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새 학기

막연하니까 두렵다.

by 예담


처음은 언제나 긴장되고 설레는 법. 늑대소년마냥 자유로이 키운 아들이 학교를 간다. 믿는 것과는 별개로 걱정이 앞서고 다시 처음인듯한 조바심이 쫓아왔다. 딸과 아들은 달라도 정말 달랐다. 비교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키웠지만, 쫓아오는 조바심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정작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나는 오늘이 즐겁다! 뭐 그런 바람직한 마인드랄까.) 어른과 아이중 누가 더 겁쟁이일까. 지레짐작하고 장애물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시뮬레이션하며 내일의 완벽을 준비하느라 지금이 자꾸만 사라진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소홀히 하면 안 됨을 알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작은 그림자에도 구름이 몰려오는건 아닌지 짐짓 놀라곤 했다. 아마도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부터였을까.


입학이 연기되었다. 아이들은 학교보단 놀이터가 아쉽다. 코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사라진 놀이터. 갑갑할 텐데 마스크가 너무나 익숙해진 아이들의 천진함이 문득 애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움츠러들었다.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우리는 서로를 경계한다. 마스크로 표정을 숨긴 채 서로의 손을 잡지 않아 온기는 이내 식어버린다. 엘리베이터에 타선 닫힘 버튼을 황급히 누르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누군가가 급히 열림 버튼이라도 누르면 일상이 공포가 된다고 한다.

막연하니까 두렵다. 보이지 않고 예측할 수 없으니 신경이 곤두선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동네병원 중 괜찮은(본인과 잘 맞는) 소아과나 이비인후과를 정해 정착하게 된다. 각자의 기준이 있는 엄마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맘까페의 평을 따르는 것 같다. 개운한 병원! 내 기준은 그러했다. 맞든 틀리든, 일단은 소신을 가지고 진료하며 안심시켜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소아과는 약이야 오십보백보 큰 차이가 없어 보였고, 소신 있게 진료하고 깔끔하게 설명해주는 소아과를 다녀오면 걱정스러웠던 마음도 나아서 오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마음은 물밖에 떨어진 물고기처럼 펄떡된다. 이제 괜찮을 거라는 작은 위안은 호흡을 고르게 한다.


막연해서 두려웠지만 이내 괜찮아진다. 토닥이고 토닥여주며, 파도는 잔잔해지고 두려움은 가실 테니까. 조금 늦겠지만 더욱 반가울 올해의 늦은 봄처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숟가락을 부딪히며 뜨끈한 찌게를 나눠 먹는 것도 추억이 될까 싶은 지금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의 온기를 느끼길 바란다.






아이가 클수록 우리는 힘을 빼야 한다. 꼭 쥐었던 손을 느슨하게 풀고 아이의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보다 한발 뒤에서 아이의 모습을 관망하고 격려하며 북돋아주어야 한다.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며 부모는 아이의 주인이 아님을 새겨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음에 인정받기 위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마음이 굳어가기 전에 우리는 만져줘야 한다. 정해진 계획대로 척척 잘 따르는 아이보다, 때로는 꾀도 부리고 그럴 때면 엄마도 살짝 모른 척 넘어가 주기도 하는 그런 빈틈이 있는 가정. 내가 원하는 허당 가정. 나는 허당이지만, 때로 예민해지기 때문에 늘 조심하려 한다. 무엇을? 완벽해지지 않기 위해. 헐렁헐렁 느슨해지기 위해.


나의 아이의 새 학기는 '함께'였으면 좋겠다. 받아쓰기나 공부는 엉성해도, 친구를 살피며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충만한 행복을 알아갔으면 한다.







엄마가 베이커리를 배우면 아이는 빵을 많이 먹으며 자랄 것이고, 엄마가 노래를 배우면 아이는 엄마의 흥얼거림을 따라 하며 자랄 겁니다. 엄마가 노력하는 동안, 아이는 그 일부를 자기 세계에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죠. 엄마가 자신만의 가치를 아이 인생에 심어주면, 아이는 그것을 중심으로 풍성한 삶을 꾸리게 됩니다. - 엄마의 20년 중 -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능력을 더 잘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은 내밀한 삶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씨앗- [따뜻하게 지켜보는 적극적인 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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