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의 정체

아이의 이유 있는 자유

by 예담


네 살인 아이에게는 놀이터가 밥이자 소울이고 구원의 문이니라! (사실 6살도, 7살도... 11살이 된 지금도 놀이터가 보이면 달린다.)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집에서 나온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한 곳으로 뛰기 시작한다.


놀이터!


놀이터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은 마치 처음 만난 사이처럼 새롭게 다시 뛰논다. 아침에 들어섰던 하나의 세계에서 규칙을 배우고 학습을 통해 작은 성취감과 재미를 맛보았지만 사이사이 끼여 있었던 긴장과 눈치는 아이들을 움츠리게 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이겨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문을 박차고 나온 아이들의 눈은 생기로 반짝였다. 놀이터를 본 순간 긴장이 풀어졌고, 뛰어가 그네를 차지하는 순간 짜릿함이 감싼다. 흐릿했던 즐거움과 성취감들이 또렷하고 컬러풀해졌다. 줄 서지 않고 정해진 규칙과 시간 없이 마구 뛰어놀 때, 시작과 끝이 없고 즐거움의 한계도 없는 놀이가 시작될 때, 선생님이 아닌 나의 엄마가 동생이 잠든 유모차를 밀며 저어기 서 있을 때, 엄마가 나를 보며 웃어줄 때, 나의 일과를 끝마치고 나와서 즐기는 약간의 일탈 같은 놀이, 그 모든 이유들로 마음이 들썩인다.


하원 하는 아이의 모습은 말끔하다. 낮잠을 자고 흐트러진 머리를 아마도 선생님이 곱게 묶어주셨을 테고 옷매무새도 단정히 만져주신 흔적이 엿보인다. 아이의 표정은 그에 반해 흐릿하다. 좋고 싫음이 불분명한, 그 중간 쯔음의 모호한 표정으로 아이는 엄마를 보며 어슴푸레 웃는다. (엄마가 젤리라도 하나 들고 왔다면 더 활짝 웃는다.)


(나름의 고단했던)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나와서 놀이터로 뛰기 시작한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야무지게 집어넣었던 윗옷은 허리춤에서 이미 반쯤 삐져나왔고, 단정히 묶었던 머리카락도 하나둘씩 탈출을 시도한다. 그들도 자유를 갈망했나! 얼마 되지 않아 말끔했던 아이는 꼬질꼬질해졌다. 아이의 옷과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 채 지켜본다. 송송 땀이 맺힌 채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는 마냥 즐겁다.


어느새 나온 친구들로 놀이터는 시끌벅적 가득 찼다. 어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불편해할지언정 아이들은 노프라브럼이지! 더 즐겁고 더더 신날 뿐. ( 대략 7년 전쯤의 일이다.)






옆에 있던 한 엄마가 나를 쿡쿡 찌르며 다급히 손짓을 한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엔 나의 아이가 있다.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가 놀이터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그야말로 큰 대 자다.


어서 가보지 않고 왜 가만히 있냐는 물음에 싱긋 웃어주고 괜찮다고 했다. 놀다가 지친 아이는 푹신한 놀이터 바닥의 한 귀퉁이에 누워버렸고, 누운 김에 바라본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는 중인 것 같다고 설명해주었더니 아이 친구의 엄마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나를 훑는다.

'세상에... 정상이 아닌 여자였어!' 그런 표정으로. ㅎㅎㅎ


아이는 한참을 놀이터가 제집인 양 누워있다. 다시 친구 엄마가 다가온다.

"예담이 옷이랑 머리 다 더러워지는데 진짜 그냥 둘 거예요? 제가 일으켜 세울까요? "


"아니요. 괜찮아요. 노는 중이에요. 샤워하고 옷도 어차피 세탁할 거고, 나름 생각이 있는 건지 구석에 누웠네요 다른 아이들 노는데 방해 안되니까 그냥 두죠 뭐."


엄마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조금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충전된 에너지로 다시 놀이터를 뱅글뱅글 뛰기 시작했다. 놀다가도 한 번씩 나를 쳐다보는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면 우리만 아는 표정으로 긍정을 담아주었다. 보이지 않는 동그라미는 보이는 동그라미보다 아이의 자존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놀이터에서 아이에게 자유를 허하고 싶었기에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지켜보며 표정으로 응원해주는 엄마였다. '하지 마라. 집에 가쟈.'는 말은 가능한 하지 않았다. 내가 주었던 말들은 '괜찮아. 천천히 해봐. 다 놀면 말해. 응. 기다릴게.'였다.


아이는 (아이니까) 넘어졌고, 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거니까 바닥에 누워도 괜찮았다. 옷을 보호하기 위해서 몸이 있는 게 아니니까 비싼 옷이든 싼 옷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 남편은 가끔 기겁을 했지만. )

간섭 없이 마음껏 놀고 스스로 집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발걸음이 힘찼다.


어떤 날은 유모차에 누워서 버둥거리던 동생의 수유 텀이 어긋나 집으로 가야 했고, 환절기가 되면 어린이집을 나오자마자 소아과로 직행해야 했지만, 아이는 늘 이해하는 듯 어떤 돌발상황들을 잘 받아들였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나는 너를 이해해.'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 이해를 차곡차곡 모아서 배려를 만든다.






+

열한 살이 된 아이는 요즘에 한 번씩 이유 없이 (이유가 있겠지...) 뾰로통해지는데 긍정의 눈빛 대신 레이저를 쏘는 나를 반성하며 더듬더듬 초심을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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