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난 주말,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봤다. 한 관객이 남긴 한 줄 평이 계기가 됐다.
‘살다 보면,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글을 읽는 순간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속에 내려앉았고, 영화가 몹시 궁금해졌다.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잊히지 않을 하나의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몸을 파는 세라(엘리자베스 슈 분)는, 사실상 삶을 포기한 채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 벤(니콜라스 케이지 분)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퇴직금으로 하루 종일 술을 마시며 모텔을 전전하는 벤에게 자신의 집에서 머물 것을 권한다. 벤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자신이 술을 먹는 것을 말리지 말아 달라는 것. 두 사람은 어떤 의도로든 서로를 구속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벤은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암시했지만, 세라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라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벤에게 선물을 준다. 오렌지색 셔츠, 그리고 ‘휴대용 술병’이었다. 술병을 받아 든 그는 감격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술을 끊을 것을 권했지만, 세라는 술병을 선물한 것이다. 그의 표정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이해받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처럼 보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세라는 벤을 내버려두겠다는 약속을 힘겹게, 하지만 끝까지 지킨다.
현실 속 우리의 사랑을 생각했다.
“자세가 왜 이렇게 구부정해. 똑바로 앉아야지. 나중에 고생해.”
“담배 좀 줄여. 몸에 안 좋잖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사랑하는 이에게 잔소리를 한다. 함께 할 미래를 생각할 만큼 진지한 관계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변명해보자면, 상대방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냥’,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잔소리를 할 때도 있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처럼 거슬리는 습관을 보이거나 PC 게임처럼 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말이다.
벤의 비극을 방조한 세라가 옳았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연인이 두 사람처럼 무모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의 사랑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을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요구하고,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만약, 세라와 벤처럼 우리에게도 정해진 끝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고 싶어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을 해주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부터 시킬 거다. 그렇지만, 둘만 있을 때 다리를 조금 떠는 것은 내버려 두고 싶다.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질 때마다 줍고 닦으면서 유난스럽게 바지런을 떠는 게 신경이 쓰여도 모른 척해주고 싶다. 운동을 좀 게을리 해도 채근하기보다 이해해주고 싶다. 평소에도 생각했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의식적으로 애쓰고 싶어 졌다. 왜냐하면, 세라에게 벤이 그랬듯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위안과 행복을 주니까.
상대방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내 마음에 들도록 바꾸려는 것은 사랑이 아닌 욕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설령 바꾸려는 방향이 ‘객관적으로’ 더 나을 지라도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때로는 ‘술병’을 선물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이미 끝이 정해져 있는 애틋하고 무기력한 연인처럼 말이다.
2017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