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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에서 피어난(?) 왕따의 역사

by 예감

어린 시절, 내가 '혼외 자식'이라는 사실 자체는 딱히 직접적으로 힘들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집안 환경, 특히 엄마의 지적 장애와 부모님의 큰 나이 차이, 그리고 단칸방 같은 열악한 주거 환경이 학교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할머니랑 살 때는 괜찮았는데, 4학년이던 2009년 5월 5일 어린이날 부모님이 날 데리고 가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단칸방에서 살게 된것이다.


처음엔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 좋았었다. 하지만, 전학 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였다.


아무래도 그 작은 동네에서 금새 집안환경과 엄마가 좀 다르다는 걸 애들 사이에 소문이 난 듯 했다.

그리고 단칸방에 산다는 것도 한 몫 했다.


결국 학교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 가기가 싫어졌고, 아이들이랑 친해지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사를 가고 집안 환경이 전보다 달라지면서 난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하면 꼭 방해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집에 맡겨졌는데, 가전수리가 일이던 아빠가 그 친구 할머니네 가전수리 를 하러 간 적이 있다.


한번은 내가 따라 간적이 있었는데 친구 할머니께서 나에게 ‘자기 손녀와 친하게 지내달라며 불쌍한 아이라며..’ 이야기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 마침 그 친구가 집에 왔고 난 어색하게 인사를 건냈지만 그 친구는 그런 내가 짜증난다는 듯이 모른척 하고 방으로 들어간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럴만도 한게 당시 내가 아는 그 친구는 학교에서 부모님 일 때문에 바빠서 잠깐 할머니 집에 있는 거라고 거짓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사실을 알게 된 게 창피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그 다음 날부터 다른 친구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난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반에서 왕따, 5학년 때는 학년 왕따, 6학년 때는 거의 전교생 왕따 수준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내 동생한테까지 '네 누나는 전교생이 무시하는 왕따'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심하지 않을 수 있지만, 5학년 때 한 번은 그 이간질하던 친구가 나를 하늘 공원으로 불렀다.


참고로 그 하늘공원 미끄럼틀에는 '예감 엄마 장애인', '아빠가 아니라 노X네랑 산다.', '예감 병신 바보' 같은 낙서가 가득했고 그걸 난 밤에 수세미로 지우곤 했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어른도 없었고, 부모님한테 말하면 속상해하실 테고, 학교 선생님한테 말해봤자 학교도 잘 안 나오는 그냥 '손 많이 가는 학생'이었으니...


그렇게 간 그 하늘공원에서 같은 학년 여자애들 대여섯 명이 단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이 나한테 와서 본인 험담을 했냐며 갑자기 몰아세우는데, 나는 울면서 아니라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 험담은 이간질하는 친구의 거짓말이었다.

그때 애들은 내 진실은 궁금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괴롭히고 싶은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꼭 한 명을 대상으로 삼는 그런 구조말이다.

그게 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친구들은 나를 공원 공중화장실 뒤로 끌고 갔다.


거기서 먼저 나와 거의 일면식도 없는 다른 반 친구가 나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너무 아파서 주저앉고 정말 그 친구는 다른 반에 이야기도 제대로 한 적도 없어서 맞는 것이 억울해서 일부러 큰소리로 울어 버렸다.


그런데 애들은 아무리 울어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내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리면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


결국 큰소리에 사람들이 보는 걸 의식했는지 나를 공중화장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거기서 나를 변기 위에 앉혀놓고 단체로 침을 뱉기 시작했다.


당시 겨울이라서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광택 재질에 진한 노란 패딩,,, 그 패딩에 침이 이 뭍는 걸 보며 '나한테 왜 이럴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상황이 싫어서 나가려고 하면 나보다 덩치 크고 키 큰 애들이 문을 막고 서있고 힘이 센 친구 한명은 내가 일어서면 아예 내 배를 발로 차서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너무 괴로웠던 그 순간 마침 밖에서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중화장실 이용하려고 어떤 외국인 분이 들어온 것이다.

내가 살던 곳은 미군 부대 앞이라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내가 화장실에 안에서 울고 있으니 친구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친구 왜 이러냐', '하지 마라' 하면서 나를 구해 주려고 했다.


결국 그 외국인 분은 다른 친구와 함께 엉망진창인 된 나를 구해주었다.


당시 내 상태를 보고 왜 그러냐 물어보셔서 내가 '제 잘못이에요' 하고 울었더니, '아무리 네 잘못이어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라며 토닥여주었다.


심지어 애들이 따라올까 봐 무서웠는데 집이 어디냐며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당시 나름대로 나는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돈도 빌려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그랬다. 물론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나한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애들이 당시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은 돈 빌려 간 애들한테 돈 못받았다고 선생님한테 말했다가 오히려 '네가 돈 막 빌려준 것도 잘못이다', '애들은 너랑 잘 지내고 싶은데 네가 학교를 안 와서 그렇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따로 나머지 공부도 시켜 주셔서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기 학급 평균 올리기가 목적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6학년 때는 조금 괜찮아졌다.

나를 주로 괴롭히던 애들이 중학교 때문에 시내로 이사갔기에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6학년 때는 전따로 이사를 간 친구들 말고도 학년애들과 후배들 조차 나만 심한 장난이나 시비를 걸곤 했다.

그래도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성격이 좀 특이해서 애들이랑 잘 못 어울리는 친구였다.


그래서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시선도 받았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소중했다.


그리고 그때 담임 선생님은 내가 학교를 안 가면 아침에 집까지 데리러 오셨다.

말은 툭툭 하시는데 오히려 그게 더 편했던 것 같다


무심한 듯 챙겨주는 츤데레 스타일? 오히려 나의 소중한 은사님 중 한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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