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바꾸는 앱
아이의 취미 중 하나는 글쓰기이다. 보통은 책을 읽다가 계획 없이 시작된다. 영감이 떠올랐는지 급하게 노트를 꺼내서 목차를 만들어 써 내려가곤 한다. 한 번은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
"엄마, 나 이 책이랑 비슷한 내용인데 다르게 쓰고 싶어. 그렇게 해도 돼? "
"물론이지! 그렇게 쓰고 또 쓰다 보면 너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아이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전체적인 줄거리를 생각하고, 잊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목차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러곤 담담히 써 내려간다.
"나도 브런치 북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의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지만 하나씩 살아있는 그대로 전합니다. 브런치에 담기엔 다소 부족하더라도 피어오르는 아이의 글을 아량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사실 나는 착한 편이다. 어느 것에도 잘 불평하지 않는다. 또 점심시간에 좋아하는 게 나오지 않아도 다른 친구들처럼 투덜거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휴대폰 알람을 끄다가 힐끗 휴대폰 시계를 보았다. 아침 7시 23분이었다. 보통 7시에 일어나는데 오늘은 23분이나 지났다는 걸 깨달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입을 옷을 고르기 위해서 얼른 옷장 앞으로 갔다. 표범이 그려진 티셔츠가 입고 싶었지만 그 재킷을 입으면 나는 쪄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하트무늬 반팔티셔츠와 보라색 반바지를 입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식탁에는 식빵과 잼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2-5라는 수북한 수학 학습지들을 낡은 부엉이 열쇠고리가 달린 갈색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나는 잼 뚜껑을 열고 식빵에 잼을 발랐다. 엄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잘 잤어? 머리 묶어줄게."
엄마는 분홍 고무줄로 내 머리를 한 개로 묶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책가방을 멨다.
학교로 걸어가던 중, 개미 한 마리가 내 발끝을 건드렸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조금 쳐다보다가 학교로 서둘러 걸어갔다. @@초등학교, 학교에 도착했다. 으으~ 복도에는 아이들의 땀냄새와 여러 냄새가 진동했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4-5반에 도착했다. 교실에는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와 있었다. 나는 진유 옆자리에 있었다. 진유는 내가 온 걸 눈치채고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마리야, 안녕? 우리 쉬는 시간에 윤아랑 이렇게 셋이서 인스 나누기할래?"
나는 진유가 '윤아랑'이라고 말할 때 기분이 약간 이상했지만 흔쾌히 "좋아!"라고 말했다.
우리 반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아이가 윤아다. 윤아는 얼굴도 예쁘고, 똑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냥하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는 인스거래가 유행하고 있다. 인스를 물물 거래하듯이 나누는 것이다.
드디어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나는 여느 때처럼 진유에게 말했다. "진유야, 인스거래하자!"
진유는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서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음 윤아는 어딨지? 어 저기 있네! 마리야 가쟈!"
윤아는 인스를 만지고 있었다. 진유는 나와 같이 윤아 책상 옆에 서서 윤아에게 말했다.
"윤아야, 우리 같이 인스거래 할래?"
윤아는 나와 진유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진유는 머리를 땋은 여자아이가 그려진 인스를 꺼냈다. 나는 바나나 인스를 꺼내고 윤아는 다람쥐 인스를 꺼냈다. 윤아는 마음이 상냥해서 진유에게 볼품없는 인스와 윤아의 인기 있는 인스를 거래하자고 했다. 진유는 나에게 말했다.
"저... 마리야? 나 윤아랑 조금만 놀아도 될까?"
나는 눈썹을 엑스자로 만들며 말했다. "응. 그런데 나도 같이 놀 거지?"
"아... 아니 윤아랑 둘이서만 놀아보고 싶은데..."
나는 최대한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눈을 작게 뜨면서 말했다. "그래."
진유와 윤아는 내 눈치를 보면서 둘이서 인스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학교가 마치고 난 뒤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노란 그네에 앉아서 휴대폰을 켜다가 이상한 앱을 발견했다.
나는 가만히 그 앱을 살펴보았다.
영혼을 바꾸는 앱!!!
바꾸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쓰시오.
그 사람과 10분 동안 끝말잇기를 하십시오.
다음날이 되면 저절로 그 사람의 몸으로 바뀝니다.
영혼은 2달 뒤 다시 돌아옵니다.
나는 앱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콧웃음을 쳤다.
"흥! 이 세상에 저런 앱이 있다고? 말도 안 돼! 음... 한번 해보긴 할까?"
믿기진 않았지만 나는 실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제일 되고 싶은 아이인 "이윤아"를 이름 칸에 써넣었다.
그리고는 윤아에게 전화를 해서 끝말잇기를 10분간 했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라서 몇 번이고 눈을 깜박였다.
꿈인가 보다. 다시 깨야지 해봐도. 여전히 꿈속이다. 아 뭐지?
헉! 꿈이 아니다. 그리고 여긴 우리 집이 아니다. 잘난척쟁이 이윤아의 집이다.
정말로 앱이 실행된 것이었다. 오 마이 갓!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학교에 가니 내 몸으로 바뀐 윤아가 있었다. 윤아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이었다. 진유에게 가서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손거울로 나의 몸을 살폈다. 통통했던 내 몸이 윤아의 몸으로 바뀌면서 날씬해졌고, 쌍꺼풀이 없던 나의 눈은 윤아의 짙고 또렷한 쌍꺼풀진 눈으로 변해있다. 아 예쁘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진유에게 인스를 5장이나 주었다. 진유는 윤아의 몸속에 있는 나에게 "넌 정말 착한 아이야!"라고 말했다. 난 너무 기뻐서 활짝 웃었다. 평소엔 용기가 안 나서 말도 건네지 못했던 하늬에게도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하늬도 나에게 싱긋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반면 나의 몸으로 변한 윤아는 발표시간에도 손을 들지 않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쩔쩔맸다. 윤아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진유는 나와 단짝이기 때문에 나의 몸으로 변한 윤아와 계속 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진유랑 놀고 싶었지만 윤아가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진유 대신 윤아와 단짝인 미란이랑 같이 놀 수밖에 없었다. 미란이는 굉장히 피곤한 스타일이다. 핸드폰 문자에 바로 답을 하지 않으면 벌컥 짜증을 내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제 절교야!" 라며 화를 낸다. 진유는 미란이처럼 피곤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휴대폰 문자로 답을 한 시간 넘도록 하지 않아도 이해를 하고, 어떤 실수를 해도 "괜찮아."라고 위로를 해준다. 나는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이윤아!" 미란이는 나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걸며 나에게 왔다.
"응 미란아."
미란이는 큰 물소를 닮았고, 나는 작고 힘없는 생쥐가 된 것만 같다. 미란이는 학교를 마치고 같이 나무 놀이터에서 놀자고 했다. 나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날 감기가 걸려서 병원에 갔다 온 뒤 헐레벌떡 나무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는 미란이가 팔짱을 끼고 그네 기둥에 걸쳐 서 있었다. 나는 미란이를 부르려 다가가다가 말았다. 미란이의 얼굴은 구겨진 빨간 색종이처럼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미란이에게 다가갔다.
미란이는 내가 온 걸 눈치채고 씩씩거리며 나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윤아! 내가 5시까지 오라고 했잖아. "
나는 아래를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
미란이는 코웃음을 치고는 "됐어! "라고 말하고 바닥을 쿵쿵 찍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던 내 내 뺨 위로 이슬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보라색 소매로 눈물을 쓱 닦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자 미란이는 나를 본체만체했다. 미란이는 성화와 그림을 그리고, 나의 몸을 하고 있는 윤아는 진유와 인스거래를 했다. 나는 그냥 혼자 외롭게 책상에 가만히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날은 수학 수행평가를 치는 날이었다. 지난번 감기 때문인지, 미란이와 싸워서인지, 5번 문제를 풀 때 머리가 지끈했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리려다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미란이를 발견했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숙이고 6번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문제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10분쯤 지나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이 서 있는 교탁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셨다.
"응? 왜 나왔어?"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마리야 괜찮아? 얼굴빛이 좋지 않아 보여. 많이 힘드니?"
나는 조금 더 참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자리로 돌아가다 진유와 눈이 마주쳤다.
진유라면 나를 걱정해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끝난 뒤 나는 나무 놀이터에 있는 그네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켜자 <영혼을 바꾸는 앱>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앱을 눌리자 영혼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기간이 나왔다. 그곳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영혼을 바꾸는 앱
유효기간
두 달이지만 지금으로부터 3주일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27일이 남았습니다.
영혼을 바꾸는 앱 고객센터. 참고사항. 주의사항. 등
영혼을 바꾸는 앱을 시작한 지 3년은 된 것 같은데 3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자 온몸이 돌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슬퍼하고 있을 때 고객센터와 참고사항, 주의사항이 있어서 슬프고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먼저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기로 했다. 고객센터 번호를 누르자 이상한 게 나왔다.
고객센터인 세모 네모 동그라미 씨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 편지 버튼을 누르십시오.
편지는 그냥 휴대폰에 있는 그림이었다. 열리는 단추가 짙은 핑크색이었다. 단추를 누르자 전화번호가 나왔다. 전화번호 010 -1234 - 5678
전화하기.
메시지.
연락처.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원래 벨소리는 띠링띠링이지만 이상한 전화 벨소리가 퍼졌다. "우리 고객센터 띠링띠링 세모 네모 동그라미입니다. 띠링띠링."
잠시 뒤 뚝! 소리가 나더니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이 앱을 만든 사람인가 보다.
남자인데도 얇고 가냘픈 음색이었다.
"안녕하세요. 영혼을 바꾸는 앱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저... 이 앱을 깔았는데 영혼을... 더... 빨리 되돌릴 수 있나요?"
남자는 크게 숨을 한번 내 쉬곤 말했다.
"누구와 영혼을 바꾸셨나요?"
"이 윤 아 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빠르게 들리고 남자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 이 윤아. 성별과 나이는요?"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여자고요. 저랑 똑같이 11살이에요."
조금의 정적이 흐른 뒤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네. 적당히 줄여서 17일로 바꿨습니다."
나는 17일도 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7일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17일!!!!
그날 뒤 나는 미란이에게 사과 편지를 적겠다고 결심했다.
노란 돼지 문방구에서 예쁜 편지지를 신중히 골랐다. 예쁜 해바라기 공주가 그려진 편지지가 좋을 것 같았다. 편지지를 살 돈으로 신상인스를 사고 싶었지만 애써 편지지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을 가다듬으며 편지를 써 내려갔다.
나의 친구 경미란에게.
안녕 미란아? 나는 윤아야.
내가 실은 저번에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다가 늦어버렸어.
정말 미안해.
네가 만약에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아.
이번에는 내가 백 프로 잘못했으니까 네가 화내는 걸 이해해.
미란아 안녕.
너의 친구 이윤아가.
나는 편지를 가방에 스윽 집어넣었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 일찍 가서 미란이 자리에 편지를 놓아두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유와 나의 몸으로 바뀐 윤아가 들어왔고 그다음엔 미란이가 들어왔다. 미란이는 다행인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미란이는 책가방을 걸다가 내가 놓아둔 편지를 발견했다. 미란이는 편지를 읽고 책가방에 넣으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미란이는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띠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의 몸으로 변한 윤아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항상 잘난척쟁이에다가 당당했던 윤아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윤아가 고소하고 통쾌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마음은 달랐다.
이상한 감정들이 섞여 덩어리로 만들어지는 기분이었다. 윤아는 계속 눈을 찌푸리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 내지 않고 몰래 숨죽여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연신 흘려대는 윤아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몇 분 동안 몰래 울던 윤아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 다다다 달려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쉬는 시간이어서 노느라 바쁜 친구들은 윤아가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영혼을 바꾸는 앱]의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혼을 바꾸는 앱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세모 네모 동그라미라는 이름은 이 지구 상에 절대로 없다. 오늘은 주말이라 시간이 많으니까 비밀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트를 가져와서 추리를 해보았다. 한참을 노란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골몰했는데 문득 한 이름이 떠올랐다.
세 동 하.
세 - 세모 동 - 동그라미 하 - 하트
나는 곧바로 네이버 앱에 들어가서 이렇게 검색했다.
세 동 하
검색을 하자 이미지가 떠올랐다.
세동하 [김동하]
영혼을 바꾸는 앱을 만든 사람.
이틀 뒤 우리 반의 선리는 진유에게 상당히 가까이 대했다. 인스를 맨날 나눠주고 밥도 같이 먹었다. 선린이는 성숙한 진유와 다르게 조금 유치한 아이였다. 1학년도 입지 않는 분홍공주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양갈래로 땋아 내리고 분홍색 왕관 머리띠까지 했다. 윤아는 예뻤지만 선린이는 그냥 공주병 같았다.
띵똥!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멈칫했다. 현관문을 열자 진유와 선린이, 나로 변한 윤아가 서 있었다. 진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놀러 왔어!"
"응. 들어와."
나는 조금 뜨끔했지만 억지웃음을 지었다. 선린이는 또 유치하게 꾸미고 왔다. 나로 변한 윤아가 한숨을 쉬는 게 느껴졌다. 진유는 윤아와 그림을 그리고 활동적인 선린이는 따분하다며 집을 돌아다니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뱅글뱅글 5바퀴를 돌다가 발레리나처럼 오른발을 들 때, 쿵! 소리가 났다. 선린이는 내가 제일 아끼는 숲 속 토끼 오르골을 깨뜨리고 말았다. 오르골이 바닥에 떨어지며 쿵! 하는 굉음이 났다. 곧이어 오르골 안에 있던 물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선린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아와 진유도 깨진 오르골을 보며 당황해했다. 나는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아 어떡해!!!!"
선린이는 놀란 듯 눈을 깜박였고 나는 선린이에게 화를 냈다. 이곳은 윤아의 집이지만 오르골은 진짜 나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집에서, 아니 내 몸도 포함해서, 진짜로 내 것인 것은 오직 오르골 하나였다.
"이 선 린. 뭐 하는 거야!!!
선린이는 무안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화가 났던 나는 이성을 잃고 우는 선린이를 밀치기까지 하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나가."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사실 그 오르골은 나에겐 누구보다 애틋한 물건이다. 하늘나라로 간 언니나 내 생일 때 선물로 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오르골은 언니와 다름없는 나의 분신이기도 했다.
선린이가 언니와 나의 추억을 깨뜨린 것과 다름없다. 나는 빗자루를 가져와서 유리조각을 쓸어 담고, 물수건을 가져와서 다시 닦았다. 그리고 토끼피규어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는 정말 선민이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번에도 내가 그렸던 소녀 그림에 선린이가 물을 쏟아서 예쁘게 웃고 있던 소녀가 번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괜찮아. 또 그리면 돼." 라며 금방 용서했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오르골은 다시 돌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복도에서 유라를 마주쳤다. 유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윤아야 무슨 일 있어?
나는 얼른 휴대용 손거울을 꺼내서 허둥지둥 내 얼굴을 살폈다. 정말로 찌푸려진 얼굴은 푸석해 보였다. 나는 억지웃음을 짓고는 유라에게 말했다.
"아... 아니야... 하하하 아무 일도 없어."
나는 유라를 앞질러서 교실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선린이는 교실에 이미 와 있었다. 하나로 묶은 머리마저 미워 보였다. 난 원래 이런 애가 아니지만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선린이가 아끼는 물건을 똑같이 망가뜨려서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인형이다. 선린이처럼 머리가 짙은 갈색이고 핑크 드레스를 입은 인형이다. 선린이의 가방에 걸려있는 작은 인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더 화가 치밀었다. 분노라는 감정 속에 사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 인형이 없어지면 선린이도 슬프겠지. 쟤도 똑같이 당해봐야 친구의 마음을 알 거야. 그래야 다음부턴 조심하겠지.'
쉬는 시간이 되어 선린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인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형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인상을 찡그리며 인형을 낙아채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유 윤아야!"
고개를 들어보니 진유였다. 진유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진유는 망설이다가 내 손을 잡고 당겼다.
"아니.. 여기로 와봐. 잠깐만."
진유는 내 손을 잡고 화장실 복도로 나를 데리고 갔다. 복도에는 내 모습을 하고 있는 윤아가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윤아야. 마리야. 너희들 요즘에 서로 얼굴도 잘 안 쳐다보고 왜 그러는 거니? 너무 어색해 보여. 둘이 싸운 거야?"
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윤아는 느긋한 표정과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 난 없었어. 윤아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자 나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속도 모르는 진유는 판사가 된 것처럼 자꾸만 말을 이어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정체가 탄로 나기 전에 지금이라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참았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얘들아... 할 말이 있어. 빨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진실을 말해줄게."
윤아는 눈을 치켜뜨며 긴장하는 기색이었다.
"사실은 내가 우연히 이상한 앱을 발견했어."
나는 뒷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어 앱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음... 그러니까 너희 둘이 영혼이 바뀐 거란 말이지?"
나와 윤아는 고개를 10번이나 크게 끄덕였다.
교실에 돌아온 뒤 선린이는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나와 윤아 그리고 진유는 평소처럼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바뀐 영혼에 대한 건 일단 우리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는 그전에 신발을 꺼내고 있는 선린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선민이가 예전에 갖고 싶다고 했던 내 공주 열쇠고리를 가방에서 떼어냈다. 7살 때 유치원 졸업기념으로 선물 받았던 열쇠고리였다. 마지막으로 열쇠고리를 만지며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선린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너한테 줄게. 네가 예쁘다고 했잖아."
선린이는 기쁨이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윤아야 고마워 그리고 지난번엔 내가 많이 미안했어."
선린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열쇠고리를 보았다. 아깝고 주기 싫다는 마음이 콕콕 찔러댔지만 모른 척 털어내어 버렸다. 내가 선린이의 인형에 나쁜 생각을 했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나만의 보답이었다. 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겉으로만 친절한 친구가 아닌 마음으로도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데, 아깐 몰래 인형을 노려본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선린이에게 선물을 주고 웃는 표정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은 토요일 12시 45분!
난 지금 이윤아지만 이제 15분이 지나면 김마리로 돌아올 것이다. 물론 호기심쟁이 최선린도 우리 둘의 영혼이 바뀌겠을 알고 있다. 진유는 타이머를 맞추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는 아이들만의 순수함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입을 모았다.
1.
2.
3.
4.
팟!!!
휴대폰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와 윤아와 나를 환하게 감쌌다. 진유와 선린이는 눈을 반짝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다시 빨간불이 작게 변하더니 초록불로 바뀌었다.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머리칼을 매만졌다. 윤아의 매끈하고 긴 머리와는 다르게 푸석하고 짧은 곱슬머리가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크크. 하하하
윤아도 자기의 모습을 보더니 옅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잠시 뒤 폭포처럼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쏟아내였다. 선린이 와 진유도 그런 우리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바탕 크게 웃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윤아는 자기 몸을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술래잡기할래?"
내가 술래가 되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내 방에 들어온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개운해짐을 느꼈다. 며칠 뒤에 윤아보다 더 특별해 보이는 전학생 하민하가 왔지만 나는 그 애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자기만의 특별함을 지녔고, 나는 나만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