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을 좋아하진 않지만 유독 캄보디아에 대한 인식은 첫인상의 그 껄끄러움이 끝날 때까지 좋게 바뀔 수가 없었다. 감시를 피해 캄보디아에까지 숨어 들어와 마약과 성매매를 일삼는 외국인들과 그들의 지갑과 핸드폰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드글대는 프놈펜에서 나는 학을 떼고 곧장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했던 한식 만찬,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던 비를 피해 들어간 펍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던 추억은 즐거웠지만 어딜 가나 징그럽게 따라붙던 툭툭 기사들과 해외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겪어본 인종차별은 이곳에서의 좋은 기억을 덮고 불쾌한 감정만 나에게 남겨주었었다.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역시 웅장하고 멋있긴 했지만 달려드는 모기떼와 작열하는 태양이 남긴 고통이 더 크게 남았었다. 비자기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나는 캄보디아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이 나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던 거였다.
캄보디아 다음으로 갈 예정인 나라는 바로 라오스였다. 그곳에도 나의 대학 동창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특히 라오스인인 랏다는 학교를 다니던 내내 나와 거의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것도 모자라 방학 땐 라오스에 있는 자기 집에 초대했을 정도로 나와 절친한 사이였다. 약 3년 만에 다시 라오스에 갈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혼자라는 점과 코로나19로 인해 기름값과 환율이 치솟아 불안정한 경제상황이었다는 것이 많이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어느 나라라고 받지 않았겠냐만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경제 규모가 약소한 라오스는 그 휘청거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컸다. 뉴스는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국경을 넘어 기름을 사다가 적발된 사람들의 이야기 등 하루하루 나빠져가는 라오스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국에 그곳을 가도 될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랏다에게 라오스의 현재 상황이 걱정되어 가기가 망설여진다고 얘길 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런 문제없다며 괜한 걱정 말고 조심히 오라는 거였다. 아, 맞다. 경제상황이 나빠서 먹고살기 팍팍해지는 건 서민들의 문제였지. 라오스의 서울 격인 비엔티안과 부산 격인 팍세에 집이 두 채나 있고, 밥 해주고 아이 키워주는 유모와 유모의 식구들까지 거둬가며 사는 그녀에게 내가 괜한 걸 물어본 사람이 된 것 같아 뻘쭘했다. 어찌 됐든 그녀의 확답도 들었으니 나는 바로 라오스로 향하는 버스 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라오스 팍세까지 직통으로 가는 버스 편이 상당히 다양했던 것 같은데 물어보는 여행사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금은 수요가 충분치 않아서 그 버스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대안으로 내놓은 방법은 스텅트렝이라는 라오스 국경에 위치한 도시까지 가서 다시 라오스로 넘어가는 교통편을 찾으라는 거였다. 그래서 스텅트렝까지 가는 버스의 가격은 얼마냐고 물어보니 16달러라고 했다. 나는 그 가격조차도 비싸게 느껴져서 근처 모든 여행사들에 발품을 팔며 가격을 계속 물어봤는데, 간혹 가다 12달러를 부르는 곳에 예약을 하겠다고 하면 버스회사에 확인 전화를 하고 나서 모두 16달러로 가격이 올랐다고 했다. 캄보디아 역시 유가와 환율이 안정적이지 않다 보니 하루아침에 가격이 30%도 넘게 오르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쩌다 직통버스 티켓을 판매하는 여행사를 딱 한 곳 발견해서 조금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예약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남은 한 자리를 누군가 가로채 또 눈앞에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낮부터 시작했던 발품 팔기는 깜깜한 저녁이 되어도 결국 끝내 지를 못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일 이 나라를 뜨고 싶은데 상황이 점점 하루 더 있게 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반쯤 포기한 상태로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데 버스회사인지 택배회사인지 알 수 없는 사무실 한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별 기대 없이 스텅트렝까지 가는 차가 있냐고 물었는데, 그곳에서 13.5달러에 스텅트렝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는 거였다.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아침에 라오스 국경도시까지 가는 차편을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나와 같은 행선지인 것 같아 보이는 외국인 커플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일행이 생기면 차비를 아낄 수 있으니 그들이 제발 라오스로 가는 친구들이기를 바라며 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와 물류를 함께 하던 그 회사는 좌석에는 사람들을, 빈자리에는 박스 같은 큰 물건들을 싣더니 이내 출발했다. 버스는 열심히 달리더니 도심을 벗어나 이내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전혀 포장되지 않은 캄보디아의 시골길 흙바닥 위의 자갈들 때문에 버스는 끊임없이 덜덜 떨리고, 쿵쿵 튀고, 좌우로 흔들리다 못해 미친것처럼 움직였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인 것 같아 떠올려보니 옛날에 월미도에서 디스코팡팡을 탔을 때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5시간 동안 하도 앞뒤좌우로 흔들리고 쿵쿵대느라 차에서 내릴 땐 엉덩이가 저릿저릿할 지경이었다.
기나긴 고난의 시간을 지나 나는 겨우 스텅트렝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 함께 도착한 외국인 커플에게 말을 걸어보니 운이 좋게도 프랑스에서 온 그들 역시 라오스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목적지가 같으니 함께 시내로 이동해 그다음 교통편을 찾아보기로 했다. 툭툭 기사의 추천을 받아 도착한 여행사에서는 오늘 팍세까지 가는 버스는 이미 출발해서 없고 내일 출발하는 버스만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버스는 가격이 인당 27달러로 너무 비쌌다. 우리는 걸어서 직접 국경을 넘을 테니 국경까지만 가는 차는 없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인당 10달러, 총 30달러면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국경을 넘은 이후엔 교통편이나 숙박까지 모두 알아서 다시 찾아야 할 텐데 분명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면서 겁을 주는 거였다. 나야 항상 근자감이 넘친다지만 오늘 처음 만난 그들 역시 보통 배짱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30달러를 내고 국경으로 가는 툭툭을 타기로 했다.
구글맵에서는 1시간 남짓 걸린다던 국경은 최고속도가 40km 정도밖에 못 미치는 툭툭를 타고 가려니 2시간 가까이가 걸렸다. 국경까지 가는 길도 모두 흙바닥이라서 양옆으로 뻥 뚫린 툭툭의 구조상 가는 내내 그 모든 흙먼지를 우리가 다 들이마셔야 했다. 중간중간 돌부리에 걸려 덜컹대던 툭툭에서 내 배낭이 떨어져 길바닥을 뒹굴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흙먼지바람을 하도 맞아서 헤어젤을 바른 것처럼 머리가 굳어버린 것도 모자라 얼굴을 한 번씩 쓸 때마다 누런 흙먼지가 손에 묻어 나왔다. 이게 참 무슨 사서 하는 고생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국경에 도착한 우리는 뜨거운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뚜벅뚜벅 사무소를 향해 걸어 나갔다. 블로그 글들을 보니 동남아국가들은 육로로 국경을 넘을 때 2달러씩 검은돈 개념의 수수료를 요구한다던데,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동안 그런 요구가 없길래 '아, 이제 많이 바뀌었나 보구나.' 했던 내 생각은 라오스 국경에 도착하자마자 깨어져버렸다. 한가롭게 늘어져있는 고양이들처럼 바깥에서 동료들과 수다나 떨며 시간을 보내던 라오스 출입국관리 사무소 직원들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우리를 보더니 느릿느릿 본인들의 업무 자리로 복귀하는 시늉을 했다. 성의 없이 내 여권을 받아 들고 대충 훑어보던 직원은 이내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투딸라"
아, 결국 오고야 말았구나. 나는 그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아들었으면서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액션을 취하자 그는 답답했는지 "스탬프 받고 싶으면 2달러 내."라면서 친절히 영어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한국어로 답을 하면서 영어도 안 통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내 얄팍한 연기에 쉽게 넘어갈 만큼 그들의 고집은 나약하지 않았다. 나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그 윗 직급처럼 보이는 사람이 와서 또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대한민국의 최 씨 고집 역시 그 정도로 꺾일 만큼 만만하진 않았다. 나는 "네가 하는 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라면서 "저기 가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불러."라는 식으로 단어 나열식 영어를 내뱉고 뒤쪽에 위치한 난간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충 "야 쟤 보통 꼴통 아닌 것 같은데?" 같은 이야기들을 했을 것 같았다.
사실 3천 원 남짓한 2달러라는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땐 그들이 요구하는 이 돈이 정당한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상한 오기 같은 게 생겼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 돈을 주게 되면 이후로 오는 한국인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그 돈을 요구할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그리고 이렇게 정식적인 루트가 아닌 곳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정당하고 깨끗하게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내 친한 친구 랏다가 들으면 서운할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잘 사는 사람 주머니만 불려주는 일은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하나도 돕고 싶지가 않았다. 차라리 그들이 빈민계층에게 기부하는 돈이라고 설명을 했다면 모른 척 속아 넘어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외국인을 봉으로 보고 뻔뻔하게 구걸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역겨워서 돕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구차한 핑계를 늘어놓으며 끝까지 2달러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럼 돈을 낼 테니까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내 사소한 요구도 거절했다. 그들이 돈을 요구하는 목적이 더 확실해지자 나 또한 더 오기가 생겼다. 나는 난간에서 벌렁 누워있다가 20분에 한 번 꼴로 그들에게 가서 빨리 도장을 찍으라며 으름장을 놨다. 나와 함께였던 프랑스커플의 상황은 나보다도 더 심했다.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한국인과는 달리 프랑스인인 그 둘은 도착비자를 신청해야 했는데, 대사관 사이트에 나와있던 금액보다 인당 10달러는 족히 넘는 금액을 추가로 더 요구했던 것이었다. 내가 난간 쪽에서 벌렁 나자빠져있을 때 그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타협 없이 시간만 속절없이 계속 흐르자 그냥 요구하는 돈을 내고 입국하는 쪽으로 의견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경찰을 부르라고 악을 쓰기도 하고 가방을 메고 여권 없이 국경 안쪽으로 가는 듯한 시늉까지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그곳에서 버티고 있은지 한 두세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가방과 함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약 100m쯤 떨어진 곳에 앉아있었다. 국경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툭툭 기사들이 이따금씩 내게 와서 왜 여기 길바닥에 앉아있냐고 상황을 묻곤 했다. "너희들이 너희 할 일을 안 한 거니 너희 잘못이다."라는 말을 내뱉고 당당하게 가방 메고 사무소를 벗어나긴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나를 막지도, 잡지도 않아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앉아있는 중이라고 나는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패는 마지막까지 다 보여줬는데 이것도 안 통하면 정말 어쩌지...' 하며 속으로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데 멀리서 직원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쯤 되자 나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들이 나를 먼저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아서 한껏 삐진 표정을 하고 사무소로 돌아갔다.
대한민국 최 씨 고집을 제대로 맛본 사무소 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스탬프가 찍힌 여권을 나에게 돌려주었다. 결국 내가 [2달러 안 내고 라오스 국경 넘기] 미션을 성공한 것이었다. 프랑스 커플들은 처음에 말한 금액에서 조금 깎은 금액으로 결국 합의를 봤다고 했다.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라오스의 국경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함께 넘었다.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잠시, 오늘 밤 묵을 곳을 찾아야 한다는 다음 미션 때문에 우리는 지체할 시간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행히 아까 내게 와서 말을 걸던 툭툭기사가 시판돈(4000개의 섬)으로 가는 보트를 연결시켜 줄 수 있다고 했다. 서두르면 오늘 안에 이동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바로 그의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