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여의나루, 노량진, 한강진 등 한강 인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지명이 나루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근대 시기에는 토목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폭이 넓은 강이나 하천에 다리를 놓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을 건널 때 나룻배를 이용했고, 자연스레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나루터가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여의나루, 노량진, 한강진은 모두 한강을 따라 만들어진 대표적인 나루터들이죠.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한강 수역을 따라 약 100여 곳의 나루가 있다”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나루는 단순히 강을 건너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세곡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핵심 운송 거점이었습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 남쪽의 한강은 서해로 이어져 중국과 교역하는 주요 수로였고, 충청도·전라도·황해도·강원도 등지의 조세가 모이는 전국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1850년대에 제작된 해좌전도(海左全圖)를 보면, 한강과 예성강이 서해로 흘러들며 전국 각지와 연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강의 나루터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조운선이 끊임없이 드나들었죠.
"용산강은 도성 서남 10리에 있는데 경상, 강원, 충청, 경기 상류의 조운선이 모두 여기에 모인다."라는 기록도, 당시 나루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나루터는 단순한 교통·운송로를 넘어,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초소의 역할도 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주요 나루터에 도승(渡丞)이라는 관리 책임자를 파견해 검문검색을 시행하고, 범죄자 이동이나 밀거래를 막았습니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루터에는 국가 인력을 배치해 직접 관리했는데, 이를 관진(官津)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한반도에 있는 모든 천과 강의 나루터를 국가가 관리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매우 작은 나루 또는 국가의 공식 기록에 누락된 지역 나루의 경우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나 관여 없이 민간이 주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나루터는 사진이라고 불렀고, 개인 사공이 뱃삯을 받아 운항하였죠. 다만 완전히 방치된 것은 아니었고, 지방 관청을 통해 일정 수준의 간접 통제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진에서는 국가 소속의 관선이 운영되었으며, 공무로 이용 시 요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승과 더불어 진부라는 직책을 가진 인력도 배치되었는데요. 이들은 뱃사공으로서 나룻배를 운항하고 잡무를 수행했으며 나루터 관리의 대가로 토지(위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한강 유역에만 약 100여 개의 나루터가 있고, 한반도에는 많은 강이 있기에 모든 나루터에 관리를 동일하게 파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강폭 및 나루터와 연결된 도로의 중요성에 따라 나루터는 다르게 관리되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도로는 중요성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나눠졌는데요. 중요성이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고, 강폭이 클수록 나루터의 요충지로서의 성격은 더 강해지고 국가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되었죠. 그래서 경국대전에 따르면 대로의 나루터에는 도승과 더불어 진부는 평상시 10명, 중요한 곳에는 추가 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로의 나루터에는 도승을 파견하지 않고 진부만 6명, 소로에는 진부 4명을 배정했다고 합니다.
또한 나루터는 연결된 도로의 중요성과 강폭에 따라 호칭도 다르게 붙여졌습니다.
중요성이 크고, 강폭이 넓은 나루터에는 진(津)이나 도(渡)가, 중요성이 작고, 강폭이 좁은 나루터에는 제(濟)나 섭(涉)이 붙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고려시대부터 제도적으로 정착되었죠. 예를 들면 한강의 사평도(沙平渡)·양화도(楊花渡), 예성강의 벽란도(碧瀾渡), 임진강의 하원도(河源渡), 한강의 노량진(露梁津)·광진(廣津), 대동강의 관선진(觀仙津) 등이 있죠.
하지만 근대 이후 토목 기술이 발전하면서, 1900년 한강철교를 시작으로 한강 위에 다리들이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양화대교, 한강대교, 마포대교 등이 등장하며 나루터의 기능은 점차 사라졌고, 결국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죠.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대교 대부분은 과거 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대교 인근에서는 '○○나루터비' 같은 비석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나루터가 한강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이렇게 한강의 나루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매일 건너는 다리 아래에도 오래된 이동과 교류의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탁류>는 조선시대 나루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필자 역시 이 드라마를 보며 나루터의 세계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도 <탁류>를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리, 지하철, 수상택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강을 건너지만, 가끔은 그 다리 위에서 예전 나루터의 분주한 풍경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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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이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