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목소리가 작은 아이.
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은 이상했다. 번호대로 돌아가며 앞으로 나와야 했던 수업은 늘 긴장감이 맴돌았다. 시작할 단원을 미리 공부하고 칠판에 나와서 가르칠 내용을 판서하고, 선생님처럼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지켜보며 점수를 매기고 약간의 피드백을 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은 모의고사를 치기 전과 후였다. 모의고사 풀이가 필요했을 때와, 중간 기말고사 대비 전 그 정도의 절실한 시간에만 선생님은 칠판 앞에 서셨다. 국어수업이 시작되기 전엔 긴장이 맴돌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우리는 이내 적응했다. 제 차례에만 긴장하면 되는 것을. 나만 아니면 그냥 재미있는 구경이 되고 있었다. 떨면서 수업을 하는 아이들, 역량을 펼쳐 보이는 아이들, 준비해오지 않아 혼나는 아이 등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짜인 국어시간의 공기는 텁텁하고 밀도가 높았다.
매시간 2명 정도씩, 몇 주에 한번 차례가 돌아오곤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보며 전날 밤늦게까지 떨리는 마음을 안고 연습했다. 불안이 가져온 넘치는 연습량으로 인해 달달 외울 정도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앞 번호 친구의 발표를 보며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자신 있었다. 꼼꼼히 체계적으로 준비했으니, 내용을 보면 아마 선생님도 감탄하실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친구의 차례가 끝나고 로봇처럼 벌떡 일어난 나는 칠판 앞으로 가서 준비한 내용을 판서했다. 또각또각 분필 소리와 쿵쾅쿵쾅 심장소리, 선생님과 친구들의 시선, 그리고 이내 텁텁해져 밀도가 높아진 공기는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즐기기로 마음먹자 떨림과 함께 묘한 재미도 일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판서를 마치고 돌아선 나에게 선생님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는 원래 얼굴이 하얀 거냐? 아니면 지금 하얗게 질린 거냐? "
한쪽 입꼬리만 비대칭적으로 올라가서 웃고 있는 선생님의 표정과 "냐"로 끝나는 말투는 꼭 붙들고 있었던 용기를 흩어지게 했다. 선생님이 가지는 힘이란 그렇게나 컸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아이의 자신감, 자기 효능감, 주도력 그 모두를 풍선처럼 크게 부풀리거나, 혹은 바람을 빼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이라는 권력을 앞세운 농담의 가시들은 아이들의 기를 누르고 찌른다. 그럴 땐 가만히 듣고 웃음으로 넘기는 것이 흘러가는 룰이었는데, 그날은 그러기가 싫었다.
"원래 얼굴이 하얗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척 또박또박 대답을 해버렸다.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진 걸 보고야 말았는데 마주친 눈빛을 의미 없이 대응했다. 원래라면 나도 멋쩍은 듯 웃고, 교실 안은 웃음으로 빵 터졌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막아버린 것이었다.
(만일, 그것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한 말이었다면 나도 그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하는 거니까.)
힘을 빼고 나니 되려 떨림이 약해졌고, 발표는 연습한 대로 술술 나왔다. 수업 목표, 단원 설명에 이어 본문 내용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선생님이 말을 끊었다. " 안 들려! 목소리 크게 해! "
조금 더 소리를 높여 칠판의 내용을 가리키며 다시 발표를 시작하는데, 다시 말이 끊겼다.
"야 안 들린다고! 더 크게" 그 말이 서너 번 반복되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 선생님의 입꼬리가 다시 하나만 올라갔다.
"너 들어가! 안 들려."
아직 반도 못했는데... 준비한 게 아직 많은데... 선생님도 지금 내가 준 자료를 보고 있으면 아실 텐데.
아니겠지. 조금 서 있어볼까. 더 큰 목소리로 한다고 말씀드릴까.
수많은 생각이 스치며 멍하게 질려 서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말했다.
"자 다음!"
그렇게 자리로 돌아갔다. 고개를 숙이자마자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준비한 자료를 적셔도 속수무책이었다. 옆에 앉은 친구는 내 등을 만지며 속삭여주었다. " 니 잘못 아니야. 잘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너무 이상해. 괜찮아?" 뒤에 앉은 친구도 툭툭 치며 마음을 전했다. 위로가 내 몸에 닿자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 쉴 새 없이 뚝뚝 책상 위로 떨어졌다. 후드득 갑자기 내리는 비가 되어 피할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엎드려 울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하나둘 위로를 떠서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마치 한겨울 목욕탕에 들어가 온탕이 싫어서 꾸역꾸역 앉아선 나오지도 않는 때를 밀고 있으면, 몸이 식을세라 따뜻한 물을 쉼 없이 끼얹어주던 엄마의 온기처럼 따스해졌다.
국어를 가장 좋아했던 내가 국어가 싫어지는 희귀한 마음을 접했다. 시와 소설은, 문학은요. 함께 이야기하고 설명을 들으며 생각을 이어가는 맛이 일품인데, 굳어서 앞에 나온 친구를 보며 실수하진 않을까 내가 노심초사하게 되는 수업이라니. 재미도 없었고, 인정도 없는 차가운 국어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수학이 좋아졌다. 열심히 빠져서 끝까지 풀어내고야 말았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달까.
특히나 주관식이 좋았다. 꼬고 꼬아서 베베 돌려놓은 문제를 풀고 풀어서 답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언어영역 점수는 떨어졌고 수리탐구 1은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수학은 배신하는 법이 없어 믿음이 가는 과목이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잡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어 개운하기도 했다.
국어 선생님은 연극부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래서 목소리에 그렇게 민감하셨던 걸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하나의 입장만 생각하면 안 되니까. 적어도 교사의 자리에서는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목소리가 작은 아이들을 만날 때면 언제든 그 시간이 돌아와서 나를 깨우곤 했다. 목소리가 작은 아이를 만나면, 고개를 더욱 많이 끄덕이며 듣는 행위에 몰입을 하려 한다.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선생님 앞에서는 더 큰 목소리로 수다쟁이가 되고 싶을 것만 같다. 언제나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누군가 나의 약함을 그렇게 지지해준다면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선생님이,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작은 슬픔은 지우려다 되려 번지기 일쑤였다. 어른이 되고도 안고 있는 어떤 물방울들은 슬프기도 하고, 때론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기도 했다.
이제 내가 그때의 국어 선생님만큼의 나이가 되어버렸으니, 대신 전해줘야지. 두 입꼬리를 균형을 맞춰 올리며 활짝 웃어줄 테다. 그 고등학생 소녀가 듣고 싶었던 말.
"정말 준비 많이 했구나. 잘했어.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