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헤어진 후로 나는 줄곧 새로 둥지를 튼 호스텔에 박혀서 지냈다. 그도 치앙마이로 돌아온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괜히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그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활동적인 일을 할 정도로 내 컨디션이 좋지도 못했다. 나는 밤이면 우리의 지난 대화기록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그가 그리워서 힘들어했고 낮이면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물가도 저렴한 이곳을 그 한 사람 때문에 떠나는 일은 내가 괜히 지는 것 같아서 또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했다. 이 모든 게 쉽게 사랑에 빠진 대가로 받아야 하는 고통이라면 나는 달게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나의 큰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언젠가부터 명치 쪽이 답답한 느낌이 들면서 속이 메스껍더니 간혹 가다 숨 쉬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증상이 생긴 나는 공황장애인가 싶어 검색을 해봤는데 화병 증세와 똑같은 거였다. 세상에. 내가 화병에 다 걸리다니. 의지할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국에서 나를 아껴주는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은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사실 내 예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던 거였다. 이 증상이 나아지기 위해 나는 억지로 그 일을 잊으려고 하기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스리는 일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나는 우선 돈을 아끼기 위해 머무르고 있었던 1박에 3700원짜리 야외 모기장 숙소를 박차고 나왔다.
에어비앤비에서 1인실 숙소를 결제한 건 사실 충동이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은 먹어봤자 어차피 배가 꺼지고 나면 그만이고, 쇼핑을 하며 기분을 풀기엔 어차피 이동할 땐 다 짐이 되고, 이것저것 다 제쳐놓다 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기분을 풀기 위해 할만한 일은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나만 쓸 수 있는 공간에서 조용히 쉬는 일인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오토바이 택시를 불러서 새 숙소로 이동했다.
그곳이라고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조금 더 넓어진 침대에서 다른 사람의 코 고는 소리 없이 혼자 잠드는 일이라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밀린 영상 편집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했고, 편의점에서 야무지게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워놓은 다음에 달달한 걸 먹어서라도 기분을 좋게 만드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기분이 울적할 땐 노래를 틀어놓고 마음껏 막춤을 췄고, 밀린 빨래를 하고 새로운 동네에서 맛집도 찾으면서 기분을 환기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게 지낸 지 3일째 되었을 무렵, 나는 결국 항복을 하고야 말았다. 빌어먹을 이 도시를 떠나지 않는 한 그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내게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푸껫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꽤나 알려진 휴양지 중 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날 바닷물은 칙칙하고 줄줄이 폐업해서 방치된 가게들로 분위기도 뒤숭숭해서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다.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펍 거리에서는 대낮부터 술을 퍼먹고 있는 얼굴이 벌건 외국인들과 해피아워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하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여자애와 인도에서 온 요가쟁이 남자도 새벽 늦게까지 술 먹고 떠들며 밉상짓을 해대는 통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최악이었다. 나는 미련 없이 다음 도시인 끄라비로 향했다.
끄라비는 가는 길부터가 절경의 연속이었다. 해안가를 끼고 키 큰 기암괴석들이 쭉 늘어져 있는 풍경을 보느라 가는 길이 지루한지도 몰랐다. 호스텔에서 새로 사귄 독일인 친구 리아는 유쾌했다. 그녀는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일들을 가만히 듣더니 딱 한 마디로 그를 정의해 주었다. "나잇값 더럽게 못하는 놈." 간지러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를 안주삼아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면서 함께 팟타이를 먹었다.
끄라비는 확실히 매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신호등마다 하와이룩으로 옷을 맞춰 입은 고릴라 모형이 있는 것도 귀여웠고 저렴하면서 깨끗한 호스텔은 항상 에어컨을 세게 틀어줘서 지내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여행유튜버라는 명분 하에 이 여행을 추진 중인 나는 이렇게 편하게만 지내면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어떤 콘텐츠로 영상을 찍을까 골똘하던 내 눈에 신박한 숙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에서부터 오가닉을 강조한 그 숙소는 호스트가 손수 지었다고 소개가 되어 있었다. 쿠킹클래스도 있어서 직접 태국 현지 요리를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이거다!' 싶었다.
집주인아저씨가 손수 지었다던 그 숙소는 말하자면 대나무 독채 방갈로였다. 번화가가 위치한 해변에서도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거쳐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풀어놓고 기르는 닭들은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뛰노느라 바빴고, 유일한 숙박객이었던 나는 갑자기 외딴섬에 떨어진듯한 고립감에 휩싸였다. 가장 가까운 슈퍼도 도보로 10분 이상은 걸어야 했고, 30분째 걸어도 흔한 식당 하나 나오지 않는 이상한 곳이었다. 배가 고파 먹을 걸 사러 떠났다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던 나는 겨우 하나 발견한 길거리 노점상에서 꼬치와 찰밥을 샀다. 돌아올 힘도 없어서 오는 길에 아무 데나 앉아 포장한 음식을 뜯었더니 어느새 냄새를 맡고 길개들이 몰려들었다. 내 배 채우기도 급급한데 또 혼자 먹기는 미안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개들도 한 입씩을 나누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주인아저씨께 쿠킹클래스를 예약하겠다고 했다. 무엇을 만들고 싶냐기에 태국식 매운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을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이따 저녁에 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두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잠시 후에 우리 가족이 일정이 있어 외출을 해야 하니 혹시 밖에 나가고 싶으면 자기 친구에게 미리 일러둘 테니 그에게 부탁하면 된다고 했다. 숙박 안에 해변가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서비스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터라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오후가 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자 나는 결국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배를 채웠다. 그릇을 다 비웠을 즈음 모르는 사람들이 이곳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집주인아저씨의 친구처럼 보이는 그들은 미리 얘기를 들었다는 듯 자연스레 나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자기들끼리 모여 카드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흥미를 잃은 나는 그들에게 해변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중 한 아저씨가 본인이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나섰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아저씨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그때까진 이상한 낌새가 전혀 없었던 그는 오토바이를 출발하면서부터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뒤에 앉은 나의 허벅다리를 주무르듯 만지기에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나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밀쳐냈는데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정지 신호에 걸릴 때마다 계속 그런 행동을 반복해서 시도하려는 게 보였다. 그 아저씨가 한 사소한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더니 내 머리를 아플 정도로 세게 치면서 바보라는듯이 놀리는 것도 기분이 너무 나빴다. 맘 같아선 돌아오는 길도 따로 오고 싶었는데 배달주문조차 받지 않는 외진 그곳에 가려는 툭툭기사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미 크게 상해버린 마음을 꾹 참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예약했던 쿠킹클래스를 취소하면서 이 아저씨의 만행에 대해 집주인아저씨께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가 싫어서 결국 함구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은 안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아저씨가 혹시라도 내게 보복을 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안 좋은 기분을 털어내려고 간 곳에서 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니 마음을 다잡기가 힘이 들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끄라비를 빠져나온 나는 결국 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항구도시, 수랏타니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