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서예론
당나라의 예술론에서 최고는 '서론'이었다. 위진남북조 시기에도 서예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체계가 부족했고, 뒤를 이은 당나라시기에 서론의 체계적이고 완전한 이론을 정립했다.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손과정의 [서보]와 장회관의 [서단]이 있는데, 이 둘을 알아보기 전 왕희지라는 인물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왕희지는 위진남북조 시기 사람이다. 당나라에 이르러 왕희지를 고찰해보는 이유는 그가 해서, 행서,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하여 서예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각 서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대 미학사상 참고)
<사현론四賢論> : 서예로 유명한 네 명의 서예가에 대한 비교논쟁
오늘의 글에서 다뤄지는 사현론의 주인공들은 다음과 같다.
- 종요鍾繇(151~230)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서예가
- 장지張芝(? ~ ?) 중국 후한 말의 서예가
- 왕희지王羲之(339~343) 중국 진나라의 서예가
- 왕헌지王獻之(344~386) 중국 진나라의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
우화(虞龢)의 사현론
중국 남북조시대 인물인 우화는 [논서표(論書表)]에서 왕희지는 종요, 장지에 비해 금今에 해당하고, 새로운 것을 대표하는 왕헌지에 비해 고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는 왕희지를 고와 금의 통일을 이룬 사람으로 보았다.
<손과정의 사현론>
손과정은 왕희지의 서예 세계가 고금(古今)의 통일 뿐만 아니라 문질(文質)의 통일, 밖과 안의 통일, 변(變, 초서)과 법(法, 해서)통일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통일을 포괄하는 기본 개념은 곧 자연이다. 즉, 손과정은 왕희지의 서예를 자연의 실현이라고 본 것이다.
왕희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손과정은 [서보]에서 자신의 서예창작론을 전개했다. 그에게 서예 창작 과정은 우주 만물의 생성 과정과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서예 작품에서 획과 점 각각에는 변화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가득한 점과 획에 이루어진 세계를 자연의 형상으로 묘사했다. 날아가는 기러기, 드리워진 이슬 등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에게 서예 작품 전체는 "자연의 오묘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심수일체론(心手一體論)
손과정은 자연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서예가 자신의 창작 행위를 강조했다. 서예가가 자신의 마음(心)에 '자연'을 체득하고 행위(手)를 통해 실현하는 '자연'을 강조하는 것이다.
손과정에 이어 서론을 집대성하고 체계적으로 만든 인물이다. 대표 저서로 [서단]이 있다. 장회관은 손과정[서보]의 창작론을 심화시켰고, 기존의 품등론을 집대성하여 체계화시켰다.
장회관 역시 서예에서 '자연'을 강조했다. 다만 문장과 글씨 중 글씨에서의 자연을 더 강조했다. 문장이 도를 표현할 때 반드시 글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장회관의 사현론>
장회관은 사현들의 우열을 고냐 금이냐 질이냐 문이냐에 따라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에 합치되는 오직 하나의 이치로 관통한다.
장회관은 형식과 내용을 중요시 여겼고 왕희지의 서예가 미와 선, 형식과 내용까지 함께 구현했다고 말한다.. 고와 금의 구조와 미적 범주는 서로 다르게 대응하는데 왕희지는 이 두 범주를 통일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회관이 말하는 '작품에서 자연'의 의미이다.
품등론
품등론은 장회관의 서예론에서 주목받는 요소이다. 지금까지 서예를 품평할 때 3품 9등법의 9단계 분류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서예 자체가 아닌 서예가에 대한 품평이었다. 하지만 장회관은 간략하게 3품등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서예가에 대한 예술세계가 아닌 서체 자체만을 보고 품등을 정했다. 장회관은 이러한 품평 방식을 사용하여 명성보다 실제 작품의 예술성에 근거를 두고 서체를 품평했으며 그 영향으로 한 서예가에게서 여러 품등이 설정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