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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Jan 20. 2023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려면

Love yourself!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스무날이 지났다.





작년 12월부터 몇 가지 목표를 세워서 매일 꾸준하게 해야 할 일들을 안고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요 며칠은 '이렇게 해서 뭐가 되겠어?' '갈길이 너무 멀고 힘이 자꾸 빠져서 주저앉게 돼. 차라리 목표 따윈 없애버리고 그냥 직관이 시키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안 될까?'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스스로 수없이 묻는다.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알기 위해 오늘도 살고 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서 스피치나 강연을 자주 듣는데 오늘 얻은 내용은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에 관한 것이었다.



'나'라는 항아리에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매일 물을 채우고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인 것은 아닐까? 나의 감정이 순환하면서 또 그 주기를 탄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부정적이며 가라앉음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 감정의 사이클이 돌아오면 허탈하다. 그동안 쌓아 올린 나의 무수한 노력의 시간이 '물'이라면, 그 '물'들이 밑 빠진 독으로 다 빠져나가 버리는 것만 같다.


결코 내가 원하는 성공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속상함과 패배감이 밀려온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에세이를 써내는 출간 작가가 되는 꿈을 가졌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감정 속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나 같은 사람이 뭘 쓴다고 그래, 그냥 조용히 독백같은 일기나 쓰면 되지.' 이렇게 불쑥 올라온 감정은 밑 빠진 독으로 내 글쓰기 노력을 흘려보내게 하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내 글들을 독에다 넣고 '그것도 글이라고 썼냐?' 하며 '흘려보냄' 하는 씁쓸한 기분.



나의 영어 커리어가 마찬가지로 밑 빠진 독으로 흘러나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또 씁쓸하다. 긴 시간 영어로 애를 썼는데 항상 모자란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은 다시 좌절되고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살 것 같은 불안감이 공포가 되어 엄습하는 것이다. 새롭게 시도하며 다시 차근차근 쌓아가자던 내 안의 약속들이 물속으로 흩어져 형체가 없이 사라진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



어떻게 하면 '밑 빠진 독'처럼 구멍 난 내 결핍의 마음을 메울 수 있을까?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며 힘 빠진 나를 위로하려는 순간에 찾아온 강의 내용이 오늘은 나를 또 살려 주었다. 매일 두려워하며 죽는 나는 이렇게 매일 좋은 글과 사람으로 다시 살아난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나는 제대로 죽기 전까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며 괜찮다 말해 주고 이 글을 본다.




'밑 빠진 독'을 채우려면, 그 항아리를 연못에 던져버리면 될 일이다.


<달마야 놀자>에 나온 내용 중 일부인데, 나에게 오늘은 깨달음을 주고 간 대사이다.


쫓겨날 처지에 이른 건달들은 막무가내로 버틴다. 그러자 주지승이 양 측을 모아 밑 독이 깨진 항아리에다 을 가득 채우라는 문제를 낸다. 청명은 주지승이 제 편을 들어줄 거라 믿고 자신이 직접 항아리 안에 들어간다. "마음이 물이요, 몸 또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깨진 독에 들어간 소인의 몸과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깨진 독에 들어간 소인의 몸과 마음은 깨끗한 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지승은 그 답을 인정해 주지 는다. "난 물을 채우라고 했지, 사람을 채우라고 하지 않았느니라. 그건 답이 아니야." 주지승이 낸 문제를 스님들이 아닌 건달들이 해결한다. 연못에 항아리를 던진 다음 손으로 눌러 깨진 독에 물이 가득 차게 한 것이다. 뒤따라온 주지승은 "독에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른다."며 그들을 계속 머물게 해 준다.


재규는 건달들을 챙기는 주지승과 숲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 저희를 감싸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주지승이 되묻는다. "누가 누굴 감싸줘?" 주지승은 말한다. "내가 낸 문제를 풀었으니까 더 있으라고 한 건데 누가 누굴 감싸줬다고 그래." 재규는 묻는다. "그래도 착하게 살라든지 뭐 남들 괴롭히지 말라든지 아무튼 원하는 게 있으시니까 이렇게 감싸주시는 거 아닙니까?" 주지승은 "그게 궁금하냐? 그럼 너 밑 빠진 독에 물을 퍼부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채웠어? 재규는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그건 그냥 항아리를 물속에다 던졌습니다."


주지승은 가르침을 준다.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안의 켜켜이 쌓여 있던 나만의 관념의 돌탑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다시 가벼워졌다.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묻던 내게, 그냥 물이 되어 물처럼 살면 될 이라는 답을 얻은 것 같았다. 형태가 없이 그저 물처럼 흐르며 살면 된다. 나의 끝내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나만의 항아리가 그렇게 채워졌다.


좋은 글을 써서 인정을 받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도, 영어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구도 다 물처럼 그렇게 나를 채워가는 마음이다. 그 모든 것이 다 잘못된 것이 없으며 부족하다 하여 부족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구멍 난 독'을 문제로 바라보고 채워야만 한다는 결핍감은 결코 그것을 해결하게 해주지 않는다. 삶은 결코 구멍을 메워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의 본래 청정함과 맑음, 따뜻함과 온유함을 발견하고 그것이 되어버리는 일이다.



나도 오늘은 평온을 되찾아본다. 밑 빠진 독의 허망함을 잊어본다. 그리고 연못에 풍덩 빠졌다. 그저 그 청정한 물 같은 마음에 안겨서 오늘은 이것으로 되었다 위로할 것이다. 다시 '밑 빠진 독'이 나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가져오지 말자고 되뇌면서 말이다. 애써도 채워지지 않아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연못이 되어 버리세요. 연못에 안겨서 가득 채워진 마음으로, 이제 하고 싶던 그 일을 하세요. 그거면 될 테니까요. 거대하고 따뜻한 엄마 품에 안긴 안도감으로 당신은 결국 해낼 겁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당신이라는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입니다."




#글루틴 #글루틴1기 #글루틴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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