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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Aug 23. 2022

삶은 곧 고통이며, 예술은 삶의 고통을 잊게 한다.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쇼펜하우어는 이성에 대한 전적인 신뢰 속에서 생겨난 낙관적인 세계관을 비판했다. 그에게 이성은 의지에 기여할 뿐인 이차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맹목적인 의지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맹목적인 의지는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타인과의 갈등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는 모든 고통의 원인인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 어떻게 극복할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의 미학은 '비합리적인 의지' 형이상학에 기초하여 미와 예술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그는 동시대의 철학가였던 헤겔, 셸링 등이 칸트의 사상을 왜곡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칸트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어받았다고 확신했다. 이렇게 자신의 스승으로 삼은 칸트 철학에 대한 연구와 비판으로 자신의 독특한 철학 체계인 '의지의 형이상학' 형성했다.

 나는 쇼펜하우어를 공부하며  첫머리부터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형이상학' 도대체 무엇일까. 어렴풋이 알고 지나오긴 했지만 이제는  정확한 의미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따라가지 못할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형이상학 이해해보기>
개인적으로 형이상학(metaphysics, 形而上學)을 이해할 때 사전적 정의보다 '형이하학(physics science, 形而下學)'과 함께 비교하는 것이 더 쉽게 다가왔기 때문에, 이 두 개의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 형이상학은 형태(形, 모양형) 이상에 있는 학문이다. 우리가 만지고 체험하는 것을 넘어선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원리 같은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심리학, 신학 등이 이에 포함된다.
- 형이하학은 형태 이하에 있는 학문이다. 영어 표기가 'physics science'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만지거나 경험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뜻한다. 물리학, 인문학, 생물학 등 많은 학문들이 이에 속한다. 형이하학은 형태가 있어 조금씩 변화하기도 하지만 형이상학은 형태가 없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주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는 그의 세계관이 아주 잘 드러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창적인 의지의 형이상학을 체계화시켰고, 그 체계의 정점에 예술론을 위치시켰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제1권은 제3부로 나뉘어 있다.
- 제1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제2부 "의지로서의 세계"
- 제3부 이념론으로서의 쇼펜하우어의 예술론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부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표상'이라 함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냄을 뜻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단지 표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주관을 위한 표상의 세계는 "충족 근거율(생성, 인식, 존재, 행위)"이라는 법칙 아래에서만 인식이 가능하다. 충족 근거율에 의해 지배되는 표상의 세계는 시간, 공관, 인과율에 의해 제약된 모든 세계를 의미한다. 인간은 지성을 통해 세계를 항상 표상하며 이해하게 된다.


의지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는 2부에서 의지가 객관화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의지의 형이상학' 전개시킨다. 인간은 표상하며 세계를 이해하지만, 동시에 고유한 신체의 작용을 통해 무의식적인 삶의 충동으로서의 의지를 체험한다. 여기에서 의지는 특정한 행위를 계획하게 하고 실행하게 하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신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생명에너지이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객체로 인식하면,  의지가 신체에서 표상된다(나타난다).


예술론

자연계에 있는 수많은 개별자들은 의지를 적합하게 객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형태, 물질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벌인다. 렇다면 의지의 가장 적합한 관적 이념(이상적 지점) 어떻게 인식되는 것일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그것은 판타지에 의한 '미적 직관' 의해 가능하다. 예술만이 순수한 정관을 통하여 파악된 영원한 이념들, 본질적인  그리고 모든 세계의 현상들의 변하지 않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때 미적 직관을 하는 주관은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어 자아를 잃어버리며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순수한 의지 없는 인식의 주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이념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데에 있다. 모든 삶의 흐름에서 금방 사라지는 사사로운 개별적인 것은 예술을 통해 전체(보편적인 것)로 재현된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

쇼펜하우어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삶 그 자체의 본질인 고뇌를 순수하게 직관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아름다움, 즐거움, 삶의 위로, 예술가의 열정은 삶의 고통을 잊게 한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에게서 예술은 의지(삶의 고통의 근원)를 진정시켜서 순간적이나마 의욕으로부터 해방된 미적인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예술 중에서도 음악은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음악은 "의지 그 자체"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음악은 미적인 무욕의 상태가 아니라, 격정과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건축, 회화, 시 등이 단지 의지의 '그림자'만을 이야기하는 데 비해서 음악은 의지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해서 표현한다. 효과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것이다. 철학이 세계의 본질을 보편적인 개념을 통해 반복하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음악은 형이상학에서 무의식적인 연습이며, 거기서 정신은 스스로 철학하고 있는 것을 모른다. 즉 다른 예술은 형이상학을 묘사한다면 음악은 형이상학 그 자체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은 예술을 통해서 인간이 세계의 근원을 추구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19세기 낭만주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예술의 체험은 인간 삶의 본질이 고통이고, 그 근원이 삶에 대한 맹목적 충동으로서의 의지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인과율)가 지배하는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벗어나게 하도록 계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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