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발걸음을 찾아 나서다

한국의 전통신 이야기

by YECCO


우리나라 전통 신발 갖신을 재해석한 아디다스


“클래식은 영원하다.”

위의 문구는, 어느 시대에 있어도 매력적으로 와 닿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아디다스 가젤’은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착용하거나 컬렉션으로 소장할 만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이러한 인기는 클래식이 짧은 유행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다시금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전통 신발 ‘갖신’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City of Seoul’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이는 아디다스 가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신발 앞코에 새겨진 문양은 독특한 개성과 전통미를 더합니다. 또한 아디다스 삼바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탈춤’에서 영감을 받아 하회탈을 담은 ‘삼바 탈 컬렉션’이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통 신발 종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 브런치 글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 신발 이야기를 함께 알아봅시다.




풍속화 「대쾌도」 속 다양한 전통 신발

KakaoTalk_20260211_151739486.jpg 대쾌도 ©국립중앙박물관

대쾌는 ‘크게 유쾌한 하루’를 의미합니다. 해당 그림은 「대쾌도」의 일부이며, 전체적인 풍경에서는 사람들이 뜨겁게 환호하며 씨름과 택견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끌벅적한 열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옷차림과 신발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발까지 그려진 인물은 총 20명으로, 버선을 신은 인물은 5명 그리고 짚신이나 미투리를 신은 인물은 9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짚신이 눈에 띄는 이유는 당시 신분과 직업에 한정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짚신을 신었기 때문입니다.




날씨와 계절이 빚어낸 전통 신발


나막신

비가 오는 날이면, 높은 굽으로 또각또각 소리가 내는 나막신이 생각나실 겁니다.

나막신은 나무로 만든 신발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두가 신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탓에 장거리를 이동하거나 말을 탈 때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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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막신 ©국립민속박물관 / 완당선생해천일립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흥미롭게도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나막신을 신고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은 오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천인이나 젊은 사람은 양반이나 어른 앞에서는 착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청빈한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이들은 가난했지만 맑은 날이어도 짚신이나 미투리 대신 나막신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무신이 등장하면서 1940년대를 전후로 나막신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멱신과 설피

그렇다면 눈이 오는 날에는 어땠을까요? 오늘날 겨울철의 신발이라면, 푹신한 양털이 들어간 어그부츠나 방수가 되는 튼튼한 패딩부츠가 떠오릅니다. 이처럼 보온과 안전을 고려한 기능성 신발은 과거에도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멱신(둥구미신)설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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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구미신, 설피 ©짚풀생활사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멱신은 보온효과가 뛰어난 방한용 짚신으로,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신었습니다. ‘둥구미신’ 이라고도 불린 이유는 바구니처럼 울이 깊은 ‘둥구미’와 같은 특징이 있기 때문이죠.


설피는 신발 바닥에 덧대어 신는 덧신으로, ‘살피’와 ‘눈신’이라고도 불립니다. 특히 겨울철 수렵에 나설 때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수렵꾼들이 신었다고 합니다. 구조가 타원형이기 때문에 잘 휘는 특징을 가진 물푸레 또는 노간주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신분을 나타낸 석과 화 그리고 혜


석(舃)

석(舃)은 의례용 신발이며, 맨땅에 오래 서 있을 때 발이 시리거나 눅눅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나무를 댄 이중바닥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석은 명나라에서 들어왔으나, 조선 후기에는 명나라의 멸망으로 석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조 때는 신목이 있는 형태였지만 순조 이후에는 신목이 없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KakaoTalk_Photo_2025-06-08-15-28-27.png 청석 ©세종대학교박물관 / 국가유산청

여성용 석의 발등 장식으로는 국화동과 진주가 있었습니다. 영조 때 정례 편찬 이후 책례, 혼례, 상례, 제례에는 국화동만 사용하고, 존숭과 진연에는 국화동과 진주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으로 구분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황제 적석순천효황후 청석 그리고 영친왕비 청석 등이 각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화(靴)

화(靴)는 추운 북방 문화에서 발달했으며, 기다란 신목을 가진 장화 형태의 신발입니다. 이는 유목 생활 중 사냥을 통해 얻은 가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통일신라에는 남성들만 화를 신도록 했으며, YTN 사이언스 다큐멘터리에서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당시 호화로운 신발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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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좌) ©국립민속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목화 (우) ©국립민속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조선시대에는 주로 문무백관이 관복과 함께 화를 신었습니다. 흰 가죽의 화는 ‘백피화’, 그리고 검은 가죽의 화는 ‘흑피화’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신목은 짧게, 앞코는 각진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직물 소재도 함께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혜(鞋)

혜(鞋)는 기후가 따뜻한 남방 문화에서 발달한 신발로, 농경 생활과 어울리게 신목이 짧은 것이 특징입니다. 종류로는 태사혜당혜 등이 있으며, 혜는 가죽과 비단 그리고 천을 이용해서 여러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죽에 기름을 먹이고 밑창에 징을 박은 혜를 유혜라고 부릅니다.


KakaoTalk_20260211_151739486_05.jpg 태사혜 ©국립민속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미암일기」에 의하면, 선조는 미암 유희춘에게 자신의 두 벌의 명주옷과 흑화 한 쌍을 하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흑혜는 남아 있으며, 앞부분과 뒷꿈치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징이 붙어 있습니다. 겉의 흑피는 세월의 흐름으로 부식되어 떨어진 상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왕이 신하에게 신발을 하사한 기록을 통해, YTN 사이언스 다큐멘터리에서는 신발이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신하를 소중히 여기는 왕의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은 편안한 신발, 짚신

짚신은 서민들이 직접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면서 실용적인 신발입니다. 비록 가죽신보다 약한 내구성을 지녔지만,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뚜렷한 장점 때문에 서민들이 애용하는 신발이 되었습니다.


짚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담긴 「후한서」 동이열전 한조에 의하면, “남자들은 상투를 매고 도포를 입으며 짚신을 신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짚신은 삼한시대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지양하는 불교의 영향으로 가죽 생산이 감소하고 농업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짚신의 인기는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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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짚신삼기 ©윤두서 / (우) 전통건물과 짚신 ©아사달

짚신은 다양한 종류와 명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 기준 중 하나는 바닥의 힘줄이 되는 ‘신날’의 수입니다. 미투리는 짚신과 유사한 형태를 띠지만, 일반적인 4날짚신과 달리 6날 혹은 8날의 ‘8날짚신’을 삼는 차별성을 지닙니다. 특히 미투리는 신바닥이 넓고 4날짚신보다 질겨 오래 신을 수 있는 고급 짚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외에도 부드러운 짚으로 올을 곱게 만들고 여성이 신었던 고운짚신과, 상제 기간에 신었던 엄짚신이 있습니다. 엄짚신의 갱기는 삼껍질을 감아 만들어졌으며, 그중 뒷갱기는 물리적인 힘과 마찰을 많이 받기 때문에 닥나무나 삼나무를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소 역시 짚신을 신었습니다. 이를 쇠짚신이라 하며, 먼 길을 떠날 때 소의 발이 다치지 않도록 사용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강아지 신발이 미끄럼을 방지하고, 겨울철 산책할 때 제설제가 발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주는 것처럼, 사람과 동물을 함께 고려하는 신발 문화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배려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고무신, 추억 속의 신발

추억의 만화 「검정 고무신」을 보셨다면, 직접 신고 다닌 경험이 없더라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신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무신은 가벼운 재질인 고무로 만들어졌으며, 방수가 되는 튼튼한 내구성을 갖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신발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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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1952년 부산 시장의 신발가게 ©한국저작권위원회 / (우) 1957년 대구 서문시장의 신발가게 ©한국저작권위원회

1919년 8월 1일, 고무신 제조회사인 ‘대륙고무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어서 1922년에는 고무신 브랜드 ‘대장군’이 출시되었는데, 이는 가격이 비싼 일본산 고무신을 대신해서 국산 고무신을 널리 보급한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고무신은 해외로도 수출되어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우리에게 신발은 어떠한 존재인가요? 신발은 소중한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발전해왔습니다. 계절과 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거나, 다채로운 색감과 장식을 통해 미적 감각을 드러내는 예술적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눈길을 끄는 패션 아이템으로 착용하거나 소방관, 군인, 간호사 등 직업 현장에 맞추어 제작된 신발도 존재합니다.


또한 전통 신발을 만드는 장인 ‘화혜장’의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신발은 앞으로도 지혜롭고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며 그 이야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참고 문헌]

YTN 사이언스. (2014). 가죽과 비단을 수 놓다, 전통신발 화혜 [동영상]. YouTube.

링크: https://youtu.be/Dv_oCK3yMoM?si=WqFHzFxSqTYOPfKN

배도식. (1990). 짚신의 民俗的 考察(1). 한국민속학, 23, 97-114.

국립중앙박물관. (2024). [국립대구박물관] 유쾌한 날, 무슨 신발을 신을까? 특별전 한국의 신발, 발과 신 <대쾌도> 8월 27일부터 전시, 보도자료

김문자. (2003). 朝鮮時代 나막신에 對한 硏究-하멜과의 關係를 中心으로 -. 패션 비즈니스, 7(2), 82-96.

곽경희. 「멱신」,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정연학. 「설피」,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최연우, 최규순. (2013). 대한제국시대 석(潟)의 고찰 및 한국 석의 형태적 특징의 유래. 복식, 63(8), 125-142.

최규순. (2013). 조선시대 석(舃) 연구. 복식, 63(2), 144-161.

YTN 밀덕스. (2022). 1950년대 국가 경제를 이끌었던 검정 고무신 | 뉴튜브 사진관 [74회] / YTN2 [동영상]. YouTube.

링크: https://youtu.be/-K82BEuzmbI?si=JEtq47CjDDsgOFuH


*표지 사진 출처: 전통소품_짚신_690406 ©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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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한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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