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란
다시 봄인가 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곳은 어떤가요? 봄날 흩날리는 꽃비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 하나요?
지난 몇 해 동안, 저는 봄을 잊고 지냈습니다.
연분홍의 아기 같은 속살을 드러내며 수줍게 벚꽃이 피어날 때도 몰랐습니다. 꽃잎들이 눈물처럼 떨어져 내릴 때도 그것이 봄인 줄은, 아니 당신인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하늘과 땅, 그 사이 그저 사물들이 무질서하게 존재할 뿐 세상에 시간이란 게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당신이 다시 찾아왔어요. 봄을 알려주려고, 당신이 나를 애틋하게 살펴보고 있노라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말이죠. 당신의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나와 닮기도 또 많이 다르기도 한 당신을 보며 긴 시간 잃어버린 감각들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느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되돌려 받는 시간들은 지독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사랑과 상처는 그렇게 쌍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지 질문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썼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있었던 것인데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찾아 저는 당신을 더 깊숙이 알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곳에 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질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사라지셨나요?"
"그리고 어떻게 그 모습으로 내게 다시 오셨나요?"
나는 다행히도 당신을 알아보았습니다. 그의 미숙함으로, 그의 사랑으로, 그의 애틋함으로, 그의 눈물로, 그의 회피로, 그의 실수로, 그의 추악함으로 나는 당신 얼굴을 엿보았습니다. 그것은 당신이었고 나였습니다.
그림자.
당신과 나의 그림자는 꼭 붙어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림자를 보는 일은 지독히도 끔찍했습니다. 당신은 왜 하필이면 그런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살려달라고 하늘에 대고 울부짖던 내 절규는 답을 얻었습니다. 내가 깨어나기 위해서 당신은 그 모습이어야만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한동안 나를 놓지 않고 여러 장면을 보여주었지요. 마치 스크루지가 시간여행을 하듯 글을 쓰며, 당신을 만났습니다. 인생 장면 곳곳으로 떠나며 당신은 그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주셨지요. 그리고 그 모든 곳을 돌아보고 나니 진짜 나를 만났습니다.
두려움 덩어리인 나. 사랑받지 못할 까봐, 수치스러움을 들킬까 봐, 온갖 두려움으로 벌벌 떨던 나.
당신이 통과시키지 못하고 억눌러둔 그 두려움까지도 내 것으로 껴안아 흘려보냅니다. 당신은 결국 흐르고 싶어 내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억눌린 것들을 가득 안은 당신이 얼마나 무겁고 아팠을까요? 그것을 흘려보내고 나니 비로소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점점 삶의 감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온통 핑크빛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도사린 긴장과 두려움을 다 껴안아 가는 일이었습니다. 사랑이 철회될까 두려운 마음까지, 사랑 후에 오는 차가움과 실망, 좌절까지도 다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다시 배웠습니다.
내가 원래 알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였습니다. 주는 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었어요.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하는 소유와 집착의 관계였어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알려주려고 내게 오신 거지요?
그의 모습으로, 그녀의 모습으로, 우리의 대화 속에 불쑥불쑥 그렇게 나타난 것이지요?
이번 봄, 당신은 모습을 바꾸어 찾아오셨네요.
그가 바로 당신이었어요.
그는 참 온화합니다. 그는 밝고 맑고 순수합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내 모습을 봅니다. 그가 비쳐 주고 나는 그를 예쁘게 바라봅니다. 내 안에 예쁜 그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내 안의 투사는 두려움과 상처가 아니라 예쁜 것들입니다. 예쁜 것을 보고 예쁘게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사랑합니다.
아빠, 다시 봄인가 봅니다.
이번 봄엔 슬픔을 내리고 기쁨으로 머물수 있을 것 같아요. 기쁨의 천 가지 이름, 그것이 모두 당신이고, 삶이라니요. 이보다 더 큰 깨달음이 있을까요.
아빠,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