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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Nov 07. 2017

친구의 외로운 밤, 나의 가난한 밤


‘도대체 왜 항상 외롭다는 거지….’


수년째 외롭다고, 누군가를 사귀고 사랑하는 게 힘들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내게 외로움이나 관계를 시작할 때의 막막함은 너무 오래전에 느꼈던, 흘러가버린 감정이었다.     


“자신감을 가져. 넌 지금도 아름다워. 충분해. 네가 너를 가장 사랑해줘야 해.”     


처음에는 무조건 힘을 북돋았다. 한 번은 내 말을 듣던 친구의 눈가가 촉촉해졌고,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날 우리는 맛없는 싸구려 맥주를 마시면서도 행복했다. 추운 날씨에 몸을 잔뜩 움츠린 친구가 내게 기댔을 때의 온기가 아직도 한쪽 팔에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섣부른 충고도 많이 했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해. 결국 너만 힘들어지잖아.”

“누군가가 만나고 싶으면, 동호회나 모임에 나가보는 건 어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봐. 좋은 책이나 영화가 진짜 많아. 봐도 봐도 끝이 없어.”     


응원도 조언도 모두 진심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친구는 더 이상 내게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외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끔씩 연락하며 잘 지냈다.     

     



평범한 주말 저녁, 여느 때처럼 병곤이를 만나 한주 동안의 고민거리, 힘들었던 일에 관해 시시콜콜 털어놨다. 마음이 한결 후련해진 나는 말했다.     


“진짜 너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냐.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잘 들어줘서 고마워.”

“나 없었으면? 너는 정말 외로워했겠지. 스트레스도 안 풀렸을 거고.”     


그가 장난치듯 말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가 외롭다고 할 때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시큰둥했던 나의 마음이 기억났다. 오랫동안 혼자였던 친구가 외로움을 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은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운이 좋아 오랫동안 한 사람과 안정적으로 만나고 있으면서도, 나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으므로 친구보다 단단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 만나보라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고 말했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완전하게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나머지 조건이 동일할 지라도 아예 다른 세상이다. 나와 친구가 처한 환경에서 다른 점은 그 한 사람의 존재 유무였다. 이를 깨닫고 우월감을 느꼈느냐고? 부끄러웠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사람 관계는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운은 전부는 아닐 지라도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운이 좋았던 것뿐. 나의 내면이 친구보다 더 단단하거나 성숙한 것도 아니었다. 더 매력적이거나 잘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토록 오만했다. 병곤을 만나기 전의 나는 얼마나 외로워했던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차이고 몇 날 며칠을 울기도 했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해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최근 이 부분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릴 때부터 내면의 성숙은 외부의 자극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센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친구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축복이 우연의 산물임을 인식하고, 자신을 더 냉정하게 볼 수 있는 혜안을 갖는 일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서른이 되면 자연스레 어른스러워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일부는 어릴 때보다 더 철없고 가난해진 것만 같다. 친구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의 외로운 밤을 잠시 동안 생각했다. 나의 밤은 한없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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