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시라요? 여기가 어뎁네까?
이 소설은 허구이며, 문학가를 꿈꾸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반년에 걸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골몰한 결과물입니다.
탈북을 주제로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지만 북한의 또래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갈등을 극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퇴고를 도우면서 읽어본 결과,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너른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아이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얘야, 눈 좀 떠봐."
멈춰졌던 영상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지러움에 토할 듯 머리가 띵하고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천근만근 무거운 눈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눈앞에 한 줌의 빛이 들어오며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발작하듯 고함을 질렀다. 놀라서였을까. 경계심 때문이었을까.
나조차 의미를 모르는 고함소리에 내 앞의 큰 그림자들은 일렁이며 뒷걸음친다. 미세한 분위기나 말투, 그 모든 것이 내가 알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게 파악됐다. 앞에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 뚜렷하지 않다. 불분명하게 나오는 내 목소리는 적대적이었고 본능적으로 나는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누... 구시라요? 여기가 어딥네까?"
잔뜩 힘을 주어 말했지만 반대로 내 몸과 마음은 잔뜩 겁을 먹어 움츠러들었다. 턱이 덜덜 떨리고 곧이어 상처 난 모든 부위가 아주 뜨거운 곳에 덴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 많이 다친 것 같아서... 일단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고 기미 있는 얼굴에 분을 칠한 늙은 여자, 그리고 그 옆에는 남색의 바래진 얇은 점퍼를 입은 늙은 남자가 구급상자를 들고 있다. 순간 그 전의 흩어진 기억들이 퍼즐처럼 다시 맞춰졌다. 아저씨는 뜨거운 물수건을 내 다리 부위에 닿게 했다. 뜨거운 물이 닿으며 상처부위가 아려온다.
아...
참고 있던 고통 속에서 미처 내뱉지 못했던 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조금만 참아봐.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서..."
투박하고 주름진 손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내 상처를 치료해 준다.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호의여서 그런가. 이 고통 속에서 다정함을 발견하는 나 자신이 어이가 없다. 인민학교에서 철도사업에 필요한 노동을 할 때나 고아원에서 시키는 일을 할 때는 이보다 더한 멍과 상처로 가득했었다. 아픈 티도 내지 않고 숨죽여 울었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지난 상처도 들추어 치료받고 싶어졌다.
흙이 들어갔는지 까끌하고 불쾌하게 아픈 상처 부분. 지금 내 처지도 잊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놀란 나는 서둘러 눈물을 닦고 표정을 고친다. 내가 혼자인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입을 꾹 다문 채 눈에 힘을 주었다.
"탈북하려고 한 거 맞지? 여기 대한민국 맞아. 안심해도 돼. 부모님은? 아... 아 아니다. 먼저 좀 쉬도록 하자. 목은 마르지 않니?"
아줌마의 어색한 말투와 상냥한 웃음에 하마터면 경직된 표정이 풀리고 웃음이 날 뻔했다. 저 촌스런 아주매는 연신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비웃는 건가? 그러기엔 무해한 따뜻함이 전해져서 자꾸만 노곤해진다.
“잠... 잠깐만. 대한민국이라고? 남조선??”
온몸을 흔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충격으로 아줌마가 감고 있던 붕대 끝이 달랑이며 떨어진다. 당황해서 붕대 끝을 찾는 아줌마는 생각보다 더 늙고 작아 보였다.
"놀랐구나.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정말이지 낚싯배 아저씨께 감사해야 한다."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은 무엇보다 지금 나의 옆에서 이유 없이 호의를 건네주는 이 사람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이 선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불편하고 벗어나고만 싶다.
아줌마는 붕대를 감던 손을 멈추더니 갑자기 두 손을 모았다. 가끔씩 울먹이며 주억거리기도 했다. 처음 보는 남조선 사람들에 당황한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하게 비틀대고 있었다. 아줌마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 창가의 커튼을 거칠게 젖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훅 내게 날아든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감았다가 뜨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여기가 남조선인지 북조선인지 제대로 분간은 안되었지만 공기로 알 수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온몸이 서늘해질 만큼 한기가 돌던 공기여야 했는데 분명 차가움이 덜하게 느껴진다. 늘 맡던 냄새와도 달랐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