 상처가 시작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어린 '정윤'의 상처가 치유되고 아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 닿지 않았을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마흔이 되면서, 내면에서 올라오는 슬픔들이 말을 걸어왔고, 그 내면아이들과 싸워도 보고 부둥켜안으며 울어도 보았다. 어느 날은 행복한 추억으로 함께 내려가 기쁘고 설레던 마음과 닿았고 하루 종일 즐거웠다. 나는 우울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나의 내면아이들에게 감사한다. 내게 우울증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빛깔을 잃은 회색도시의 사람들처럼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안은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 후 3년,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마주 보았고,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하고 외로웠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의미를 묻고 또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해결되지 않은 아빠와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고, 엄마와 분리되지 않은 아픈 시간의 우리가 있었다. 아빠가 우리와 삶을 살다 간 시간 사십여 년을 몽땅 집어삼켜 내 안에 묻고 살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이제야 아빠를 보내드리며 제대로 나만의 애도를 했다. 아빠 덕분에 행복했고, 오늘의 내가 존재하며 아빠께 운전을 배워 어디에나 달려갈 수 있는 내가 있다. 아빠 덕분에 부모가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내가 울면 아빠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것도 안다. 아빠가 준 상처와 온갖 실수의 시간을 떠나보낸다. 아빠도 상처가 가득한 슬픈 내면 아이와 싸우느라 많이 힘겨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아빠만의 최선을 다해서 삶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살다 가셨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빠 생의 마지막 날, 당신은 귀도 들리지 않고 제대로 말도 할 수 없어서 유언을 제대로 하시지 못했는데 아마 아빠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 같다.




"미안하구나, 상처를 준 모든 날들에..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너희 있는 모습 그대로, 모든 모습을 다 사랑한다. 너희가 어떤 실수를 해도, 외롭고, 화가 나고, 몸이 아픈 날에도 아빠는 너희를 사랑한다. 행복하고 즐겁고 눈부신 날에도 아빠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죄책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행복하여라.. 모든 날, 모든 순간에 아빠가 너희를 사랑하며.. 아프게 한 많은 시간에 미안하구나.. 아빠도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잘 몰랐어.. 어리고 미숙해서, 슬프고 몸이 많이 아파서 그렇게 술로 살았던 시간에 너희에게 참 미안하구나.. 고맙다.. 잘 자라줘서.."



"행복하렴, 어느 한순간도 버릴 것이 없는 세상이니, 너희는 그저 행복하고 자유롭게 매일을 눈부시게 그렇게 살아가렴.. 사는 동안 내내.. 아빠는 너희가 있어서 참 고맙고 든든하고 행복했다.. 사랑한다. 아들, 딸들아.. 그리고 아내에게.."





'정윤'이 빛으로 돌아가고 난 후 이내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아들아, 고맙다, 사랑한다'였다. 평생을 목말랐던 이야기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긴 세월 암투병과 잦은 교통사고로 온 몸이 부서지고 아리고 쓰렸다. 아프고 상처 투성이었던 정윤은 어느 때 보다도 가볍고 에너지가 충만해졌다. 젊은 시절의 그 활력 넘치던 건강한 몸의 느낌보다 백배는 더 큰 에너지였다. 죽음이 결코 두려운 무엇이 아님을 알았다.


다시 빛으로,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로 돌아가서 그동안의 삶을 파노라마로 펼쳐보면서 감사와 사랑을 무한히 느꼈다. 언제까지나 그는 이제 사랑 그 자체가 되어 지구별을 내려다볼 것이다. 아이들과 아내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곁에서.. 




어느 날은 푸른 하늘과 나무로,  눈부신 햇살이 되어, 비가 되고 바람이 되어, 산길에 만나는 작은 꽃 한 송이가 되어, 봄날에 나풀나풀 나비가 되어, 밤하늘에 별이 되어,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할 것이다. 











이제 정말 아빠와 이별하려고 해..
고맙고 사랑해요..

아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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