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육아하다보면 참 엉뚱하게도 피식거리는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상황들 중에 하나인데, 아이에게 필요한 일종의 학습을 지도하는 경우.
아이들은 자신이 흥미있는 것에 솔직하기에, 일부러 좋은 "척"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순순한 존재이기에,
확실히 학습이라는 개념보다는 놀이라는 개념에 더 호감을 보인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말은 뱉었지만 내 발언에 참 멋쩍다.
결국은 아이스크림으로 아이의 행동을 제약하려고 하다니.. 풉하는 웃음도 난다.
아이의 머리속에는 "책"이라는 단어보다는 "아이스크림"만 박힌다.
아이의 행동은 책을 읽기위한 행동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먹기위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비교대상인 책은 아이스크림에게 완벽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단순히 머리속에 내재된 자신의 기준으로만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만들어놓은 비교대상이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굳이 비교해놓지 않아도 될 대상이었는데, 억지로 비교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경우다.
책과 아이스크림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각자의 개성을 갖춘 대상들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을 내 인생으로 데리고 와보면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발생된다.
친한 지인 A가 고급외제세단을 구입했다. 내 차는 아직도 몇 해전에 구입한 중고소형차인데.
이 생각이 머리에 박히면서 내 인생의 비교대상으로 지인A가 자리를 잡게된다.
그 사람이 다니는 직장과 나의 직장을 비교하고, 사는 집도 비교하고, 월급도 비교하고, 몸상태도 비교하고, 각종 여러가지를 모두 비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다 우위에 서지 못하는 기분이다.
갑작스레 만들어버린 비교의 대상으로 인해 내가 너무 초라해져버린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사람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무너지며, 초라해져야하는 것일까?
나는 그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내 인생의 이상향은 그가 되는 것일까?
인생 자체가 다른 인생이다.
존재 자체가 다른 존재이다.
처음부터 나는 오롯이 완벽하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성형을 하고 살을 빼고 좋은 옷을 입는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과 목표와 방향성은 오직 나만의 잣대로 지탱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괜스레 필요도 없고 말도 안되는 비교대상을 만들어서 우월감을 느끼거나 박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