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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Oct 26. 2021

아이의 글

동생 백화점


아이의 취미 중 하나는 글쓰기이다. 보통은 책을 읽다가 계획 없이 시작된다. 영감이 떠올랐는지 급하게 노트를 꺼내서 목차를 만들어 써 내려가곤 한다. 한 번은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 


"엄마, 나 이 책이랑 비슷한 내용인데 다르게 쓰고 싶어. 그렇게 해도 돼? " 

"물론이지! 그렇게 쓰고 또 쓰다 보면 너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아이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전체적인 줄거리를 생각하고, 잊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목차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러곤 담담히 써 내려간다. 


"나도 브런치 북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의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지만 하나씩 살아있는 그대로 전합니다. 브런치에 담기엔 다소 부족하지만 피어오르는 아이의 글을 아량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동생 백화점 

         

1. 나의 동생 유라     


2. 동생 백화점     


3. 착한 동생     


4. 비밀 잘 지키는 동생     


5. 귀여운 동생     


6. 뭐든지 좋다는 동생     


7. 유라 









1. 나의 동생 유라         


   

“웅니이이이!” 유라가 징징댄다. 나는 방문을 노려보았다. 이어서 또다시 울음소리가 퍼진다. “우우웅니이잉!”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어찼다. 동생 유라가 방문 한복판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울먹였다. “쩌기에서 무서운 벌레가 나왔떠...” 나는 결국 폭발해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서?네가 잡으면 되잖아!” 이번엔 정말 나도 참을 수 없었다. 집중해서 색칠을 하는데 유라가 기겁을 하며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다.           

 유라는 계속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댔지만 단단히 화가 난 나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문을 닫는 소리가 쿵! 하고 울려퍼졌다. 10분 뒤가 지나도 유라는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목이 쉬어라 울어대었다.      

 ‘띠리릭’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시장에 간 엄마였다. 고자질쟁이 앵무새 유라는 벌떡 일어나서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아이의 얼굴을 하고 울먹였다.      

 “쩌기서 벌레가 나왔는데 옹니가 안 잡아줘떠...” 엄마는 유라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내가 있는 방으로 쿵쿵 걸어왔다. 그리고는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이유니! 엄마가 유라 울면 보살피라고 했지?”  

    

 나는 화가 난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지금 유라의 머리를 쥐어박으면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할지 똑똑히 아니까 땅만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라는 웅웅 거리면서 엄마에게 애교를 피웠다. 정말 얄미운 동생이다.           


 다음 날이었다.      

 유라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내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딱딱한 바닥에 유라의 눈처럼 하얀 얼굴이 새게 부딪히고 엉덩방아를 찍어 하얀 얼굴은 군데군데 멍과 상처가 났고, 엉덩이엔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야말로 유라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또 울음을 터뜨렸다. 벌레 사건 때보다 더 크게!  엄마는 의사여서 놀이터에 없었다. 오늘이 하필 월요일이라 엄만 7시가 넘어야 오신다. 


 유라는 놀이터가 울려 퍼져라 울었고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은 유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 중에 가은이도 있었다. 가은이는 내가 6살 때 같은 반인 여자 아이였다. 유라는 실컷 울고 집에 가자니까 걷지 못한다고 엄살을 피워댔다. 결국 잔뜩 마른 8살의 나는 통통한 유라를 안고 낑낑거리며 집으로 갔다. 유라는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편안한 듯 새근새근 자는 유라를 보자 짜증이 확 밀려왔다. “피~ 나는 힘들게 업고 왔는데... 혼자 편하게 자고...”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엄마가 해 놓은 밥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7시 40분에 오시니까 저녁을 미리 먹어야 하니 말이다. 왼쪽이 내 자리였다. 

     

 엄마가 가르쳐주신데로 미역국을 렌지에 데우고, 조심히 밥을 퍼서 담고, 엄마가 구워놓은 소시지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라벤더 모양이 그려진 보라색 식탁보에 소고기 미역국, 유라 얼굴처럼 하얀 밥, 내가 좋아하는 문어 소시지가 있다. 오른쪽은 유라 자리였다. 유라는 5살인데 아직도 밥을 소화시키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유라의 자리에는 야채죽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배가 꼬르륵거렸다. 사실 무지무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유라를 두고 혼자 먹으면 유라는 또 울 것이다. 다시 유라를 보니 양갈래로 묶어놓았던 머리가 풀어져 있었다.                

‘띠리링’ 드디어 엄마가 왔나 보다. 인터폰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엄마가 서 있었다. 잠시 뒤 엄마가 현관에 들어섰다. 나는 활짝 웃으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니야~~잘 있었지?” 엄마는 유라의 잠든 모습을 발견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유라가 벌써 자네? 밥은 먹었어?” 나는 망설이다 말했다. “아니. 유라가 자서 좀 기다렸지.” 엄마는 얼굴이 달아올라서 말했다. “아이고 그럼 유라를 깨워야지!” 나는 작은 생쥐처럼 몸을 움츠렸다. 엄마는 큰 숨을 내쉬더니 유라가 누워있는 소파에 가서 힘없는 목소리로 유라를 깨웠다. 엄마가 10번이나 유라를 부르자 유라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엄마아아아” “유라야 밥 먹고 자자” 유라는 식탁으로 왔다. 나도 공주가 그려진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식었는데도 맛있었다.      




 2. 동생 백화점     



 다음날이 되었다. 그날은 내 친구 가은이랑 같이 놀기로 한 날이었다. 한껏 기대가 되어서 내가 첫 번째로 아끼는 핑크색 나비와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꺼내어 입었다. 어쩐지 아기가 입는 옷 같아서 유치하고 촌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옷을 좋아한다. 잘 어울리는 미니 핸드백도 맸다.  

    

 놀이터에 도착한지 5분... 10분이 지나도 가은이는 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휴대전화를 보니 가은이에게 톡이 와있었다.  

“유니야, 나 오늘 놀이공원에 가게 되어서 못 갈 것 같아. 미안해”

“그래. 괜찮아. 다음에 놀자.”       

   

 이렇게 차려입고 나간 게 너무 아쉬워서 학교 앞 문방구에 반짝이 스티커를 사러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 문방구’의 자리에 ‘동생 백화점’이라는 가게가 노란 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뭔가 꺼림칙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상한 기운이 계속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헉’ 했다. 화장실 만한 방들이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문 앞에는 이상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착한 동생” “귀여운 동생” 등등. 모두 동생의 종류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갑자기 “착한 동생”이라고 말해버리곤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3. 착한 동생          




 ‘착한 동생’이라고 적혀있는 방에서 우우우웅~ 달그락!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이상하고 매캐한 연기가 방 안에서 새어 나오더니 치지직~ 하면서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여자아이가 나왔다. 유라와 동갑내기처럼 보이고, 머리를 단정하게 풀었고, 흰색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가서 착한 동생처럼 순하게 보였다. 웅웅거리는 유라의 말투와 달리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 동생은 말했다.      

“언니 안녕! 나는 순순이야. 만나서 반가워!”     

 나는 이 동생이 이제 내 동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나는 맘에도 없는 말을 순순이에게 했다. “순순아... 그럼 유라는 어떻게 되는 거야?” 순순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유라가 보고 싶으면 언니가 동생 백화점에서 유라를 고르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하루라는 아이가 얼마나 착한지, 민유라는 아이가 얼마나 얄미운지,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목이 말라왔다. 착한 순순이도 목이 마른 지 헉헉대고 있었다. 마침 공원에 자판기가 있었다. 천 원짜리 지폐 2장이 있어서 순순이에게 줄 유기농 주스와 내가 좋아하는 콜라를 샀다.           

 순순이는 유기농 주스에 빨대를 꽂아서 쭉 빨아먹었지만 캔으로 된 내 콜라는 허둥대다 보니 펑! 하고 탄산이 내뿜어져서 치마에 묻어버렸다. 순순이도 놀랐는지 “언니이 어떡해?” 라며 걱정했고 나는 순순이에게 괜찮다고 했다. “엄마 몰래 집에 가서 옷을 빨아 놓을까? 히히” 순순이는 알았다고 했지만 뭔가 표정이 개운하지 않아 보였다.     


 집에 가서 옷을 대야에 놓고 비누로 빡빡 문지르며 씻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왔다.     

 “이유니! 엄마가 콜라는 먹지 말라고 했지?”      

 엄마는 화난 킹콩처럼 화장실 앞으로 와서 나를 꾸짖었다. 나는 알았다. 순순이가 엄마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야! 너 때문에 들켰잖아. 너 같은 동생은 싫어.”                    





4. 비밀 잘 지키는 동생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앗! 아까 동생 백화점에서 맡은 연기냄새다. 검은빛이 나를 감싸서 동생 백화점에 오게 했다. 나는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활기차게 말했다. 

     

 “비밀 잘 지키는 동생!”      

 그러자 ‘비밀 잘 지키는 동생’이라는 칸에서 치지직! 하면서 한 여자아이가 나왔다. 정말 비밀스러운 아이답게 꼬물거리는 파마 단발에, 눈꼬리가 올라가 있는 게 평범한 아이답지 않았다. 그 여자아이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언니, 나는 비밀이야! 잘 부탁해.” 나는 헤벌쭉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      

 비밀을 잘 지키는 동생이라면 내가 학원을 빠지거나 군것질을 해도 순순이나 유라처럼 엄마에게 일러바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지으며 비밀이에게 말했다.      


 “비밀아, 나 오늘 힘들어서 학원 빠질 거니까, 너 엄마한테 일러바치면 안 된다!”  


 비밀이는 늘 그랬다는 듯이 흔쾌히 “응”이라고 외쳤다. 지금은 영어학원에 가 있을 시간이지만, 나는 영어학원에 가지 않고 슈미와 같이 빈둥빈둥 놀았다. 신나게 놀고 집에 오는 길에 한 전단지를 발견했다. 전단지에는 핑크색으로 ‘아이돌 오디션’ 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평소 아이돌을 좋아해서 이 아이돌 오디션에 나가고 싶어졌다. 근데 밑에 붉은색으로 작게 적혀있는 글씨를 발견했다.      


‘동생과 와야 합니다. 동생과 한 팀으로 하는 아이돌 오디션!’ 나는 곧장 비밀이를 떠올렸다. 그런데 비밀이는 깜찍하고 하얀 유라와는 달리 까무잡잡하고 주근깨가 얼굴에 잔뜩 있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져서 괜히 활짝 웃고 있는 전단지의 어린이 모델에게 색연필로 낙서를 했다. 조심스레 비밀이에게 다가가보니 비밀이는 ‘비밀 추리’라는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비밀이의 어깨를 3번 치며 말했다.   

   

 “비밀아, 우리 같이 여기 나갈래?”  나는 얼른 전단지를 비밀이의 코에 갖다 대며 말을 덧붙였다. “재밌을 거야. 근데 너 주근깨가 있어서...화장 좀 해서 좀 더 귀엽게 만.. 들... 면...”      


 비밀이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져서 소리쳤다.      

 “하 이제 언니는 내가 맘에 들지 않구나?” 나는 얼른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비밀이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5. 귀여운 동생




 다시 매캐한 연기 냄새와 노란 불빛이 날 감싸서 동생 백화점으로 데려가 주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아이돌 오디션을 생각하며 외쳤다.      


 “귀여운 동생!”      

 다시 방에서 우르르 쾅! 소리가 나며 한 여자아이가 나왔다. 머리를 풀고 있고 눈은 미미인형처럼 파랗다. 여자아이는 새침데기 같은 목소리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난 예쁜이야. 안녕?”     

 약간 차갑고 도도한 말투 때문에 마음이 상했지만 그래도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저어.. 이 오디션에 참가할래?” 예쁜이는 내가 내민 오디션 참가라는 전단지를 보고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좋아!”           

 오디션 날이 되자 예쁜이는 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만 예쁘게 꾸몄다. 예쁜이는 안 그래도 큰 눈에 아이라인, 속눈썹까지 하고, 빨간 립스틱을 체리 같은 입술에 펴 발랐다. 그리곤 나에게 허락도 맡지 않고 내가 아끼는 고양이 원피스까지 입고는 온갖 잘난 체를 부리면서 포즈를 취했다.   

   

 예쁜이는 예뻤지만 배려심이 없었다.               

 나는 예쁜이가 다 쓰고 남은 화장품을 긁어서 쓰고, 좋은 옷들은 예쁜이가 입었기 때문에 나는 작고 볼품없는 노란 원피스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우리 둘의 차례!      

 예쁜이는 고집을 피워서 자기가 맨 앞에 선다고 했다. 난 할 수 없이 뒤에 서기로 했다. 호흡이 척척 맞아서 앞부분은 통과했지만 뒷부분의 하이라이트에 다다르자 작았던 노란 원피스가 터져서 등이 다 드러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내 등을 가리키며 웃었고 나는 숨고만 싶었다. 당황해서 실수를 했기 때문인지, 옷이 터져서인지, 예쁜이 혼자 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고 비참해서 대기실에서 예쁜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너! 너는 내 생각은 안 하니? 너 같은 동생은 이제 싫어!”          




6. 뭐든지 좋다는 동생    



      

 그러자 다시 매캐한 연기가 나를 감쌌다. 이상하게 은은한 샤넬 향수의 냄새 같기도 했다. 다시 동생 백화점에 도착했다. 나는 고민을 하고, 또 고민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온 동생들도 모두 좋은 동생들이었다. 하지만 그 동생들은 모두 내가 원하는 동생이 아니었다.  잠시 뒤에 하나의 생각이 가슴속으로 날아왔다. 그 생각은 나의 심장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원하는 것은 뭐야?’          

나는 그 생각에 마음에 진동이 온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하나의 음산한 생각이 다시 내 가슴속에 대고 속삭였다.      


 “뭐든지 좋다는 동생!”      

 음산한 생각이 이겼나 보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뭐든지 좋다는 동생”      

 그러자 지난번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30분쯤 지나자 띡! 하고 전자음이 울렸다. 그러자 드디어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그 아이는 뭔가 평범해 보였다. 짧은 머리를 하나로 야무지게 묶고 꽃 원피스를 입고 꽤 수줍은지 얼굴은 붉게 물들여 있었다.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 그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저.. 저.. 저... 안녕? 난 너의 언니 유니야” 그 동생은 잠시 후 말을 건넸다. “그래. 언니 안녕? 나는 조아야.” 나는 조아의 이름이 웃겨서 꾹꾹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조아도 나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역시 뭐든지 좋다는 동생을 뽑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코를 찡긋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놀이터에서 조아와 신나게 놀다가 미끄럼틀 동굴에서 기다란 독침이 박힌 지네를 보았다. 나는 놀랐지만 지네를 관찰하고 싶어서 얼굴을 쑤욱 내밀었다.      


나는 농담으로 웃으면서 말했다.“조아야, 언니가 이거 만져볼까?”  그런데 조아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응! 응! 만져봐. 어서 만져봐! 궁금해. 궁금해!!”          


나는 조아의 대답 때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나를 걱정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조아가 미워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흑! 흐윽!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내 걱정은 되질 않아? 지네는 독이 있단 말이야”  조아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음. 언니는 나를 이제 원하지 않구나. 난 갈게. 그럼 안녕...”               




 7. 유라           



 잠깐 눈을 깜박한 사이에 조아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나의 말이 내 마음속을 찔렀다. ‘손님’ 나는 백화점의 손님이긴 한데... 마음을 편히 놓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걷고, 또 걷고, 걷다 보니 후드티 안에 있는 종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꾸깃꾸깃한 종이를 조심스레 펼치자 편지가 쓰여 있었다.                




우리 언니에게.     

언니 안녕? 나 유라야.      

내가 오늘 언니 사탕 뺏아먹어서 미안해.     

나는 그 사탕이 언니 꺼인지 몰랐어.      

그래도 미안해.     

다음부터는 언니 말 잘 듣을게.      

-유라가-  




                                 

 나는 편지를 3번이나 읽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갑작스럽게 흘린 눈물이라서 소나기처럼 그칠 줄 알았는데 쉽게 그쳐 지지가 않았다. 머릿속은 눈처럼 하얗게 비었는데 그 중심에 하나의 생각이 떠나질 않고 미련하게 서성였다. 그것은 유라였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이유라. 내 동생 이유라!"      


 그러자 편지에서 밝고 예쁜 노란빛이 소용돌이를 만들어서 날 감쌌다. 눈 깜박할 사이에 동생 백화점에 도착했다. 원래는 백화점 안에 따뜻한 불빛이 비추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불빛이 하나도 없고 어두침침했다. 왠지 음침한 느낌이 들어서 소름이 돋았다. 무척이나 들어가기 싫었지만 왠지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힘껏 하얀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침을 꼴깍 삼키며 유라를 불렀다.     

 

 “유... 유라야” 그래도 아무 대답도 없이 고요하고 어두침침했다. 각각의 동생 방들은 있었지만 모두 엑스자로 ‘비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4개의 칸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확인했다. 모든 칸을 열어보았지만 텅 빈 하얀 방들이었다. 나는 답답해져서 허공을 올려다보다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서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얀 천장에 칸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칸에는 노란색으로 ‘진짜 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유라를 찾은 것처럼 기뻐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왜 허공에 칸을 만들었지?’ 라는 궁금증도 들었지만 그보단 먼저 저 칸 안에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착한 동생’ 칸 옆에 있는 파란색 사다리를 허공에 갖다 대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사다리를 잡고 올라갔다.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겨우 3걸음 정도가 남았을 때 ‘어랏’ 사다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땀을 뚝뚝 흘리며 올라가서 칸을 열었다. 안에는 부드러운 천 가죽의 의자가 있었고, 누군가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그토록 찾았던 유라였다.  유라는 나를 보자마자 와락 안겨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웅니이이이 으앙 왜 나를 두고 가떠?” 나는 유라를 안고 달래주었다. 유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끼던 보라색 구슬을 주었다. 유라는 구슬을 받자 울음을 그치고 헤헤 웃기 시작했다. 유라가 보라색 구슬을 만지자 보라색의 빛이 틔어 나와 나와 유라를 감쌌고, 우리는 빛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는 이제부터 유라를 절대로 그 누구와도 바꾸지 않기로 다짐했다. 유라와도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보라색 구슬은 유라의 곁에 두었다. 그 구슬이 유라의 부적이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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