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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Jan 30. 2023

꼭 정상을 찍어야 할까?웅산을 오르며

1월 1일 나 홀로 대암산 정상을 오르며 산기운을 가득 받고 시작한 올해, 그리고 또다시 1월 중순에 친구와 둘이 등산을 하며 나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삶이 힘들 땐 혼자 등산을 해보면 문제가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바라봐진다. 그래서 산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데 혼자 갈 때와 동반하는 친구가 있으면 또 산행의 맛이 달라진다. 이번 산행에서 느낀 것은 정상이라는 목적지를 찍고 가는 산행과 그저 가고 싶은 만큼만 갔다가 적당히 만족스러우면 돌아오는 산행의 차이점에 대한 단상이다.


이번 산행은 사실 친구와 땀도 흘리며 운동도 되고 공기 좋고 바다 뷰가 보이는 안민고개에서 출발하는 완미의 산행이었다. 곧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친구라서 더 아쉬운 마음에 같이 산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 가게 되기 했는데 이번에 친구는 나의 산행 취지와 다른 마음이 있었던 같다.


산길을 걷다 보니 '웅산'이라는 정상을 찍고 싶은 욕심이 난 것이다. 나의 경우, 그냥 정상을 찍어도 그만, 안 찍어도 그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적당히 땀 흘리며 친구랑 운동이 되고 기분이 좋으면 돌아 올 요량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올해 첫 등산이기도 해서 정상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산을 자주 타게 되면서 체력이 좋아진 것을 느낀 친구든 말했다."리사야, 너의 체력을 보니 우리는 충분히 더 올라갈 수 있겠다."며 계속 더 가 보기로 한 것이다. 힘들지만 할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친구였다. 친구가 공복에 산을 오르며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몹시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정말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지점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내가 이기면 하산하고, 친구가 이기면 조금 더 힘을 내 웅산 정상까지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우스운 것은, 우리는 가위, 바위, 보를 했고 내가 이겼음에도, 그 결과 따윈 접어 둔 채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냥, 우리 웅산 정상 찍고 오자! 가자! 친구야!



순간, 간절하면 목적지로 향할 '없던 힘도 나는 것'을 알았다. 친구는 정말 지쳐 있었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이어 갔다. 나도 친구와 그렇게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진해 웅산 정상을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혼자 왔더라면, 절대 웅산까지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야. 오늘의 마음은 그냥 즐기는 산행이니까..' 이런 속마음이 튀어 올라왔다. 그런데 친구가 함께이니 더 힘을 내게 된다. 신기하게도 계속 둘이 끌고 끌어주는 에너지로 조금씩 풍경이 바뀌고 정상이 점점 까까워 오는 것이다.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뭘까? 정상까지 올라야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새해 초에 등산을 하며 가보지 않은 산의 정상까지 오르면 정말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길 것 같다는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아니면, 이번 등산의 정상 완주가 나 자신의 의지력을 시험하는 무대 같기도 했던 것이다.


웅산 정상까지 도착하기 전, 수없이 힘들어서 그냥 돌아갈까 하며 서로를 보던 눈빛에서 깨달았다. 돌아가기에 온 길이, 오면서 흘린 땀과 마음이 아쉬워서 우리는 꼭  보고 와야 했던 것이다.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삶의 집중이 좋았다. 그저 한 발 한 발, 발아래에 충실하면서 풍경이 바뀌는 모습이 좋았다.


잠시 한 숨을 내리 쉬며, 멀리 보이는 산과 바다, 하늘의 풍경도 선물 같았다. 우리를 위해 삶이라는 어머니가 주는 선물 같아서 뭉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산다는 것은 뭘까? 항상 정상이라는 포인트에 도달해야 의미 있는 삶일까?"


답은 "삶은 과정에 있다."였다. 정상을 찍고 가고 있지만 그 중간에 내가 느낀 행복이 너무나 커서 황홀하단 느낌마저 들었다. 현존이 이런 것일까. 그렇다면 현존하며 살겠다 마음을 다시 먹는 순간이었다.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정말 컸다. 오랜만에 느낀 기분이었다.


최근 들어 산을 많이 올랐다. 그런데 이번 느낌은 뭔가 달랐다. 친구와 함께 하면서 친구가 나를 밀어 올려준다. 이만하면 되었지. 그냥 좀 땀나고 적당히 왔으니 그만 가자라고 하는 나에게 친구는 웅산이라는 목적지를 외치며 함께 완주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보였다. 그 열망이 나를 또 움직이게 하고 다른 경험을 완성하게 한 것이다.



웅산에 드디어 도착했다.


지난 1월 1일에 왔던 대암산 정상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다. 그리고 아까 했던 질문에 답이 또 바뀌는 순간이었다.


"삶은 과정에 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희열과 행복을 꼭 맛봐야 한다. 출발과 도착, 그 사이의 과정에 몹시 행복하지만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과 성취감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축복이다."



오늘도 과정에 있다. 나는 웅산이 아닌 다른 것에 늘 오르며 살 것이다. 언제나 길 위에서 배우며 성장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 나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더 크게 한다면, 함께하는 산행은 더 멀리, 너 높이 오르도록 도움을 준다. 깊어지고 넓어지고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힘을 주고받으며 가는 것이 삶이라서 감사하다.


웅산에 오르니, 삶을 조금 알겠다. 친구를 보면서 나를 보면서 그렇게 삶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을 모두 다 소중히 여기겠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다. 하산하며 함께 먹은 따뜻한 샤브 칼국수 맛을 잊지 못해서 또 웅산을 오르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웅산 다음 시루봉 까지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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