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하지 않기

아이를 키우며, 나를 배우는 중입니다

by 희망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개입이 필요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구분해야 할 때가 있다. 언제 도와야 하고, 언제 지켜봐야 하는지는 늘 명확하지 않다. 특히 아이가 무언가를 하다 잘되지 않을 때, 나는 본능처럼 손을 내밀게 된다.


축복이는 해보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해볼까”라고 말하며 몇 번 더 시도한다. 잘 안 되는 순간에도 아이에게는 아직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남아 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끝내 되지 않을 때, 아이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손으로 하던 것을 마구 흐트러트린다. 도움을 청할 때는 흔쾌히 곁으로 가지만, 성질을 부리는 듯 보일 때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말을 걸었다. '잘 안돼? 어떻게 하고 싶어? 잘 안된다고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본다. 그냥 두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의 이후 행동은 그때마다 다르다. 하던 걸 다시 시도해 보기도 하고, 흐트러진 상태에서 새로운 놀이를 하거나, 아예 다른 장난감을 꺼낼 때도 있다. 자기감정을 혼자 정리하는 시간, 이후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 그런 경험들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다음 행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감각을 남겨주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이가 막히는 순간을 ‘도움이 필요한 신호’로 해석했다.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아이가 좌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거나 방법을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그런 개입이 아이의 시도를 끊어버리는 순간들도 있었다.


요즘은 아이의 행동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한다. 할 수 없어서 멈춘 상태인지, 아니면 아직 해보고 싶은 상태인지. 이 구분은 아이의 말과 몸에 분명히 드러난다. “다시 해볼까”라는 말이 나올 때, 아이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요청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이렇게 지켜보기만 하다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방치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더 유심히 상황을 본다. 그냥 지켜본다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순간에는 돕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순간에 기다림이 답은 아니다. 아이가 분명히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고, 몸의 준비가 부족해 반복된 실패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의 개입은 통제가 아니라 연결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개입과 기다림을 대립된 것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키우며 점점 분명해지는 건, 개입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잘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아이가 어떤 상태인가’라는 점이다. 스스로 다시 해보려는 아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시도를 끊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매번 망설인다. 하지만 예전처럼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아이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한, 나는 한 발 물러서 그 흐름을 지켜본다. 그 선택이 아이를 더 성장하게 하는 방향일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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