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걸음마 못하면 달리기도 못하나요?

by 최예또


태국 남부에는 유명한 섬 관광지들이 많았다. '섬'을 뜻하는 태국어인 '코(꼬)'라는 말로 시작하는 곳들인데, 대표적으로 코사무이, 코란, 코피피, 코팡안, 코따오 등이 있었다. 그중 내가 코팡안을 가장 먼저 가보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풀문파티 때문이었다.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형광색 물감을 얼굴과 몸에 칠하고 밝은 닭빛 아래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그 젊음의 축제가 나는 너무나도 궁금해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원체 작은 섬에 속하는 그곳은 평소엔 별 볼 일도 없는데 보름달이 뜨는 기간에만 숙박비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여태까지 태국여행을 하며 썼던 금액에 비하면 꽤 큰 지출인지라 나는 고민이 조금 되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숙소를 예약했다.


풀문파티 이틀 전에 코팡안에 도착한 나는 6인용 호스텔에서 아무런 친구도 사귈 수가 없었다. 모두들 낮부터 밖에서 무얼 하는지 숙소에는 룸메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탓이었다. 큰 기대를 안고 도착한 이곳에서 나 홀로 파티를 즐길 자신은 없어서 나는 처음으로 한국인 동행을 찾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몇 차례 검색을 하다 보니 나처럼 이 섬에 혼자 여행 온 몇 명의 한국인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저녁에 번개약속을 잡고 함께 술 한 잔을 하면서 친목을 다져보기로 했다.


나는 그 모임에서 나와 비슷하게 모험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민선언니를 사귈 수 있었다. 이직을 앞두고 짬을 내 혼자 여행을 왔다는 그녀는 체구는 작지만 표정이나 말투에서 당찬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여태까지 여행을 하며 있었던 일들, 그리고 걸어온 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고 내친김에 내일 일정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여태껏 항상 오토바이 뒷자리만 탔던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때가 기어코 온 것이다. 그녀 앞에서는 중국에서 유학할 때 전기스쿠터를 타던 경험이 있으니 나만 믿으라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사실은 운전대를 다시 잡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속으로는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오토바이 렌트 업체 앞에서 만난 우리는 떨리는 첫 라이딩을 시작했다. 처음 막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좌우로 휘청이는 게 영 불안하다 싶었는데, 조금 익숙해지니 옛날의 감각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코팡안 자체는 큰 섬이 아니라서 운전하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섬 가운데에 위치한 큰 산맥 때문에 언덕길의 경사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길었다. 하지만 뭉치면 강하다고 했던가. 혼자였다면 꽤 큰 이 언덕을 넘을지 말지 고민을 오래 했을 것 같은데 뒤에서 언니가 응원을 해주니 왠지 모를 힘이 솟았다. 우리 둘이 "영차, 영차"하며 힘을 모았던 탓인지 그 어떤 큰 언덕이 우리 앞길을 막아도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보틀비치 뷰포인트에서 넓고 푸르른 바다를 여한 없이 눈에 담았다. 그다음엔 근처 해변에서 여유롭게 해수욕을 즐겼다. 바다가 동해처럼 급격히 깊어지지 않고 한참을 걸어가도 정강이 수준으로 수심이 얕은 바다라서 수영을 못하는 나라도 둥실둥실 떠다닐 수가 있었다. 질리도록 놀다가 씻지도 않은 채로 해먹에 누워 바람결에 머리칼을 날렸다. 노곤노곤하게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시장에서 태국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해 질 녘 노을이 지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마셨다. 마지막으로 마을 입구 쪽에 위치한 옷가게에서 오늘 입을 형광색 나시티와 청반바지를 구입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우리는 숙소로 복귀해 재정비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자 해변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과 쿵쿵거리는 음악소리에 섬 자체가 시끌거렸다. 마을 곳곳에선 형광색 물감으로 얼굴이나 몸에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과 흥정을 하는 사람들의 신경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사람들 손에 플라스틱 물통이 걸려 있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태국산 위스키 쌤쏭과 콜라를 섞어서 바께쓰째로 마시는 것이 그곳의 문화였다. 클럽에서부터 밀려 나온 사람들은 정강이까지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속에서도 춤을 췄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다들 합의라도 본 듯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서 사람들을 등진채로 볼 일을 봤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또 그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노는 거였다.


민선언니와 나는 오늘 아침부터 강행했던 일정들 때문에 피곤함이 쌓이기도 했고, 그들처럼 만취해서 세상 아무 걱정 없이 한바탕 놀아버리는 일은 별로 내키지가 않아서 각자 맥주 한 병씩만 마신 상태로 해변을 거닐었다. 거의 맨 정신으로 술, 담배, 대마초에 쩌든 사람들이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쓰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지만 금세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일찍 숙소로 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벌써 '딱 5년만 젊었어도 쟤들처럼 놀텐데...'같은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게 서글펐다.




코팡안의 풀문파티를 뜨뜻미지근하게 즐긴 나는 다음 날 지체할새 없이 바로 코따오라는 섬으로 이동해야 했다. 코따오는 스쿠버다이빙으로 유명한 성지였는데, 전 세계에서 이집트 다음으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비용이 저렴하다고도 했다. 수영은커녕 개헤엄도 못 치는 나는 바다에 관련한 거라면 애초에 관심조차 주질 않았는데,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자기도 수영을 못하는데 오리발 끼면 누구든지 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나에게 오픈워터 자격증반을 적극 추천했다. 그의 그런 말에 마음이 동한 나는 구글링으로 발견한 강습료가 가장 저렴한 다이빙 센터에 홀린 듯이 강습을 예약했던 것이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다이빙 센터로 향한 나는 당당하게 내가 개헤엄도 못 치는 맥주병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자 줄곧 웃는 얼굴로 친절히 상담을 진행하던 강사님 표정이 갑자기 굳으며 그렇다면 나를 가르칠 수가 없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용기 있게 찾아왔는데 문전박대도 아니고 입수전박대는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자격증반을 등록한다고 해서 다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펀다이빙을 한 번 해보고 네가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차액을 결제한 후 자격증반으로 가고, 못하겠다 싶으면 그만 포기를 하라는 거였다.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첫날은 이론교육과 실내연습이라는 한국인 친구의 말에 마음 편히 센터로 향했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슈트를 입고 오리발을 낀 채로 바다 한복판에 도달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와 한 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력자들인지 알아서 척척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내가 다이빙의 ㄷ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다 한복판까지 나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영어로 듣는 이론수업은 집중해서 들으려고 해도 절반은 자꾸 한 귀로 흘러나갔다. 이미 낸 돈이 아까워서 여기서 안 하겠다고 무를 수도 없었다. 완전히 진퇴양난이었다.


호흡기와 벨트를 잡고 입수하는 강사님의 시범이 끝나고 나와 같은 팀인 한 쌍의 커플 역시 무사히 입수를 마치자 그들의 시선은 이제 나를 향하고 있었다. 튀어나올 것 같이 요동치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배의 끝으로 향하는데, 울렁거리는 파도가 꼭 내 뱃속 같았다. 수영을 할 줄 몰라 기본적으로 물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 상황에 침착해지는 게 제일 어려웠다. 어쩌면 붙잡고 징징거릴 친구나 동행이 없었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로 나는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사님의 설명도 분명 잘 들었고 시범도 여러 차례 다 봤으면서도 막상 내가 하려고 하니 몸이 내 마음처럼 컨트롤이 안 됐다. 숨을 들이마신 상태로 참았다가 바다로 입수해야 하는데 긴장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반대로 하는 바람에 나는 호흡기를 물었으면서도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물을 먹었다. 분명 구명조끼 때문에 몸이 저절로 위로 뜨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무거운 산소통이 내 몸을 심연으로 계속 끌어내리는 것 같아 나는 곧 죽을 사람처럼 사지를 버둥거렸다. 옆에서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진정시키던 강사님은 한참 뒤에야 침착해진 나를 보면서 똑바로 정신을 차리라며 일갈했다. 강사님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해서 나는 왜인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사님은 우리에게 자기가 신호할 때까지 스노클링을 물고 수영으로 이동을 하라고 했다. 난생처음 스노클링을 물어본 나는 어떻게 해야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허우적거리며 제자리에만 머물고 있는 나를 보더니 강사님은 말없이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강사님의 손을 잡고 강사님의 눈짓을 따라 천천히 오리발을 움직이며 헤엄을 쳤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의 망망대해에 수영도 못하는 내가 오늘 처음 본 사람들과 바다에 떠있다는 무서움도 잠시, '강사님의 이 손을 놓치지 않는 한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천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동을 한 곳에서 바닥까지 잠수한 다음 간단한 이론교육을 받았고 나는 첫 다이빙을 무사히 마친 채 다시 배 위로 복귀할 수가 있었다.


배 안에서 과자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다이빙 센터를 운영하는 강사님들과 방금 나의 손을 잡아준 강사님 모두 러시아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한창 전쟁 중인 상황 속에서 러시아에 대한 반감 때문에 매출에 지장이 있어 가격을 가장 저렴하게 책정했던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러시아식 교육은 정말 사람을 강하게 키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바다에 던져보고 감당이 가능하면 키워주겠다는 식의 교육이라니. 그리고 내가 그 시험 방식을 통과한 사람이라니. 오늘 하루쯤은 그 무모함과 대담함에 스스로 내 뽕에 좀 취해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