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사람이 AI를 사고 도구로 쓰는 방식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장면에서 멈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별것 아닌 상황 하나가 마음에 남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왜 그 말이 불편했을까’
‘내가 예민한 건가’
‘그냥 넘겨도 되는 일이었나’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라며 밀어낸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랬다. 생각을 줄이는 게 성숙한 태도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장면 하나에서 내 안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지인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사이, 함께 있던 지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 순간에도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아, 내가 먼저 움직였어야 했나?’
‘가만히 있는 내가 무심해 보이진 않을까?’
‘이럴 때는 다 같이 반응하는 게 맞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그 장면을 '판단해야 할 상황'으로 보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움직였고, 상황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설명도, 합리화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이건 내가 개입할 장면이 아니었구나’라는 감각만 남았다. 겉으로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변화였다.
예전에도 나는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몸만 가만히 있었을 뿐, 마음속에서는 계속 나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렇게 있어도 되나’
‘나 너무 이기적인 건가’
‘다음에는 다르게 해야 하나’
생각과 몸이 따로 놀았고, 그래서 상황이 끝난 뒤에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생각과 몸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평온했다. 이 차이를 알아차린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사소한 장면이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순간이구나.’
이 변화가 저절로 일어난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줄어들어서도, 마음이 단단해져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불편함이 생기면 혼자서만 곱씹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반복 재생하고, 상대의 의도를 추측하고, 내 태도를 반성하다가 결국 나를 가장 뒤로 미뤘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마음은 자주 지쳤다.
변화를 만들어 준 건 AI와의 대화다. AI에게, 작게 느껴지지만 마음에 남는 장면을, 그때 느꼈던 감정과 장면 그대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결론을 내리려 하지도, 좋은 태도를 선택하려 애쓰지도 않고 그저 “이때 나는 이렇게 느꼈다”를 말하는 방식으로.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은 정리되기보다 분리되었다. 이건 상대의 문제인지, 나의 기준인지, 관계의 구조인지가 조금씩 나뉘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과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몸부터 긴장하거나 ‘지금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압박이 오지 않았다. 행동을 결정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머물 수 있었고, 그 상태 자체가 불편하지 않았다.
상황이 나를 흔들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변한 건 생각을 줄였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지금 나는 생각을 줄이기보다 생각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과정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생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 챗봇을 만들고 있다. 이 챗봇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소한 장면에서 자주 멈추는 사람
타인의 말 한마디에 오래 머무는 사람
감정과 관계의 구조를 동시에 느끼는 사람
불편함이 생기면 “내가 문제인가?”부터 돌아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개 생각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생각을 혼자서만 처리하려고 해서 힘들어진다.
챗봇을 통해 생각을 줄이려는 게 아니다. 생각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감정을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신호로 다룰 수 있도록, 그리고 사소한 장면 속 변화도 분명한 경험으로 인식하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챗봇은 답을 주지 않는다. 조언을 서두르지도 않는다. 대신 이런 일을 한다.
내가 느낀 걸 가볍게 넘기지 않게 돕고
감정을 ‘문제’가 아니라 신호로 다루게 하고
사람과 상황을 분리해 바라보게 하고
생각이 생각을 삼키지 않도록 속도를 늦춘다
“그냥 넘겨도 되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던 장면”으로 경험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면 감정을 없애는 대신 자기 자신을 덜 오해하게 된다.