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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Apr 22. 2022

학교를 마치면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이 좋은 이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동네 도서관으로 설렁설렁 걸어가서 책을 읽는다. 걸어가는 길은 골목골목을 지나고, 짹짹 몰려다니는 참새떼를 지나, 하루의 중간 즈음 찾아오는 약간의 노곤함도 지난다. 달그락달그락 책가방에서 저도 소리를 내는 수저통의 소리가 정겹고, 걷다 보면 한쪽이 슬쩍 내려가 있는 책가방의 삐뚤어짐이 아이를 닮아 귀엽다. 학원에 가는 것이 아니기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몇 번을 멈추어 선다. 쪼르르 몰려 바닥에 앉아있는 참새를 보고 살금살금 걸어가 사진을 찍으려다 실패하기를 수십 번이지만 늘 처음처럼 도전하고 실망하다 이내 까르르 웃고 만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면 작은 마음이 보인다. 


도서관에 들어 선 아이들은 책가방을 내려놓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서가로 간다. 좋아하는 책들이 모여있는 서가 앞에서 읽을 책들을 고르기 위해 표지와 함께 몇 페이지는 읽어보기도 한다. 읽을 책을 고르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다른 세계로 풍덩 빠져버린 아이는 철퍼덕 앉아서 책장을 넘기고 있기도 부지기수다. 


하루에도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고, 한 자리에서 다양한 세계 속을 넘나들 수 있는 곳은 책이다. 우리는 서점도 좋아한다. 하지만 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한계점이 있다. 무작정 많이 살 수 없으므로 두 권으로 정해두었다. 여러 권의 책을 들고 무엇을 살까 고민을 하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고른 책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시리즈이거나, 선호하는 장르였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책들을 뒤적거리며 새로운 흥미를 가지기도 한다. 

"어 엄마, 나 이런 책은 지루할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재밌어. 진작에 읽어볼걸. 시간이 아쉬워."

"지금부터 읽으면 되지. 앞으로의 시간이 더 많은 걸." 


아이들도 자신의 주민번호로 만든 도서관 카드를 가지고 있다. 책가방 앞주머니에 야무지게 넣어서 다닌다. 우리는 각자의 도서관 카드로 따로 책을 빌린다. 한 번에 다섯 권을 대여할 수 있다. 기간은 2주이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서너 번을 가기 때문에 대여기간의 의미가 딱히 없지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내고 책을 빌리고 반납을 하는 과정은 책임감을 동반한다. 빌려간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대여할 수 있는 책의 권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아이들은 꼼꼼히 책을 챙긴다.  책을 다 읽고도 한 권을 빠뜨리고 못 챙긴 바람에 4권만 대여가 가능했던 날, 아쉬움으로 입을 삐죽거리던 아이는 누나가 빌린 다섯 권을 보며 의지의 눈빛을 달구었다. 그 후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읽고 나면 현관 옆 보조 가방에 쏘옥 넣어두는 자발적인 습관이 생겼다. 






공교육만으로 학습을 이어가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데엔 비슷한 생각이지만 사교육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의미 있게 배워야 한다.  경쟁구도 속에서 시험으로 레벨을 나누며, 정답을 향해 앞만 보며 질주하는 경주마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영어학원에서 친구들이 단어시험을 치고 있을 때, 영어책 한 권을 읽으며 단어의 의미를 유추해 문장의 의미를 알아가며 재미를 찾아도 된다. 수학학원에서 친구들이 기출문제를 풀고 있을 때, 고작 학교 수학익힘책을 꺼내 수업시간에 아리송했던 문제를 다시 풀어보고, 문제지를 꺼내 비슷한 문제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끄집어내어 궁금했던 문제 유형만 풀어보고 다시 덮어도 충분히 괜찮다. 

하고자 하는 마음과 배움의 경로와 목적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언제든 길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아는지 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해 정직하게 짚을 수 있는 아이라면 주체적으로 묻고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교육에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어서, 불안함을 감추려 자꾸만 책을 읽고 생각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학원을 가지 않는 아이의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들어가고픈 세계가 많아서 읽고 싶은 책이 넘쳐난다. 책을 읽다가 확장된 세계관으로 글을 쓴다. 생각을 이어가고 연결시킬 줄 알게 된다. 논술학원에서 배운 비법이 아닌 스스로 터득한 자신만의 장을 담근다. 깊고 진해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함은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할 것이다. 




아이들이 말하고 내가 덧붙이는 도서관이 좋은 이유. 


1. 책의 종류가 많아서 고르는 재미가 있다. 

서점도 책의 종류가 많지만  미리 볼 수 없도록 투명 포장지로 꽁꽁 싸놓은 책들이 제법 있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파손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이는 서점에선 신중히 책을 고르고 구매 후 집에 와서 읽는다. 반면 도서관은 읽을 책들을 두세 권씩 골라와서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2. 중간에 다시 바꿔 읽을 수 있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골랐는데 몇 페이지를 읽다 보니 기대 이하인 책들이 있다. 구입한 책들이라며 꾸역꾸역 다 읽어내며 지식과 재미를 찾기 위해 골몰했겠지만 도서관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과감히 중간에 책을 바꿔도 된다. 그럴 수도 있지.


3. 조용하다. 고요함 속에서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4. 집으로 빌려와서 읽을 수 있다. 공짜로!!!


5. 각자의 도서관 카드로 책을 빌린다. 한 번에 다섯 권을 대여할 수 있다. 기간은 2주이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서너 번을 가기 때문에 대여기간의 의미가 사실 크게 없다. 


6. 책을 접거나 훼손하면 안 되므로 조심히 바른 자세로 읽게 된다.


7. 소장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감명받았던 문장들을 쓰고, 반납하기 전에 리뷰도 남겨두게 된다. 

완독 후 리뷰를 쓰는 것 까지가 그 책의 여정이다. 진심을 담아 리뷰를 쓰고 나면 책이 스르르 소화되는 느낌이 든다. 질 좋은 한 끼를 음미하며 먹었을 때의 기분이랄까. 


8. 우리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들은 타도서관에서 상호대차를 신청하면 다음날에 우리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신세계가 따로 없다. 


9.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고, 다시 고르고 읽고 씀을 반복하며 분별력이 생긴다. 


10. 무언가에 몰입하고 끈기를 갖는 과정이 쉬워진다. 한 권의 책을 오랜 시간 앉아서 정독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어른보다 쉽게 그것을 해낸다. 


11. 다녀오는 길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 자기효능감이 생긴 아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귀히 여길 줄 알게 된다. 


12. 매일 조금씩 다른 길로 돌아서 걸으며 산책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13. 그렇지만 서점에서 책을 사는 설렘과 좋은 책을 소장할 때의 기쁨은 또 다른 결의 충만함이라 우리는 적절히 책의 시소를 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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