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캠프를 너무 급하게 신청했던 탓에 이번 기회에 선발이 될 수 있다고 장담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우선 독일로 향하기로 했다. 감자튀김, 맥주, 와플이 유명하다는 브뤼셀에서 셋 중 어느 하나에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던 내가 그 도시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던 탓이었다. 원래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도 가보고 싶었지만 대충 느낌을 보니 이곳과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았다. 그곳은 다음에 갈 곳으로 남겨두고 나는 독일 도르트문트로 향하는 버스티켓을 끊었다.
도르트문트라는 도시를 굳이 가는 이유도 사실은 별 거 없었다. 워크캠프에 참석할 수 있게 되냐 마냐에 따라 행선지가 달라질 것 같은데 브뤼셀과 가까운 편이라 버스비가 저렴했고 호스텔 가격도 가장 저렴했던 도시라서 일단 결과를 듣게 될 때까지 지내기에 부담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들였던 노력 중에 워크캠프 신청 말고 다른 게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카우치 서핑이었다. 카우치 서핑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해외에서는 꽤 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여행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지역에 방문한 여행객에게 호스트가 남는 침대나 거실의 소파를 제공하여 무료로 숙박을 지원해 주는 것을 의미했다.
여행을 떠나기 한참 전 이자벨로부터 카우치 서핑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그때 당시에는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문화 교류를 좋아한다고 해도 공짜로 모르는 사람을 재워주는 사람도, 공짜로 재워준다고 모르는 사람 집에 찾아가는 사람도 둘 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자벨은 카우치 서핑을 통해 여행비용을 많이 아끼고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면서 나에게도 적극 추천을 했었고, 정말로 물가가 부담스러워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상황에 닥치자 언젠가 들었던 그 얘기가 떠오르면서 지금이야말로 그걸 시도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길로 당장 나는 카우치 서핑 계정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나는 도르트문트에 있는 호스트들에게 요청을 보냈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보니 조심스러워서 여자호스트 세 명에게 요청을 보냈는데 정말 놀랍게도 두 명에게 자기 집에 와도 좋다는 응답을 받게 되었다. 그 두 명과 대화를 하다 보니 한 명은 다른 룸메이트들과 플랫(아파트 같은 개념)에서 살고 있는 직장인이고 한 명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생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기숙사보다는 자취를 하는 친구 집으로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직장인 호스트를 선택하고 일정을 확정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카우치 서핑을 하게 된 날. 호스트 올리비아가 보내준 주소로 향하는데 웬 꼬마 녀석들이 쪼르르 달려와 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는 아시안이 많진 않은 탓인지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나는 올리비아가 적어준 주소를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여기가 이곳이 맞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중 한 꼬맹이가 자기가 잘 안다며 자신 있게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올리비아의 집에서 아프로 머리를 한 남자 한 명과 키가 크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한 명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올리비아의 룸메이트들이라고 소개했다.
올리비아가 지내는 플랫은 방이 총 6개나 되는 곳이었다. 각 방에는 튀니지에서 온 할미, 독일인 커플 한 쌍, 독일인 니나, 남수단에서 온 모하메드가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아직 올리비아가 퇴근을 하기 전이어서 나는 룸메이트들과 먼저 인사를 마친 후 할미가 만든 튀니지식 오믈렛으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곳엔 사람도 많지만 큰 개가 두 마리나 있었다는 거였는데 한국과 달리 크기도 사람만 하고 생긴 것도 위협적인 개를 집 안에서, 그것도 모든 룸메이트들의 동의 하에 같이 키우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베란다에는 기니피그도 세 마리나 있었다. 그곳이 한국이었으면 나는 아마 당장 동물농장에 제보전화를 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어느 주말에 모든 룸메이트들과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챙겨서 공원으로 향했다. 올리비아가 키우고 있는 두 마리의 큰 개도 사람과 함께 지하철을 타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황폐화되었던 쓰레기장을 공원으로 재개발했다던 그곳은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찾은 부모들과 갓 연애를 시작한 듯 풋풋한 연인들, 두 손을 잡고 다정히 산책 중인 노부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 타본 롤러스케이트가 재밌었던 것도 한몫 하긴 했지만, 호수 너머로 붉은빛을 뿌리며 넘어가던 노을과 함께 했던 친구들의 웃음 덕분에 그때의 그 추억은 절대 잊지 못할 장면으로 가슴 깊이 남아있다.
하루는 미처 가지 못했던 다른 한 호스트의 기숙사를 갔었다. 레퍼런스 하나 없는 나의 요청에 응답해 준 사실만으로 너무 고마워서 비록 머물지는 못하더라도 꼭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30분쯤 지하철을 타면 그녀의 학교까지 갈 수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인도에서 온 파뚜라고 소개하며 나에게 멕시코음식인 부리또를 만들어 주었다. 손이 큰 그녀는 부리또도 큼직하게 만들어주더니 뒤이어 직접 만든 초코브라우니와 음료까지 나에게 대접해 주었다. 나는 어미새에게 모이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그녀가 주는 음식을 모두 맛있게 해치웠다.
그녀는 오늘 학교에서 작은 파티가 있으니 이따가 함께 가보자고 했다. 독일 대학교의 파티는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던 나는 바로 그 제안에 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고 파뚜는 친구들을 모아서 함께 파티의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파티라고까지 하기엔 소박하고 작은 모임의 느낌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처음 보는 독일 대학생들과 함께 발리볼을 치고 1유로짜리 병맥주를 사 먹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시시한 분위기에 내가 자못 실망했다는 것을 눈치챘던 건지 그녀는 옆 학교 파티는 정말 재밌을 거라며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못 이긴 척 다시 그녀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찻길과 갈대밭 가운데에 있는 지름길을 한참을 걸어서 옆 학교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이곳은 확실히 아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쿵쿵거리는 리듬이 건물 밖으로까지 흘러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입구는 줄까지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파티라고 하면 응당 이런 분위기 정도는 나와야지.' 싶었던 나는 드디어 제대로 된 장소에 도착한 것 같아서 들뜨기 시작했다. 약 30분 정도를 기다려서 들어가 보니 그 안은 작은 바에서 부지런히 술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옆에서 잔뜩 끼여있는 채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로 꽉 차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놀랐던 점 첫 번째는 이렇게 새벽까지 크게 노래를 틀고 술을 마시는 장소가 학생 기숙사 1층이었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여기서 술을 만들고 파는 사람과 노는 사람 모두가 학생들이라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파티였던 것이다.
독일의 대학교 파티는 여러 방면으로 신선했지만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노는 문화보다는 약간 직장인들이 회식자리 끝나고 노래방 가서 노는 분위기에 조금 더 가까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는 게 신나고 재밌어도 이성을 의식하느라 어느 정도 자기 관리는 하면서 노는데 거긴 정말 자기 흥을 주체하지 못해서 발산하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독일의 대학생들은 가슴속에 아재를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