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가 향하는 곳은 도서관이다. 요즘은 유행처럼 주말이면 친구들과 스터디카페에 가는 아이들이 많다. 첫째 아이는 중1 때 친구와 함께 몇 번 스터디 카페에 가보았다. 깨끗하고 예쁘고 좋았지만 공부에는 오래 전념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래 친구들이 가득한 곳이라 외모도 나름 신경을 써서 가야 했고 친구가 공부하는 과목을 보면 나도 저걸 해야 할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을 것이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공부를 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고 꾸벅꾸벅 졸다가 엎드리기도 했을 테다. 스터디 카페를 나와서 친구와 떡볶이를 사 먹고 사진을 찍고 노래방에도 갔다고 했다. 그 재미이다. 친한 친구와 함께 누릴 수 있는 해방감.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풀면서 동시에 공부를 하러 나왔으니 가질 수 있는 떳떳함. 그러니 이런 날들도 필요하다. 서로 속이고 속아주는 날은 일상의 유머 같은 것이라 아이들에게 틈을 준다. 부모와 아이 모두 참았던 숨을 내 쉬며 마음을 소화시킨다.
중2학년이 되고 본격적으로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하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집중이 잘 된다고 하였다. 어른들과 청소년들이 섞여 있는 공간, 조용하지만 트여있어서 엎드리거나 몸을 뒤척이는 것이 타인에게 방해가 됨을 아는 공간, 집중력에 강한 사람들이 공존하여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 내가 내 템포와 계획을 조정하고 주도하며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른 시간에 몰입하게 해 준다. 몰입을 하여 공부를 하는 아이는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아이가 모르는 문제를 만나서 짜증을 낼 때는 몰입이 덜 되어 다른 생각이 날 때였다. 진심으로 공부에 몰입한다는 것은 맞고 틀리고를 인식하지 않고, 내가 알고 모르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르면 다시 알면 되고, 알면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한 배우가 인터뷰 때 그런 말을 했었다.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크신 줄 아는데,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느냐는 뉘앙스로 리포터가 묻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다음 작품을 열심히 찍고 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해나간다는 뜻의 말이 멋있었던 기억이 있다. 성공에 취하지 않고 좌절에 주저 않지도 않고 흐트러짐 없이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른에게도 어렵다. 그러니 아이들이 시험에 기뻐하고 좌절하며 한 문제 한 문제에 기쁨과 고통이 혼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감정 속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한걸음 더 빠르게 헤어 나오는 습관을 유지한다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시험 치는 날,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난다는 아이에게 나는 늘 똑같은 말을 했다.
"이 시험으로 결정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기회는 수없이 많아. 떨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주말에는 빈 좌석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오픈시간에 맞추어 아이는 도서관으로 출발한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는 것도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도서관에서의 공부는 긴장 섞인 자유를 느끼게 해 준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을 보면 자극이 되어 덩달아 의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요즘엔 노년의 나이에 공부를 하는 어른들이 참 많아졌다. 할아버지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존경심일 것이다. 지난번엔 앞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가 연신 기침을 하며 공부를 했다는 말을 했는데, 아이는 기침을 해서 불편했다는 관점이 아닌, 아픈데도 불구하고 한자리에 오래 앉아 물을 드시며 공부를 해 나갔다는 말을 했다. 아이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그런 모습이었다.
점심을 준비해 놓은 뒤 둘째 아이와 느지막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우리가 책을 반납하고 고르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첫째 아이에게 메시지가 온다.
"엄마 어디야? 나 배고파."
우리는 도서관 로비에서 만나 집으로 온다.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만들어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 표고버섯과 당근, 양파를 넣은 소불고기를 한솥 끓여 놓고, 당면도 불려놓고 왔다. 엄마표 불고기 덮밥을 만들어주면 세 번이나 리필해서 먹는 아들 덕분에, 기쁘게 요리하는 우리 집 단골 메뉴이다.
딸아이는 표고버섯과 당근, 당면을 가득 담아서 야채와 고기의 비율을 맞춰줘야 잘 먹고, 아들은 고기가 8할로 담아주면 환호한다. 나는 아이들의 그릇이 비워지고 더 달라는 소리가 나오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비워진 접시를 가득 채워온다. 다시 새롭게 입맛이 돌도록 접시 주변을 키친타월로 닦고 통깨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빌려온 책들을 한가득 쌓아놓은 뒤 무엇부터 읽을지 고르기 시작한다. 마음도 배도 불러와 충만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책을 고르고 나면 아이들은 과자 한 봉지씩을 가져와서 자리를 잡는다. 배가 부르다면서 과자가 또 금방 들어가냐고 언젠가 물었더니 아이가 말했다.
"조금 있으면 배가 진짜로 불러오거든. 그러면 과자를 먹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밥을 먹자마자 과자를 먹는 거지."
어이쿠야.
다행인 건지. 아들은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다. 모두 키로 가는지 6학년이 되며 170에 다다랐다.
누나를 앞지른 지는 이미 오래다. 키도 나보다 크고 팔씨름도 내가 진다. 엄마는 두 손으로 하라고 해서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두 손을 다쓰고도 아들에게 팔씨름을 졌다. 지고도 이기는 기분이 들어서 부풀어 오른 기쁨을 고이 안은 채 아쉬워하며 웃었다.
소파에도 암묵적으로 각자의 자리가 있다. 이제부터 힐링의 시간이다.
유튜브에서 지브라 음악 연속 듣기를 틀어놓거나, kbs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켜놓고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한 공간에서 함께 숨을 나누며, 자유를 누리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빌려온 책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그중에 숨은 보석을 찾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기대하지 않았던 책이 의외의 묘미를 드러낼 때, 숨겨두고 잊고 있었던 비상금을 발견한 것처럼 조용히 환호한다. 반대로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잔뜩 기대했던 책이 별 볼 일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우리끼리 품평회를 한다. 서로의 책에 대해 어떤 점이 좋았는지 자랑하고, 때론 무엇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했는지도 토로한다. 순서도 없고 정해진 룰도 없다. 그저 말하고 싶을 때 누군가 먼저 꺼내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사춘기가 되고 아이와의 긴 대화는 힘들어졌지만 책으로 소통할 수 있음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성실히 도서관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