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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Apr 30. 2022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애매한 재능>을 읽고

언제부터 글을 써 왔을까.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건, 그러니까 모임에 참여해서 작정하고 타인도 읽는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20년 1월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글쓰기는 그때부터일까.. 그건 또 아니다. 대학 때부터 다이어리에 짧은 일기를 썼고 한 달 이상 배낭여행을 갔을 때는 매일 일기를 썼다. (배낭여행은 두 번 뿐이었지만) 대학 때 가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채택된 적이 있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호텔 숙박권을 받아보았다. 가수 콘서트에서 사연이 뽑혀 가수가 불러주는 '나만을 위한 노래'를 들은 영광의 순간도 있었다.


글로 소소한 상품을 받은 경험이 생각보다 많아서 돌아보면서도 놀랍다. 2020년 글 모임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글에 대한 재능이란 스토리 구성 능력이 뛰어나서 읽는 사람을 순식간에 푹 빠지게 하거나, 적확한 단어로 완성도 높은 문장을 구사하거나, 아름다운 표현과 비유를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에게 있는 무언가다.


물론 나처럼 보통 사람들도 꾸준히 쓰다 보면 이전보다 글이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글에 대한 재능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글은 재능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자신에게도, 글 쓰는 이를 둘러싼 이들에게도.


그래서 글에 대해 큰 욕심이 없다. 글로 돈을 벌 것도 아니고 거창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간절함도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쓴다. 그런 글에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이들이 참으로 고마울 뿐이다. 공감과 위로를 받을 때면 내 삶이 응원을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좋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읽는 이들로부터 내 삶을 위로받고. 글쓰기는 참으로 좋은 일이다.


어떤 일이든 재능만큼 중요한 것은 그 행위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초반에는 재능으로 인해 그의 글이 반짝 빛을 보겠지만 꾸준히 쓰지 않는다면? 반면 재능은 별로 없더라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10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쓴다면? 보통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은 후자의 것이 될 확률이 크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해 온 사람보다 못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애매한 재능>의 수미 작가는 그녀가 말하는 대로 재능은 애매할지 몰라도 글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을 위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쓰고, 글을 쓰고 싶어서 서울 예술대학 극작과에 입학하고, 글쓰기에 방해가 될까 봐 이별을 고민했던 사람이니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의 삶을 담은 글이 세상에 나왔고, 그 글에 위로와 용기를 받는 나와 같은 독자들이 있을 테니까. 사실 수미 작가의 글은 애매하지 않다. 보통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작은 감동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위트가 있어서 먹먹한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내가 다방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 쓰다가 책 내고 유명한 작가가 된 사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더니 성공한 사람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
쇼핑몰로 대박 난 사람
코인 투자로 은퇴한 사람


책이나 유튜브에서는 모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다룬다. 안 그러려고 해도 '나는 왜 저렇게 못하나. 나는 왜 평범할까. 왜 나는 투자를 못할까.'라는 생각에 괴롭다.


세상에 천재가 있다면 1퍼센트일 것인데 어째서 그 1퍼센트가 99퍼센트 범재의 기를 꺾는 것인가.
<애매한 재능> p.253


그러게나 말이다. 세상에는 '~해서 성공한 사람'보다 나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세상이 박수를 치는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일상을 꾸리며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때론 싸우고, 돈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기뻐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영어로 대화하고 싶다거나 수영을 배워서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라는 소박한 희망을 품는 보통 사람들.


어쩌면 '애매'한 재능이라는 건 없는지도 모르겠다. 애매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건, 모두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서 오는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애매한 삶'이라고 여기며 불만을 키워가던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해준 <애매한 재능>, 참으로 고맙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이 작고 겸손해 보일지 모른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더 좋은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가진 그릇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비로소 '무언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일을 평가 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매한 재능>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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