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읽고 있는 책 <일생일문>이 재미없다.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그들이 품고 있던 저마다의 질문을 통해, 우리도 삶의 질문을 가져보라고 말하는 듯한 책이다. 술술 읽히고 볼만한 사진이 많고 에피소드마다 나름의 교훈이 있어서 괜찮은데.. 나는 왜 재미가 없을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건지.
공감이나 위로, 감동,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저자의 통찰, 새로운 지식, 머리를 깨는 생각 등
1. 공감이나 위로 & 감동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다들 그렇게 살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드는 글을 좋아한다. 당시 고민하고 있던 문제의 답을 찾기도 하고,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만 잔잔한 위로를 통해 문제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감동적인 이야기도 좋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세상은 살만하구나~ 싶어서 힘이 난다. 그래서 내 얘기 같은 에세이를 좋아한다.
2.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저자의 통찰
저자의 사유가 듬뿍 담겨 있어서 더 깊고 넓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책이 좋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내용이 너무 어렵고 깊어서 저자의 생각을 쉽게 따라가지 못할지라도, 내 사고에 틈을 만들어준다면 읽어나가고 싶어 진다. 여러 번 읽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틈을 키우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인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글도 좋다. '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면 즐겁다. 어렵든 쉽든 뇌에 주름을 추가하게 만드는 글.
3. 새로운 지식
몰랐던 사회 문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책도 좋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 문제를 다루는 책을 피했다. 마음 아프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내 삶을 헤쳐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무거운 현실을 안다고 해서 '내가 무얼 할 수 있겠어..'라는 무력함도 그러한 책을 피하는 데 한몫했다. 그러다가 독서모임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으며 관심이 생겼다. 직접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현실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를 때보다 알 때,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4. 머리를 깨는 생각
오랫동안 믿고 있던 신념을 무너뜨려 내 세상을 넓혀주는 책이 좋다. 'A라고 믿고 있었는데 B도 되는구나, C가 정답인 줄 알았는데 여러 선택지가 있었네'라는 깨달음을 주는 책.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이 그렇다.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는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의 쉬운 버전 느낌이다. 책을 읽을 당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과 에피소드로,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원망을 한순간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 책이다. 아버지에 대한 글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비했다. 사실 두 책만 덜렁 읽었다면 굳은 생각을 그리 쉽게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책을 통해 조금씩 금이 가던 신념들이 두 책을 통해 와장창 깨졌을 것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에서 아주 작은 하나를 얻는다고 해도 책 읽는 즐거움이 있다고 믿는다. 작은 하나들이 모여 언젠가 큰 깨달음을 얻는 때가 올 테니까.
그렇다면 <일생일문>은 무엇이 문제일까. 이 책은 위인전 모음집처럼 느껴진다. 인물마다 내가 몰랐던 특별한 내용이 있었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읽었을 텐데, 몇 년 전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강의했던 사회 교과서 내용 정도라는 게 나에게는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책의 내용을 전부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어딘가에서 들어봤던 이야기, 딱 그 정도로 느껴져서 반이나 읽었는데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분명히 <일생일문>을 재미있게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삶의 중요한 질문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지금의 나에게는 공감이나 위로가 되지도, 새로운 지식을 주지도, 머리를 깨우지도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책은 읽는 시점도 중요한 것 같다. 1년 정도 내편과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경험해 본 지금 <하루만 일하며 삽니다>를 읽으면, 몇 년 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한 이후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었다면 처음 읽었을 때처럼 큰 충격을 받게 될까. 아닐 것이다.
재미없다고 느낀 책 덕분에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리하게 되었으니 나름 소득이 있다. 나머지 반은 무언가 얻으려고 하지 말고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