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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Oct 06. 2023

13) 파리의 노상에서 푸라그라 까기


 프랑스 파리, 원어로는 빠히에 가까운 그 세계적인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다. 유럽의 도시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탓도 있고 '프랑스 파리'라는 지명도가 가지는 기대감이 과하게 컸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한편 프랑스의 파리지앵에게 악명 높은 선입견 중 하나가 아마 관광객에게 불친절하다는 점일 텐데, 그 또한 실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겪어본 적은 없었다. 기대감과 걱정거리를 둘 다 빗나가 버렸다는 점에서 어쩌면 파리는 공평한 도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가 예약한 호스텔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야 했다. 구글맵을 보고 이동한 정류장에선 아무리 표지판을 읽어봐도 현금을 받는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표지판을 집중해서 읽던 그도 결국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엉겁결에 그 버스에 올라탔다.


 파리에 방금 도착한 내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현금뿐이어서 나는 기사님에게 가지고 있던 20유로를 내밀었다. 그런데 기사님은 내가 돈을 내든 말든 전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앞만 본 채로 운전을 하는 거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버스에 탄 승객들을 쳐다봤는데 역시 아무도 내 생황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머쓱해진 나는 돈을 다시 지갑에 넣고 슬금슬금 안쪽으로 이동을 했다. 그렇게 두세 정거장쯤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렸는데 그때까지도 아무도 나에게 돈을 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나중에 호스텔에 도착해서 검색해 보니 파리의 대중교통은 교통카드 혹은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핸드폰 소액결제만 가능한 거였다. 나는 운이 좋아 공짜로 버스를 탄 셈이 되었지만, 만약 단속원에게 적발이 된다면 몇 배의 범칙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 우대방침 같은 거라도 있었나 싶었던 내 희망은 어림도 없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처의 아시안 레스토랑을 찾는 일이었다. 숙소 침대에서 조금 쉬고 있다가 날이 저물어 저녁을 먹으러 근처의 중국집으로 향했는데 해가 지고 나니 길거리에 행인도 적고 휘청이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있어서 혼자 걷는 게 무섭게 느껴졌다. 여태까지 여행을 하면서 밤거리를 무서워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유독 파리에서는 조심해야겠다는 경각심을 잃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이야기도 그렇지만 파리를 다녀왔던 동이도 그곳은 치안이 정말 좋지 않으니 항상 더 주의를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루는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지냈던 대학교 동기에게 연락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던 그는 지금 런던에 있다고 했다.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몇 년 만에 그렇게 우연히 다시 중국도, 한국도 아닌 프랑스의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파리에 대학교 절친이 살고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그가 무려 파리 전문가를 데리고 온다고 하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우리는 파리 중심의 한 훠궈집에서 만나 어색함 없이 만찬을 즐겼다.


 중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프랑스로 이민온 히로는 파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파리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본토 마카롱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대학교 동기인 유식오빠는 세계진미 중 하나인 푸아그라를 맛보고 싶다고 했다. 히로는 오케이를 외치며 우리를 큰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당연히 우리를 레스토랑으로 데려갈 줄 알았던 나는 그가 백화점으로 향하자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푸아그라 먹으러 가는 거 맞아?"라는 내 의구심이 진한 질문에도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 거였다. 그를 따라 백화점으로 들어간 우리는 바로 식품코너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고기부터 시작해서 해산물까지 진귀하고 고급스러운 식재료들이 진열대에 쭉 펼쳐져 있었다. 그중 한편에 푸아그라가 진열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정육점에서 고기를 고르듯이 원하는 종류, 원하는 양을 말하면 직원이 직접 잘라서 포장해 주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히로가 추천하는 푸아그라 몇 가지를 시식해 본 뒤 가장 무난했던 것으로 두 조각 정도를 구입했다.


 푸아그라와 빵 코너에서 고른 바게트, 그리고 푸아그라와 함께 먹는다는 양파 스프레드를 사서 우리는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벤치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은 손으로 뚝뚝 찢은 바게트에 양파 스프레드를 바르고 푸아그라를 얹어서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런 고급 음식을 이런 노상 감성으로 먹는다는 게 뭔가 조합이 되진 않았지만, 히로는 식당 가서 먹는 건 값만 비싸고 푸아그라는 조금밖에 넣어주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먹는 게 가장 가성비 좋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샌드위치의 맛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간 특유의 고소함과 느끼함이 버터같이 녹아내리는 푸아그라의 살짝 비릿한 냄새를 양파 스프레드가 잡아주면서 쫄깃한 빵의 식감이 그 모두를 포용하는 맛이었다. 파리의 어떤 공원의 노상에서 먹은 푸아그라의 맛은 과연 그가 그렇게 자신감 있게 추천할 만큼 혀가 황홀해지는 맛이었다.




 파리는 확실히 스릴 있고 매력 있는 도시였지만 박물관이나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나는 금방 싫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파리를 담은 엽서를 고르고 로컬 빵집에서 기대 없이 고른 바게트의 쫀득함에 놀랐던 경험은 즐거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퀭한 채로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거나 좁은 골목길마다 풍기던 지린내는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밥값이나 숙박비도 부담스러운 편이어서 결국 나는 벨기에의 브뤼셀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브뤼셀이 파리보다 물가가 더 미친 도시라는 사실을. 언젠가 편의점에서 산 맥주에서 벨기에를 읽어본 것 같아서 아무 기대 없이 그저 맥주 하나 바라보고 간 그 도시는 의외로 파리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바글거렸다. 파리는 그나마 도시 자체의 규모가 커서 관광객들도 여기저기 퍼져있는 느낌인데, 브뤼셀은 워낙 나라도 수도도 작다 보니 그 모든 사람들이 좁은 곳에 응축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볼거리도 크게 없어서 야경이 유명한 그랑플라스 광장 혹은 웬 골목길에 위치한 뜬금없는 오줌싸개 소녀 동상이 전부였다. 파리보다도 비싼 호스텔은 좁은 방에 2층 침대가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하노이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런던과 라로셀의 친구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을 때에는 잘 몰랐는데 확실히 호스텔에서 머물며 모든 식사를 외식으로 해결하려니 갑작스레 크게 늘어난 지출이 퍽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숙식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찾다가 문득 코팡안에서 민선언니가 추천해 줬던 워크캠프가 떠올랐다. 각국 여러 나라에서 모인 청년들이 봉사활동을 하며 캠핑을 하는 프로그램인 워크캠프는 순수 무료 봉사활동은 아니었고 소정의 참가비가 필요했다. 그땐 그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참여를 망설였었는데 지금까지의 지출을 생각해 보니 차라리 워크캠프에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이쪽이 훨씬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브뤼셀의 한 호스텔에서 당장 일주일 뒤에 독일에서 진행되는 워크캠프에 바로 신청서를 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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