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4000개의 섬마을에서 다시 찾은 동심

by 최예또

기사아저씨는 국경 근처에서 우리를 태워 근처 반나카상이라는 마을로 향해 달리다가 별안간 ATM기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가 가는 길에 있는 마지막 ATM기이니 필요하면 여기서 돈을 뽑으라고 알려주는 거였다. 프랑스 커플과 우리는 모두 내려서 한 명씩 인출을 시도해 보았는데 현금이 부족했던 건지 기계에 이상이 있던 건지 모두 현금 인출에 실패를 하고야 말았다. 당황하던 우리를 보더니 아저씨는 가지고 있는 달러가 있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데려다주는 수상한 사설환전소에서 가지고 있던 달러를 라오스 돈인 낍으로 환전할 수밖에 없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고 날씨마저 운을 따라주지 않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돈뎃섬까지 가는 보트가 굉장히 작아서 비와 바람이 거센 날은 위험할 수 있어 강을 건널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선착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비바람이 잦아들기만을 하늘에 빌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30여분, 조금 잦아진 비바람에 아저씨는 보트가 준비되었다고 말해주었고 우리는 그 보트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보트는 생각보다 폭이 좁고 앞뒤로 길어서 우리는 한 명씩 일렬종대로 앉아야 했다. 거센 물살을 만날 때마다 보트는 좌우로 크게 요동치며 우리에게까지 거세게 물이 튀곤 했는데 나는 여기에 빠지면 전자기기를 먼저 건져달라고 해야 할지 여권을 먼저 건져달라고 해야 할지 순간 그런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수영을 전혀 못하니 내 물건 챙기기 이전에 내 목숨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위아래로 들이치는 물들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서운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서 나는 내 가방을 꼭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속으로 무교인 내가 있는 신 없는 신 다 불러가며 '제발 여기서 죽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계속 빌면서.


여러 역경을 헤치고 도달한 돈뎃섬의 선착장 근처엔 몇 안 되는 현지인들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인지 섬 전체가 어두컴컴했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만 조금 밝게 조명을 켜고 있던 것 같았다. 우리는 당장 오늘 묵을 숙소를 구하는 일이 시급했기에 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방이 있냐고 물었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던 현지인이 방을 보여주겠다며 따라오라기에 같이 갔더니 방 컨디션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는데 우리가 정해놓은 1박 맥시멈 금액인 10달러를 넘는 금액이라서 망설여졌다. 오늘 하루종일 고생하느라 힘이 들 법한데도 그때의 우리는 이 정도 힘듦에 굴복하기엔 젊었었는지 짧은 상의 끝에 발품을 더 팔아보자고 합의를 했다. 우리는 다시 가방을 들쳐메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로등도 없는 길을 핸드폰 손전등 불빛에 의존하며 걷고 있으면 간혹 가다 하나씩 불이 들어와 있는 건물들이나 지나가는 행인들을 마주칠 수가 있었다. 한 번씩 물어보면 괜찮은 가격대의 방이 걸리기도 했는데 비가 많이 오던 탓에 정전이 되어 방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든가, 정리가 되지 않아 손님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결국 문 앞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결국 우리는 갈림길 앞에서 각자 다른 길로 가서 숙소를 알아보고, 헤어졌던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 프랑스 커플과 나는 각각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 따라 10분쯤 걷다가 발견한 1박에 8달러짜리 방갈로에 나는 우선 내 짐을 풀고 다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을씨년스러운 비 오는 시골길은 아무리 간이 큰 나라도 혼자 걷는다는 게 퍽 무서웠다. 나는 길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쫄아있는 게 괜히 머쓱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노래를 불렀다. 안 무서운 척 최대한 덤덤하게 내가 왔던 길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돌아갔는데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곳에 그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핸드폰은 유심칩을 개통하지 않아 연락의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대로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사람 많은 광장에서 잡고 있던 엄마 손을 놓쳐버린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먼 곳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작게나마 느껴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소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헤어진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초면의 한 커플이 그들과 함께 그곳에 앉아있었다. 밖에서 간판을 보니 그곳은 게스트 하우스였다. 그들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한참을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자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쉬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면서 옆에 앉아있는 커플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이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 중인 슬로바키아에서 온 부부라고 했다. 그들은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프랑스 커플을 통해 다 들었다면서 오늘 하루 정말 많은 일을 겪느라 고생했다며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오늘 하루종일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나는 혹시 여기에 아무거나 먹을 것을 조금 살 수 있냐고 물었고 그들은 내게 메뉴판을 주면서 원하는 메뉴가 있다면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메뉴판을 오래 읽고 말 것도 없었다. 쫄딱 비까지 맞고 고생한 나에겐 쌀국수국물 한 모금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다.




다음 날 나는 나 홀로 묵었던 방갈로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프랑스 커플이 묵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방을 옮겼다. 그곳의 호스트들은 아침식사를 마친 후 티타임에 우리 모두를 초대했는데 그들을 통해 라오스에 대한 이야기와 특히 이곳, 시판돈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라오어로 시판은 4000, 돈은 섬이라는 뜻이므로 시판돈은 4000개의 섬이라는 뜻이 되는데,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가로지르는 메콩강 하류부근에 실제로 섬들이 4000개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중에 특히 유명한 돈뎃과 돈콘은 4000개의 섬들 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면적이 커서 관광지로 발달하게 된 곳이라고도 귀띔해 주었다. 원래는 두 섬을 이동하려면 다른 섬들처럼 물을 건너야 했는데, 약 10년 전에 두 섬을 잇는 다리가 건설되어 이제는 육로로도 어렵지 않게 왔다 갔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런 설명과 함께 알아보기 쉽도록 우리에게 간단한 약도를 그려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돈뎃, 돈콘 투어에 나섰다. 어제저녁에 진탕 내린 비로 중간중간 질퍽거리는 흙길을 지나는 일은 꽤 성가셨지만, 깨끗한 공기와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여기까지 오느라 겪었던 모든 역경이 다 용서되는 기분이었다. 마을 중간에 있던 학교를 지날 땐 꼬맹이들이 먼저 우리를 향해 "싸바이디“라며 인사를 건넸다. 한참을 달리느라 목이 마를 땐 길가에서 파는 시원한 코코넛을 하나 사서 프랑스 커플과 나눠먹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저녁식사 때엔 새로운 손님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옆 동네도 아니고 옆 섬에서 살고 있는 알렉스라고 소개했다. 빡빡 민 헤어스타일에 상반되는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독특한 스타일의 그도 프랑스에서 왔다고 했는데 라오스, 그것도 이 시판돈에서 자리를 잡고 산 지는 2년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원래는 프랑스에서 직업군인으로 오랜 시간을 근무했었다는 그는 우연히 여행 목적으로 라오스에 왔다가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이곳에 발이 묶여버렸고, 휴양을 목적으로 찾은 이곳 시판돈의 매력에 빠져 아예 눌러앉아 살게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섬이 바로 저 앞이니 내일 할 일 없으면 놀러 오라며 우리를 초대했다.


다음 날 오후 느지막이 우리를 데리러 온 알렉스의 보트를 타고 우리는 알렉스의 섬으로 향했다. 그의 섬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없는 것 없는, 완벽한 그만을 위한 작은 왕궁이었다. 본인 손으로 뚝딱뚝딱 지었다는 집 안엔 널따란 침대와 컴퓨터까지 구비되어 있었고 작은 주방과 거실도 우리 같은 손님이 놀러 와도 수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알렉스가 끓여준 레몬그라스티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뒤늦게 합류한 호스트들과 함께 알렉스가 만든 게임을 했다. '몰키몰키'라는 이름의 그 게임은 나무 도막을 기준점에 가장 가깝게 던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으로 상당히 단순한 규칙이었지만 점수를 내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게임이었다. 다 같이 그 게임을 하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다 큰 성인들이 이렇게 순수하게 놀아본 게 언제였더라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심 같은 건 이미 한참 전에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나에게도 순수한 면이 남아있구나 싶어서 참 신기했다.


우리는 돈뎃에서 3박을 하고 다시 이동을 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겨버린 이곳에선 우리가 귀한 손님이었던지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호스트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돌아오고 싶을 땐 언제든 돌아오라며 떠나려는 우리의 손에 손수 만든 간식과 차를 기념품으로 쥐어주었다. 보트를 타고 떠나는 동안에도 그들은 한참을 그곳에 서서 우리에게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가 그곳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4000개의 섬만큼이나 빛나던 4000개의 동심이 있던 그곳을. 그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