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인도는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바닥밖에 남지 않은 날 것의 본질 그 자체를 오롯이 감당해 내는 시간.
여행이 길어지자 나는 점점 의욕을 잃었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구태여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둘러 볼만한 것들을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여행이 주는 감상, 교훈 따위는 뒤로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래도 처음 왔으니 유명한 곳들은 다 가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억지로 끌고 오던 내 의지도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이 나버렸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 사는 모습들 속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흥미도,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눈만 끔뻑이며 독실에 갇혀 시간을 축내는 사형수처럼 나는 나를 스스로 숙소에 가둬놓고 귀국할 날만 세면서 시간을 축내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끔찍이도 싫었다. 오랜 여행의 좋은 명분이 되어준 유튜브를 위해 콘텐츠를 구상하고 편집이라도 해야 함을 알면서도 거지 같은 몸뚱이는 내 머리가 내린 이성적인 판단을 따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내 몸이 내 머릴 상대로 보이콧을 선언한 셈이었다. 그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한심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디 가서 아는 척, 잘하는 척, 완벽한 척 가증을 떠는 내가 고작 이 정도뿐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한심함 속에서 또 하나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나의 ‘나약함’이었다. 약 일주일간의 긴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새로운 도시로의 탐험을 중지하고 내가 편안함을 느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항상 독립적이고 용감하다는 소릴 듣는 내가 정녕 이렇게나 나약한 사람이었던가.
맞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던 거다. 때로는 한없이 게으르고 한없이 의존적이며 한없이 나약한 존재. 그것 또한 나의 본질인 것이다. 깊은 바닥, 내면의 나를 마주한 나는 이제 나에게 측은함의 감정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은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와 평생을 함께할 또 다른 ‘나’라는 동반자에게 바치는 가장 긍정적인 평가임에 의심이 없다.
나는 발가벗은 나의 본질을 오롯이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것조차 내가 사랑해야 하는 ‘나’ 임을 알기에, 나는 숙명처럼 그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