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록들

찰나의 마음,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오늘을 쓰다듬으며.

by 예담


꾸준히 행복할 순 없으나, 꾸준히 행복을 기록할 순 있다.

찰나의 마음을 귀히 여기며 삶을 음미하고 싶기에 매일의 짧은 기록들을 모아 브런치에도 남겨두려 한다.




2021.02.26 둘째, 엄마의 마음


아! 아들아 어물쩍 1학년은 어디 가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봄과 함께 2학년이라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다시 처음처럼 학교 갈 준비를 해보세.

봄꽃처럼 터져 나오는 하품도 달아 보이고, 엉덩이는 들썩들썩 복숭아 같으니 콩깍지 사랑은 바다보다 깊지.





2021.02.23 아이의 마음


스케치북을 이어 붙인 그림으로 태어난 종이인형들은 자란다.

꼬맹이였을 땐 스케치북 한 장에 그리던 종이인형들은 아이들을 따라 자라기 시작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이었나, 아무튼 두장을 합쳐서 그리던 세 살배기의 종이인형은 다시 세장을 붙여

키가 커졌다. 왜 자꾸만 종이인형을 끝도 없이 만드는 건지, 키는 왜 계속 커지는 건지 묻자, 아이들이 말하길! "엄마,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이야. 예림이고 바다, 시우, 시은이, 준, 도진, 유리 (또 뭐라더라...)."

아무튼 잘 키우라고 웃으며 매만졌던 종이 아이들은 매일 밤 장난 감방에 나란히 누워 잔다.

"그 방은 밤에 보일러 안 틀어서 찬기가 도는데..."라며 내가 연기를 하자 아이들은 이런 실없는 사람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엄마! 왜 그래에 이건 종이인형들이잖아!! "


당했다! 빙구 같은 엄마


온이가 어느 날 잠들기 전에 물었다. "엄마 나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기 동생 내가 잘 돌봐줄게"

그러자 담이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대꾸한다. "야! 안돼! 엄마 그럼 배 자른데 한번 더 잘라야 되는데 그럼 세 번째라고! 아파서 절대 안 돼. 그리고 입덧도 힘들고 너는 남자라서 모르겠지만. 동생은 안돼! " 야무지게 말하곤 다시 이불을 끌어당기며 입을 앙다무는 내 아기. 푸하하하. 빵 터져서 웃다가 찡하기도 하고, 같이 목욕하며 보았을 배에 남은 자국이, 딸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다시 둘이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 나눠야겠다 싶었다. 엄마는 괜찮았다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아픔보단 감동이었다고. 그럼에도 너는 엄마는 되지 말고 너의 생을 살았으면. 사랑 없이도 어디든 가벼이 걷고, 언제든 충만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혹 그렇지 않은 날도 괜찮아. 엄마랑 맥주나 한잔해!







2021.02.23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맞은 저녁시간에, 허둥지둥 식사 준비를 하며 지친 마음이 든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식사의 질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들었고, 마음이 하루의 무게에 젖어버린 기분이었다. 오롯한 나의 시간이 주어지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야말로 (희성 도련님의 말처럼) 무용한 일들을. "나는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그리고 그는 소란스러운 날들 속에서 가만히 (무용해 보이는) 글을 쓰고, 결국은 찬란한 유용이 되어버리고 말았음을 진작에 알았을까. (미스터 썬샤인 드라마에서 김희성 도련님을 좋아했음.) 아아. 산으로 간다. 글이. 또.


바쁜 하루를 보낼 때 그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영양가를 생각하며 갖가지 반찬을 사고, 메인 음식은 시간을 쪼개어 만들며 쓴웃음을 지을 때가 있었다. 보람되었지만 고되었던 마음과 마음이 교차했던 순간들. 어쩌면 그런 무용한 일들을 한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만들고 품을 내어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내 어깨를, 마음을, 뭉쳤던 그 무언가를 풀어주고 있다. 많이 가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덜 가지고 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택하고 싶다. 대신에 작은 것으로 깊은 무엇을 만드는 기쁨. 소박한 사치를 누리고 싶다.


집 앞에 빵집을 가는 대신, 손반죽을 하고(반죽기, 거품기 없음.) 발효를 반복하며 느리게 빵을 굽는 수고를 좋아하고, 메인 음식을 만들고 곁들일 한두 가지 반찬을 그때그때 만들어 먹고 남김없이 치우며 가능한 밑반찬을 두지 않는 간결한 패턴을 즐긴다. 소소한 일들도 품을 들이면 귀해지고, 작은 기쁨이 주는 행복이란 때론 예상을 뛰어넘어서, 그 기운으로 더 많은 것을 하고 함께 나눌 수 있음을 안다. 다만, 맥주는 바쁘게 흘렀던 하루의 끝에 마셔야 가장 꿀맛이다! (쨍한 여행지의 한낮에 마시는 맥주는 천국의 맛이고.)

쉴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은, 일을 마친 뒤 숨 돌리며 앉아 꺼내는 맥주 원샷이지!

그 꿀맛은 하루를 빼곡히 보낸 이들에게, 구원의 종 같은 것.






2021.02.20 베이킹, 시나몬롤


우여곡절 끝에 시나몬롤 망... 꽃 모양은 역시나 타버렸고 (설탕과 시나몬 파우더가 묻어나는 부분이 위로 향해서 오븐의 상하 온도차 때문에 그런 듯하다.) 나머지도 살짝씩 탄기가 있다. 시나몬 파우더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더 꼼꼼히 돌돌 말아야 했음을. (또르르) 실패했지만 웃어야지. 엄마는 실수왕인데 도전도 잘한다고 은근히 흘려야지. (안 듣고 있니?)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너무 맛있다고 한다. 탄 부분은 뜯어내 버리고, 예쁜 건 새꾸들 꺼 !







2021.02.19 파인애플 파운드


오늘은 온라인 종업식을 했다. 아이들에게 그간 수고 많았다고 등을 토닥여주었더니 씨익 웃는다.

학습에 결손은 있었겠지만, 생존에 대한 - 공존과 일상의 귀함에 대한 큰 배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잃은 것과 보이지 않는 얻은 것은 언제든 지나 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함께라서 좋았어.

아옹다옹해도 한결같이 붙어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놀 궁리를 하는 너희들을 보는 것도 행복했지.

그렇게 스스로 지어낸 놀이가 수없이 많았던 한해. 결핍 속에 싹튼 내구력을 믿어 의심치 않아.

새콤달콤한 파인애플 파이를 후다닥 구워서 축하를 전하며, 파인애플의 맛처럼 마음도 개운해지길 바랐다.







2021.02.14 아이의 마음, 일곱 살의 글


노트 정리하던 중 발견! 3년 전, 일곱 살 때 우리 담이는 빛이 되고 싶었구나.

그래서 자꾸만 반짝반짝 빛났구나.








2021.02.10 호두파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호두파이를 구웠다. 도착할 시간쯤 되면 적당히 식어서 풍미가 올라오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아들의 표정을 떠올리다가, 웃음이 나기도 하고. 끓는 물에 데친 호두를 오븐에 바싹하게 구워 시나몬 파우더 가득 필링을 만들어 코팅시키고, 파이 반죽은 바삭하게 결이 살아있도록 반죽의 농도를 조절했다. 휴지 시켜둔 반죽을 꺼내어 파이 틀에 넣고 포크로 콕콕 구멍을 내어주고 필링을 넣고 구우면 끝!


호두파이는 애플파이보다 훨씬 간단하고 덜 달고 묵직해서 좋다. 빵 세상의 장군 같달까. 뭔가 책임감이 가득한, 건강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온라인 수업 중이었던 딸이 파이 한 조각을 맛보곤 눈을 크게 뜨고 "엄마 너무 맛있어!"라고 소리를 높여줬다. 주 2회 등교로 인해, 두 아이는 학교 가는 날이 다르다. 아침이면 한 명은 학교로, 한 명은 노트북 앞으로 번갈아가며 시작되는 하루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되려 집중이 잘 되기도 하고, 나름의 리듬을 찾아간다. 언젠가 온이가 물었었다. "엄마는 공유가 멋져 아빠가 더 멋져?" 눈 질끈 감고 "당연히 아빠지!"라고 했지만 크면서 눈치도 같이 자라고 있는 아이의 미덥지 않아 하는 뒤끝이 느껴졌다.

그 뒤로 공유는 공유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는 마음이 다른 거야. 온아.


그러니까 이를테면 호두파이를 구워주는 마음 같은 것.

호두파이에 설탕을 덜 넣고 호두를 깨끗이 데치며 전처리하는 마음 같은 것.








2021.01.13 아이의 소설 , 차에서 내리는데 한참 걸림


묘사의 달인

뭐랄까, 굉장히 세심하게 눈에 그려지듯 글을 쓴다.

행간도 좀 두고, 띄어쓰기 간격도 넓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내뱉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시간을 두고 스스로 성장해 나갈 것임을 알기 때문에.









2021.01.07 오늘의 바다. 행복은 지금 여기


오늘은 1, 2학년 등교 수업하는 날(아직 방학 전) 두껍게 옷을 여미고 막 나가려는데, 한파로 인해 원격수업을 하기로 한다는 선생님의 메시지를 받는다. 아! 잘됐다 싶어 모두 점퍼 입은 채로 문을 싹 열고 환기를 했다.

찬바람에 정신이 맑아지고 개운한 공기로 집을 씻으니 습도가 급격히 낮아지네. 문 닫고 가습기 온.

한파와 강풍 조심하라는 안내 문자가 몇 번이나 띵똥 울리건만, 지금 여긴 이렇게나 반짝반짝

눈이 부시게 빛나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바다는 사람을 느긋하고 차분하게 만든다.









#리드미컬하게

새로이 시작할 뜨개실이 마음에 쏙 들어 아침부터 기분이 몽글몽글.

실을 만지작거리며 완성될 가방을 두둥실 그려보고, 혼자 히죽대다 고구마를 구웠다.

뜨끈뜨끈한 군고구마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흐린 겨울날. 비가 온다고 하여 빗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기쁨이 리드미컬한 하루를 차곡차곡 보내다 보면 마음의 박자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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